<시론>북한 민주화 논의할 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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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운 논설위원

김여정 후계론 反인민적 발상
3代 넘어 4대 세습 부추기나
트럼프는 日 천황式 체제 제안

2020년은 20년 주기 격변기
이념·세대·계층 갈등 에너지
분단 해결 동력으로 전환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재(健在)가 확인됐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의 건강 악화·권력 약화로 인한 혼란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김정은이 사라졌던 보름 동안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았던 불편한 진실들이 드러났다. 첫째, 남북 관계와 동북아 정세는 글로벌 최강자들의 복잡한 권력 게임이라는 것. 김정은 부재 기간에 한국과 미국·중국·일본·러시아·유럽에서는 정부 관계자·안보 전문가·투자가들이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유도하려 했다. 사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듯한 주장도 많았다. 김정은이 등장했다고 이런 휘발성이나 불확실성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둘째, 북한에 대한 담론의 천박한 수준이다. 김정은 부재 논란의 핵심은 누가 후계자가 되느냐는 것이었다. 국적 불문, 다수가 김여정을 지목했다. 이른바 ‘백두 혈통’이라는 게 이유다. 김여정 후계자 불가 주장도 있었지만, 주된 근거는 여성이기 때문이란 것. 국내외를 막론하고 북한 문제를 논하는 데는 민주주의 원칙은 물론 기본적 상식이라는 잣대조차 보이지 않는다.

1948년 제정되고 1972년·1992년 개정된 북한 헌법에 김일성 일가만 집권할 수 있다는 조항은 없다. 북한은 김일성 왕국이 아니다. 정식 국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2500만 인민이 주인인 나라다. 그런데 왜 김일성 후손이 집권해야 정통성을 갖는다는 고정관념을 갖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김여정은 물론 김정일·김정은도 북한 지도자로서의 정당성이 없다. 북한은 세계 최악의 경제 파탄국이고, 인권 탄압국이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말대로 “인민을 굶기고 탄압하는 지도자”에게 무슨 정당성이 있겠는가. 정통성도 정당성도 없는 피붙이의 세습은 공산 독재나 전체주의 국가에서도 없는 우스꽝스러운 일인데, 북한에서는 3대도 모자라 4대 세습까지 가야 한다고 부추긴다. 지도자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살았다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기상천외한 체제에 대한 비판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물론 김정은 체제가 당분간 지속할 ‘필요성’은 있다. 현재 주변국 누구도 한반도의 급격한 현상 변화를 원치 않는다. 북한 핵의 안정적 관리도 중요하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북한 인민이 더 민주적이고, 개방되고, 풍요로운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의무다.

북한 문제의 핵심은 결국 세습 독재 체제를 어떻게 바꾸느냐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못 본 체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뜻밖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해결을 모색했다. 그는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김정은과의 회담에서 입헌군주국을 제안했다고 한다. 일본 천황을 예로 들었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정치권력을 유지하며 중국·베트남처럼 경제를 개방·개혁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김정은이 당장 실권 없는 왕이나 세습이 안 되는 국가주석 직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현실은 마냥 외면하기 어렵다.

한국의 정치는 약 20년마다 큰 변화를 겪었다. 1961년 박정희가 등장해 산업화 시대를 열었고, 1980년 전두환과 신군부의 쿠데타는 역설적으로 민주화 시대로 본격 진입하는 계기가 됐다. 2002년에는 노무현과 386이 집권하면서 우리 사회의 주류를 바꾸려는 시도가 시작됐다. 지금부터 또는 다음 대통령이 선출되는 2022년부터 20년 동안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갈 것인가. 여당이 총선에서 압승한 지난달 15일 김정은 신변 이상설이 시작된 것은 상징적이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는 산업화·민주화 이후의 국가 목표를 상실한 것이다. 당연히 남북문제 해결이 목표가 됐어야 했다. 분단은 남북 모두가 겪는 고통의 근원(根源)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방면에서 모순을 만들어낸다. 북한은 핵 개발·테러 지원 가능성으로 국제사회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향후 20년 안에 통일이 이뤄질 수도 있고, 분단을 받아들이는 평화 체제가 추진될 수도 있다. 막아야 하지만, 전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답은 아직 모른다. 만들어가야 한다. 한국 사회는 지역·이념·세대·계층·남녀 간 충돌에서 비롯된 갈등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공동체의 목표만 분명해지면 오히려 이 에너지가 미래를 위한 동력으로 전환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