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하늘 두 쪽 나도 골프약속 지켜요”… 목발 짚고 골프장 가기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호종 대표가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집무실에서 자신의 골프 백에서 가장 자신 있게 사용하는 샌드웨지를 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호종 해승 법무법인 대표

축구하다 발목 다쳐 깁스 상태
‘대타’ 고민하다 시간 맞춰 도착
“라운드 불가” 양해 구하고 귀가
감동한 동반자들 “날 다시 잡자”

법조계서 골프약속 많기로 소문
내년 4월까지 70건 넘는 예약
“동반자와 마음 맞으면 바로 약속
골프는 마음 열고 사람 맺어줘”

이호종(54) 해승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는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골프 약속이 많기로 소문났다. 그의 수첩에는 내년 4월까지 골프 스케줄이 자그마치 70건 넘게 빼곡히 적혀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동일하이빌 6층 집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그는 “골프 약속만큼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반드시 지킨다”고 말했다. 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축구광이었다. 공이나 연장(라켓)으로 하는 스포츠는 싫어하는 게 없다 보니 부상이 잦았다. 10년 전 축구 하다 발목을 다쳐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고 골프장에 나타나 동반자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그는 골프 선약을 두고 ‘다른 사람을 대신 참석시킬까’ 하고 고민했지만, 티 타임에 맞춰 목발을 짚고 골프장으로 가서 라운드할 수 없는 사정을 동반자들에게 설명하고 되돌아왔다. 그의 행동에 감동한 동반자들은 “낫는 대로 다시 날을 잡자”고 제안했고, 그날 이후 그들은 이 대표와 몇 년째 골프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이 대표는 “5시간의 라운드뿐만 아니라 밥 먹고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기에 골프는 마음을 열어놓고 사람을 사귈 수 있는 운동”이라며 “그날 동반자들과 마음이 맞으면 바로 다음 약속을 잡는 편”이라고 말했다. ‘애프터’가 없으면 다음엔 그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지만, 골프를 통해 서로 믿음이 쌓이면 일도 함께 하는 경우가 생긴단다.

경남 진주 출신인 이 대표는 서울대 졸업 후 학원을 운영하다 36세 되던 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두 살 아래 동생은 서울 법대를 나와 사법시험을 7년이나 빨리 합격해 검사가 됐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던 이 대표는 돈 잘 버는 학원을 운영하고 결혼도 했지만, 33세 되던 해부터 사시를 준비해 3년 만에 합격했다. 그의 동생도 지금은 변호사다.

이 대표가 골프를 시작한 것은 2006년. 2004년 변호사 사무실 오픈 때 여행사를 운영하던 선배가 개업 선물로 국산 골프클럽 세트를 줬다. 사무실 한쪽에 2년 동안 놔뒀는데 우연히 고교 동창이 같이 골프 치자고 해 골프장에 들고 갔다. 처음 골프장에 갔으니 티와 볼 마크, 공, 장갑, 모자, 신발까지 골프장 프로숍에서 샀다. 물론 1번 홀에서 클럽을 싼 포장지를 뜯었다. 난생처음 클럽을 잡았으니 스윙 폼은 엉망이었다. 도리깨질 타법이었지만, 공은 예상외로 잘 떴다. 이날 실제론 130타가 넘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캐디가 적은 그의 타수는 106타였다. 이날 이후 회사 근처 연습장에 다닐 요량으로 1년 이용권을 구입했다. 하지만 몇 달간 똑딱이 볼만 쳐야 한다는 티칭프로의 무성의에 몇 번 나가다 포기했다. 독학으로 배운 탓에 몸도 이미 굳을 대로 굳어 마음과는 따로였다.

당시엔 변호사로 자리 잡기 바쁜 시기였기에 이 대표의 골프 모임은 고교동문 월례회가 유일했고, 2개월에 한 번꼴로 나갔다. 이렇게 4년 동안 100타를 깬 적이 없어 늘 ‘백돌이’ 수준이었다. 친구들과 내기하는 재미에 빠져 나가면 늘 빈털터리가 돼 돌아왔다. 그는 이러다간 안 되겠다 싶어 저렴한 비용에 실전 라운드도 늘리려고 골프회원권을 샀다. 당시 85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경기 용인의 한원CC 회원권을 산 뒤 본전 생각에 주 3회씩 나가기도 했다. 이렇게 하니 실력이 금세 늘었다. 늘 100타가 넘었던 그는 이후 몇 달 만에 90대 타수 한 번 없이 순식간에 80대 스코어로 진입했다. 특히 한원CC가 까다로운 코스여서 여기서 80대 타수를 기록하니 다른 골프장에 가면 70대 스코어도 가능했다.

이 대표의 베스트 스코어는 이븐파 72타다. 70대 중반을 곧잘 치면서 물이 올랐던 2014년이었다. 그는 “경기 용인 마에스트로CC에서 전반에 36타를 치다가 그늘집에서 막걸리 몇 잔 걸치고 나와 10번 홀에서 티샷이 OB가 나면서 더블보기를 기록했다”면서 “이후 17, 18번 홀 연속 버디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최근 몇 달 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일감이 크게 줄었다. 이 대표가 운영하는 법무법인은 14년째 한 번도 사무실을 옮기지 않았다. 지금까지 사무실 임차료만 웬만한 건물 하나 살 수 있는 50억 원 이상을 냈을 정도. 변호사만 15명이 활동하니 하루 경비만 평균 2000만 원 정도 들어간다. 그는 소송보다는 대표로서 대외활동을 위한 평일 라운드가 잦다. 대신 주말이면 족구를 즐긴다. 오전 7시에 나가 오후까지 족구 동호회 모임을 즐긴다. 예전에는 조기 축구를 하다 몇 해 전 족구로 갈아탔다. 축구는 물론 골프클럽처럼 연장을 갖고 하는 당구, 탁구, 테니스도 수준급이다. 그래서 그는 쇼트게임, 특히 그린 위에서 퍼팅 실력도 뛰어나다. 원래 스포츠를 좋아하다 보니 골프 중계를 자주 봤고 골프 입문 전부터 웬만한 골프 룰을 익혔을 정도. 100타를 넘게 치면서도 해박한 룰 지식에 동반자들이 놀라곤 했다.

이 대표는 고교 동창들과 어울릴 때면 ‘OB 특설 티 사용 금지’를 조건으로 내건다. OB 티로 나가겠다고 우기는 동반자에게 4타째가 아닌 5타째로 쳐야 한다고 얘기하면, 대개 티박스에서 더 치고 나간단다. 국내 골프장 상당수가 특설 티를 너무 앞에 갖다 놓는 바람에 형평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취지다. 그의 스윙 폼을 보고 덤빈 상대가 망신당하고 간 경우는 한두 번이 아니다. 그는 속사포처럼 연습스윙 없이 어드레스 후 바로 치고, 페어웨이를 걸으면서도 친다. 이 대표는 “급한 성격은 아니지만 내가 샷을 빨리하면 그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글·사진 =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