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견제 無力化와 권위주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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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범 사회부 차장

“외부 압력이나 회유에 순치된 감사원은 맛을 잃은 소금이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최근 내부 간부회의에서 한 얘기라고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 발언의 의중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공교롭게도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의 타당성’에 대한 국회 감사 요청을 받았으나 7개월이 되도록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국회법상 감사원은 감사 요구를 받은 날로부터 3개월 안에 감사 결과를 보고해야 하고, 특별한 사유가 있더라도 2개월까지 늦출 수 있다. 최 원장은 시민단체로부터 직무 유기 혐의로 고발까지 당했다. 현 정부 대표 브랜드인 탈원전 정책을 도마에 올려놓고 검증해야 했으나 4·15 총선 이후로 미루는 등 ‘정치적 행위’를 해 오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때마침 해당 감사를 맡아온 공공기관 감사국장은 임명을 받은 지 넉 달밖에 안 된 상황에서 산업·금융감사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사 배경을 놓고 세 가지를 의심해 볼 수 있다. 감사가 지지부진해 문책을 받았거나 외압으로 자리를 떠났거나 책임을 피한 것이다. 감사원은 “다른 승진 인사로 공석이 발생해 연쇄 보직 이동이 있었던 것이고, 어떤 외압도 없었다”고 해명했으나 의구심만 키우고 있다.

행정 권력을 감시·견제해야 하는 헌법기관인 감사원이 이처럼 ‘영혼이 없어 보이는’ 반론 보도자료를 낸 8일. 때마침 감찰 무마와 가족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첫 번째 공판이 열렸고, 다시 한번 권력 견제 기관의 ‘민낯’이 드러났다. 조 전 장관은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정부 고위 관계자 감찰을 책임졌다. 정부 권력의 폭주와 부패를 막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감사원과 비슷한 역할을 맡았다. 이날 재판은 조 전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친문(친문재인) 인사들과 친한 유재수 전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의 수천만 원대 뇌물성 금품 수수 비위를 4차례 보고받고도 청와대 감찰을 중단시켰다는 직권남용 혐의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핵심 증인인 이인걸 전 청와대 특감반장은 ‘잠깐 홀드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더니, 얼마 뒤 유 전 국장이 사표를 내는 정도로 마무리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 과정에서 천경득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 등 정권 실세들의 감찰 무마 압력에 부담을 느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특히 천 전 선임행정관한테 “유재수를 살려야 한다. 우리 편이다”라는 외압성 발언을 들었다고 했다. 이후 유 전 국장은 사표를 내고 부산시 경제부시장으로 영전했다.

권력은 감시, 견제를 받지 않으면 반드시 부패한다. 지난 8일 하루 동안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보면 현 집권 세력 아래에서 민주국가의 근간인 권력 견제와 감시 장치가 정상 작동하는지 다시 한번 깊은 우려를 던지게 한다. 특히 “감찰 무마가 아니라 종료며 고유 권한”이라는 조 전 장관 측의 주장에선 ‘권위주의의 망령’마저 느껴진다. 권력 부패와 남용을 감시하는 최후 보루인 검찰은 정치권력의 견제와 압박에 이중, 삼중으로 포위돼 있다. 법원의 적폐청산을 외치던 판사들은 법복을 벗고 여당 국회의원 당선자로 옷을 바꿔 입는다. 부패로 몰락하고 권위주의로 회귀하는 전철을 밟기를 원치 않는다면 현 정부는 권력 분산과 견제의 헌법적 가치를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