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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Deep Read 게재 일자 : 2020년 05월 14일(木)
고용보험 목적은 재분배 아닌 위험보호…‘기여와 급여’ 형평성 보장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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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민 고용보험’ 논의의 선행과제

조세 사용해 취약계층 지원하는 ‘공적 부조’와는 달라…특수고용직·자영업자 보험료 산정도 난제
구체적인 재원조달 계획 없이 선심성 돈풀기땐 국가재정 적자… 남유럽식 위기 촉발할 수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전(全)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다”고 선언한 후 고용보험 확대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문 대통령의 연설 하루 만에 예술인을 고용보험 대상에 포함하는 법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정부는 그에 더해서 내년까지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대리운전기사, 골프장 캐디 등과 같은 특수고용직도 고용보험에 포함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장기과제이기는 하지만 자영업자를 고용보험에 포함하는 방안도 추진될 전망이다.

실업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고용보험의 확대를 통해 고용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한 정책 방향임이 틀림없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서 프리랜서와 같은 1인 사업자나 대리운전·배달과 같은 플랫폼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고용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위기로 실업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고용 안전망 강화는 해결해야 할 과제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전 국민 고용보험 실시를 위해서는 풀어야 할 난제가 많다. 정책 방향이 맞는다고 해서 제시된 수단이 모두 정답인 것은 아니다. 고용보험을 포함한 사회보험의 근본 목적은 사회적 위험으로부터의 보호이지 소득의 재분배가 아니다. 무엇보다 보험원리에 따른 기여와 급여 사이의 형평성을 맞추는 방안이 집중 모색돼야 한다. 전 국민 고용보험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험료 인상이나 증세 등의 재원 조달이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재정적자가 악화해 남유럽식 재정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

◇보험의 성격과 기본원리

고용보험 대상 확대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짚어보기 위해서는 고용보험의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고용보험은 복지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 안전망인 사회보험의 한 종류다. 사회보험은 기본적으로 노령연금, 의료보험, 실업보험, 산재보험의 4대 보험으로 구성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이 이에 해당한다. 사회보험의 시초는 1880년대에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도입한 산재보험, 의료보험, 노령연금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보험은 산업화 시기에 임금노동자가 처할 수 있는 사회적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를 목적으로 시작됐다. 즉 평상시에는 노동의 대가인 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더 이상 노동을 하지 못할 위험에 처하면 생계를 보호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국민연금은 노령으로 노동을 못 하게 됐을 때, 고용보험은 실업으로 생계가 어려워졌을 때 보호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유념할 점은 사회보험 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보험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즉 평상시에 보험료 형태로 기금 마련에 기여하고 위험이 닥쳤을 때 급여를 받는 형식이다. 즉 사회보험의 기본원리는 ‘기여에 대한 급여’다. 그러므로 보험 원칙에 의해 가입하고 기여한 가입자에 한해 급여를 지급한다. 그런 점에서 조세를 사용해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공적 부조(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등)와는 그 운영원칙이 완전히 다른 제도다.

◇기여와 급여의 형평성 해결돼야

고용보험은 당연히 보험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당장 보험료를 누가 얼마나 낼지를 정하는 것부터가 과제다. 현재 고용보험은 월평균 급여의 1.6%에 해당하는 고용보험료를 사용자와 근로자가 반반씩 부담한다. 앞으로 고용보험의 확대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특수고용직의 경우 근로자인 것은 틀림없지만, 근로계약이 아닌 별도의 용역계약을 맺고 있어 법적으로는 자영업자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소속 근로자가 아닌데도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보험원리에 따라 기여와 급여 사이의 형평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점이다. 즉 기여에 비례해 급여가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민간 생명보험에 보험료를 많이 내면 나중에 급여도 커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현재의 고용보험에 특수고용직이나 자영업자와 같이 취업 상태가 불안정한 대상이 대폭 가입하게 되면 기여와 급여의 형평을 이루기가 어려워질 소지가 크다. 즉 취업 상태가 불안정해서 기여는 조금만 하지만 실업을 자주 오래 경험하게 되면 실업급여는 많이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취업 상태가 안정적인 일반 직장인은 기여는 많이 하면서 실업은 상대적으로 덜 경험하게 되므로 대상 집단별로 기여와 급여의 형평성이 맞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자영업자의 경우는 보험료 산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재처럼 평균급여 개념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보험료 산정 기준을 임금이 아니라 소득으로 바꾼다는 계획이지만 자영업자의 경우 소득 파악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이 또한 미봉책일 공산이 크다.

물론 민간보험과 달리 공적보험인 사회보험은 어느 정도는 소득 재분배 역할을 할 수 있다. 현재 국민연금도 일정 정도 소득 재분배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보험의 근본 목적은 사회적 위험으로부터의 보호이지 소득의 재분배가 아니다. 그런 이유에서 ‘기여와 급여의 상대적인 형평성’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는 중요한 과제다.

◇재정 압박 땐 남유럽식 위기 가능성

그다음 문제는 역시 돈이다. 모든 취업자에게 고용보험의 혜택을 주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으로 고용보험에 가입된 피보험자 수는 자영업자를 포함해 모두 약 1382만 명이다. 이 숫자는 통계청이 밝힌 전체 취업자 2433만 명의 60%에도 미치지 못한다. 특히 자영업자의 경우 현재도 임의 가입이 가능하지만, 전체 570만 자영업자 중 0.4%만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다. 이 상황을 뒤집어 보면 전 국민 고용보험을 이루기 위해서는 약 1000만 명을 추가로 고용보험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현재 고용보험기금 자체는 아직 여유가 있다. 하지만 최근 2년 동안은 적자를 기록해서 적립금을 까먹고 있는 실정이다. 들어오는 보험료보다 실업급여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고용보험의 확대는 기금 고갈 문제로 귀착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대폭 올리거나 증세를 통해 부족분을 세금으로 메꾸어야 한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사회적 협의가 필요한 사항이라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다.

만약 보험료 인상이나 증세 없이 전 국민 고용보험 정책을 추진하게 되면 국가 재정적자는 더욱 악화할 것이 분명하다. 잇따른 추경예산으로 올해 적자 국채 규모가 약 74조 원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원조달 계획 없는 복지의 확대는 빠른 속도의 국가 부채 증가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몇 년 전 남의 일 같이 여겨졌던 남유럽 재정 위기 가 우리의 현실로 대두할 수도 있다.

고용 안전망의 강화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해결을 위해서는 세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더욱이 구체적인 재원 조달 계획이 없는 선심성 정책은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사회적 부담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세줄 요약

고용보험의 성격과 기본원리 : 고용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고용 안전망 강화는 필요함. 고용보험은 평상시 보험료 형태로 기금에 기여하고 위험이 닥쳤을 때 급여를 받는, ‘기여에 대한 급여’임. 다만 전 국민 고용보험을 위해서는 풀어야 할 난제가 많음.

기여와 급여의 형평성 보장 : 고용보험의 근본 목적은 사회적 위험으로부터의 근로자 보호지 소득의 재분배가 아님. 즉 조세를 사용해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공적 부조와는 운영원칙이 다름. 따라서 보험 원리에 따른 ‘기여와 급여의 형평성’을 보장하는 게 중요함.

재원 조달과 재정 위기 문제 : 고용보험 확대를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함. 이를 위해 보험료 인상이나 증세 등 방식을 써야 하지만 사회적 협의가 어려움. 재원 조달 계획 없이 이를 시행한다면 국가 재정 적자를 부르고 이는 남유럽식 재정 위기를 촉발할 수도.

■ 용어 설명

‘사회보험’은 개인보험처럼 자유의사가 아니라 법적 강제성을 띠고 시행되는 보험의 총칭. 크게는 노동능력 상실에 대비한 산재·건강보험과 노동기회 상실에 대비한 연금·고용보험 등 4대 보험으로 구분됨.

‘남유럽 재정 위기’란 2010년을 전후해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가 포퓰리즘 정책 등에 따른 국가 부채로 재정 악화를 겪으면서 유로존의 위기와 시장의 신뢰 상실을 불러 온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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