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정권, 태영호 욕할 자격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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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전임기자

탈북자 출신의 야당 정치인들이 김정은의 신변 문제를 잘못 예단한 ‘죄’로 여권의 집단 공격을 당하고 있다. 사실 북한 최고지도자의 건강 이상설이나 부재 상황의 실체를 외부에서 정확히 알아낸다는 건 불가능하다. 20일간의 국가 지도자 부재라는, 그 자체로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해 전 세계의 수많은 정보 전문가와 정치 지도자들이 각기 다른 전망과 해석을 내놨다. 국제 여론의 산실인 미국 CNN과 영국의 로이터, 800만 발행 부수의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이 오보를 썼다. 한때 그의 할아버지(김일성)가 그랬고 그의 아버지(김정일)가 그랬듯 김정은 역시 프레스티지 마술 쇼하듯 ‘짜잔~’ 하고 나타날 것이라 내다봤던 이는 소수였다. 저마다 조각난 첩보로 숨은그림 퍼즐을 맞추거나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맥락적으로 추론했을 뿐이다. 예측이 맞았다고 내공을 과시할 일도 아니고 틀렸다고 비난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집권세력은 태영호·지성호 등 탈북 정치인들의 빗나간 예측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는(이해찬) 차원을 넘어, 사과를 요구하고(송갑석), 징계를 주문하거나(설훈), 관련 국회 상임위 배제를 공론화하며(김부겸), 심지어는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김경협).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윤건영 국회의원 당선자가 “이들(태·지 당선자)이 1급 정보를 취급하는 것에 우려가 있다”고 한 건 청와대 기류를 대변하는 듯 보인다. 탈북 정치인들의 예측 실패를 둘러싼 이 희한하고 기이하기까지 한 여권의 집단 공격에는 단순히 ‘돗자리’를 잘못 깐 데에 대한 비난을 넘어 다른 이유가 작용했을 법하다. 북한군의 DMZ 내 우리 군 감시초소(GP)에 대한 총격 도발에도 사과 요구조차 하지 못하며 눈치 보기에 급급한 이 정권으로서는 유사전체주의 세습 정권을 비판하는 이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싶을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여권의 이런 과도한 대응이 오히려 현 정권의 정보 대실패와 관련한 아찔한 기억들을 소환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례 두 가지만 들어보자. 첫 번째는 2018년 9월 문 대통령의 대북 특사로 평양을 방문했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돌아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고 공개 브리핑했던 일. 그의 설익은 정보와 희망 섞인 낙관론을 토대로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이 잇달아 열렸지만 확인된 건 김정은의 ‘확고한 핵 보유 의지’였고, 결국 비핵화 해법은 더욱 꼬이게 됐다. 두 번째 사례는 2019년 2월 ‘하노이 노 딜’ 사건.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도널드 트럼프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개최 이전부터 김정은이 영변 외에 추가 양보를 하지 않을 경우 회담을 깨겠다는 입장을 세웠지만, 문 정권은 동맹국의 생각을 까마득히 몰랐고 오히려 축배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꼬집었다.

탈북 정치인들의 정보 실패가 그들의 체면을 구기는 문제라면 정권의 정보 실패는 국가안보와 국민안전, 나아가 체제를 구기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 둘을 동렬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태영호·지성호 당선자의 북한 관련 ‘상임위 배치 불가’라는 그 살벌한 잣대를 문재인 정부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이 정권은 ‘청와대 입주 불가’ 판정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