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위기 대응책에 기업이 없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조해동 경제부 부장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로 촉발된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지금까지 쓴 직접 지원액이 240조 원이라고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경상 국내총생산(GDP)이 1914조 원이니 대략 12.5%다. 만기연장, 납부유예 등 간접 지원한 액수는 349조 원으로, 경상 GDP의 18.2%다. 위기 대응을 위한 직·간접 지원액을 합치면 경상 GDP의 30.7%에 달한다. 오는 6월 초 정부가 국회에 제출할 3차 추가경정예산 30조∼40조 원 안팎까지 얹으면 전체 규모는 경상 GDP의 32∼33%로 늘어난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과 비교해도 작지 않은 규모다.

1997∼1998년 외환위기,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 대책과 비교할 때, 이번 대책이 가장 다른 점은 기업(소상공인 제외)에 대한 지원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기업 안정화를 위해 ‘100조 원+α’ 패키지(묶음)를 내놨다고 하지만, 대상이 대부분 소상공인, 중소기업이다.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을 위해 내놓은 프로그램은 지난 4월 25일 국회를 통과한 40조 원 한도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이 거의 유일하다. 그나마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고용 유지 노력을 해야 하고, 산업은행 등이 주식을 보유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 이익 공유 조건에도 동의해야 한다. 이익 공유 아이디어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경제계에서는 ‘정부가 지원 대가로 기업을 국유화(國有化)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정부는 그동안 “주식을 보유해도 의결권은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지난 4월 29일 국회를 통과한 산업은행법 개정안은 정부가 원칙적으로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면서도 예외를 뒀다. 즉, ‘지원 조건을 현저히 위반하여 자금 회수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통령령이야 공무원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고칠 수 있는 것이고, 예외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한 요건도 어차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일 것이다. 7명으로 구성되는 기금운용심의회에 국회 상임위가 추천하는 인사 2명이 포함되도록 한 점도 ‘정치 바람’을 탈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기업 지원에 인색한 것은 “재정(국민 세금)으로 기업을 정상화해도 기업과 주주 좋은 일만 시킨다”는 뿌리 깊은 불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금 지원의 대가로 얻은 주식으로 민간 기업 경영에 의결권을 행사하며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위기 대응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는 경제가 위기인데도 규제 혁신을 통해 신산업이 창출된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국민 세금으로 돈 퍼주는 ‘땜질식 처방’만 하지, 새로운 산업이나 기업이 등장해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려는 노력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경기후행 지표인 일자리의 꽁무니를 아무리 쫓아다녀도 고용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과감한 규제 완화와 지원으로 새로운 산업과 기업이 많이 생기게 하고, 국민 세금을 쓰지 않아도 새로운 고용 수요가 늘게 해야 한다. 위기 해법의 중심에 무분별한 돈 풀기가 아니라, 산업과 기업을 둬야 경제의 선순환(善循環)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