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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法과 권력 게재 일자 : 2020년 05월 13일(水)
‘法은 도덕의 최소한’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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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지지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지난 8일 조 전 장관 차량 유리를 닦아주고 있다. 열린민주당 영상 캡처

이영란 숙명여대 명예교수·법학

비리 불거져도 버티는 부도덕
지나쳐버린 法의 날 더 아쉽다
권력층 탈법의 피해자는 국민


우리나라의 ‘법의 날’은 4월 25일이다. 준법정신을 높이고 법의 존엄성을 강조하기 위해 정한 법정기념일로, 처음에는 5월 1일이었다. 냉전시대에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사회주의 국가의 노동절에 대항하는 의미로 5월 1일을 법의 날로 제정했다고 한다. 국제적으로는 1963년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법의 지배를 통한 세계평화대회’에서 세계 각국에 법의 날 제정을 권고하기로 한 결의에 따라 우리나라도 1964년 대한변호사협회 주도로 이날을 법의 날로 정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의 의도와는 달리 매년 노동계의 성대한 행사 때문에 오히려 법의 날이 관심을 끌지 못하자 2003년부터는 4월 25일로 바꿨다. 근대적 사법제도를 최초로 도입한 재판소구성법 시행일이 1895년 4월 25일이었던 점에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가 주관하는 법의 날 행사는, 근래에는 정부 행사 간소화 방침에 따라 격년제로 하게 돼 있다. 지난해에 행사를 했기 때문에 올해 제57회 법의 날은 행사조차 없이 지나갔고, 어디에서도 이날의 의미나 사회적 관심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준법정신을 고취하며 법질서를 확립하고 진정한 법치주의를 구현해야 하는 일이 정부, 나아가 법무부의 기본 업무다. 법무부 단독으로 전담해서 준법사회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법의 날’까지 아무 뜻 없이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은 크게 아쉬움이 남는다. 차제에 지나치게 다양하고 광범위한 법무부의 관장 사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흔히 법과 윤리도덕은 한 뿌리를 가진 같은 나무에 있고, ‘법은 최소한의 윤리도덕’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덕과 윤리 덕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주 교화 대상으로 여겨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최고 수준의 덕목을 갖춰야 하는 사람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최소 수준의 도덕인 법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개인의 영달을 위해 탈법행위를 서슴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탈법행위란, 직접 법을 위반하지는 않으나 법이 금지하고 있는 것을 회피 수단에 의해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즉, 위법행위는 아니지만 법망을 교묘히 피해 합법성을 가장하는 행위다. 그 효력이 무효라는 명문의 규정이 있으면 무효이고, 또 범죄의 고의가 밝혀지면 형법상 범죄가 되지만, 법적으로 다투기 전에는 일단 유효하므로 법률가들이 바로 그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혹 탈법행위임이 밝혀져도 법을 위반한 위법행위는 아니라고 항변하기도 한다.

예컨대, 청문 절차나 검증 과정에서 쏟아지는 많은 의혹에 대해 후보자들은 위법행위는 아니라고 우기고 재판 절차를 이용해 시간을 끌기도 한다. 그나마 양심 있는 사람은 의혹이 불거지면 즉시 사퇴하는데, 양심 없는 사람은 끝까지 버텨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 갖가지 방법의 편법 증여, 상속이나 의도적으로 탈세하다가 검증 직전에 몰랐다면서 납부하기, 부모끼리 자녀 스펙 품앗이, 각종 인허가의 자의적 행사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재벌과 정치 엘리트 간의 정경유착 같은 과거의 권력형 부패에서부터 일상적 부패까지 다양한 탈법행위가 행해져 왔다. 최근에 목도한 비례 위성정당의 설립도 정당 설립의 목적과 취지에 맞지 않는 탈법행위이므로 무효라고 해야 하는데, 권력자들끼리 암묵적으로 그럭저럭 넘기는 것은 법치국가를 표방하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은 눈뜨고 코 베이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머리가 좋을수록, 지식수준이 높을수록, 돈이 많을수록,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교묘하게 법의 그물을 빠져나간다. 오죽하면 국가의 자부심인 세계 굴지의 기업 후계자 재판에서 법원이 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하라고 훈수를 뒀을까 싶고,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인이 변명의 기회를 갖기 위해 소속 당이 자신을 고발해 주기 바란다는 것에선 어안이 벙벙해진다.

어느 국가 사회도 구성원들의 준법정신이나 법질서 확립 없이는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불만을 해소할 수 없고, 결국 국민의 삶이 위협받게 된다. 언제부턴가 일부 지도층·권력층 법률 전문가들이 더 기술적으로 법을 왜곡하고 훼손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고 이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법과 정의의 여신상인 그리스 신화 속의 아스트라에아(Astraea)는 눈을 가리고 한 손에 칼 또는 법전을, 다른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눈을 가린 것은 재판할 때 주관성이나 자신의 이익, 욕심을 버리겠다는 뜻이고, 칼은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겠다는 뜻이며, 저울은 옳고 그름을 공평하고 정의롭게 가르겠다는 뜻이다.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를 떠올려야 하듯이 법조인들은 정의의 여신을 떠올려 법률 전문가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참다운 준법정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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