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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철환의 음악동네 게재 일자 : 2020년 05월 15일(金)
닿고 싶지만 닫혀버린… 세월 속에 남겨놓은 아련한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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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기억 속으로’

잠을 깨니 눈부신 햇살이 ‘금문교 푸른 물에 찰랑대며 춤춘다’(금사향 ‘샌프란시스코’ 중). 태평양을 호수처럼 품은 휴양마을 소살리토의 하룻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호강이 따로 없다. “이쪽 동네로 오시면 꼭 연락 주세요.” 교환학생으로 왔다가 귀국하면서 남긴 제자의 당부는 빈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분은 누구야?” 탁자 위에 놓인 흑백사진 속 젊은 주인공이 새벽부터 말을 건다. “그분 마음에 드세요?” 나는 신승훈의 노래로 화답했다. ‘장미보다 아름답진 않지만/그보다 더 진한 향기가’ 나고 ‘별빛보다 환하지 않지만/그보다 더 따사로와’. 공개된 정답은 놀랍게도 제자의 할머니였다. ‘미소 속에 비친 그대’가 소살리토의 장미와 별빛으로 남아있는 건 현실의 그분을 못 만났기 때문이다.

어떤 기억은 아련하고 어떤 기억은 아득하다. 사진이 좋은 이유는 그것을 찢을 수 있기 때문이고 사진이 슬픈 이유는 그것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은 버릴 수 있지만 사진 속 기억은 버릴 수가 없다. 음악동네에선 인정욕구보다 기억욕구가 강하다. 동서를 막론하고 이별의 당부리스트 맨 위에 있는 말은 ‘잊지 마세요’다. ‘벽에는 당신 사진이 걸려있지요(On my wall lies a photograph of you girl)/ 어떻게든 당신을 잊으려고 노력해 봤지만(Though I try to forget you somehow)/ 당신은 내 영혼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죠(You’re the mirror of my soul)’(비지스 ‘Don’t forget to remember’ 중). 헤어지는 건 쉬워도 기억을 도려내는 건 불가능하다. 잉글버트 험퍼딩크는 묻는다.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있나요’(Am I that easy to forget) ‘잊지 말라는 부탁’(1949년생 정미조 ‘개여울’ 중)은 1992년생 가수 크러쉬에게도 유효하다. ‘너와 나 언젠가 남이 되어도/ 영영 닿을 수 없는 사이 되어도/ 잊어버리지 마 잃어버리지 마’(‘잊어버리지 마’ 중).

▲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나이가 들면서 그대보다는 그때라는 말을 많이 쓰게 된다. 기억 속에는 그대로 있지만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불가능한 주문을 왼다. 그대로 멈춰라. 이건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실려 있는 노래 제목이다. 그런데 어디쯤에서 멈춰야 행복할까. 노래가 답을 알려준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봄은 기억마저 춤추게 한다. 그 한가운데 스승의 날이 있다. 나는 국어담당이었지만 음악을 교재로 많이 활용했다. 두음법칙보다는 화음 연습이 우애를 깊게 만든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혜민 스님은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하셨지만 음악동네에선 멈춰야 비로소 들리는 것들이 있다. 지금도 옛 제자들을 만나면 중간고사 끝난 후 가르쳐줬던 피터폴앤드메리(Peter, Paul and Mary)의 ‘500마일’ 가사를 한 글자도 안 틀리고 끝까지 합창한다. ‘내가 탄 기차를 놓친다면/ 내가 떠났다는 걸 알게 될 거야(If you miss the train I’m on/ you will know that I am gone)’.

기차는 떠나도 기억은 역에 남았다. 제자는 스승을 지워도 스승은 제자를 지우지 못한다. 효상이는 교실 밖에서도 대화를 많이 나눈 제자였다. 의대로 진학했다는 것까지만 알았는데 어느 날 그가 음악동네로 이사 왔다는 걸 알게 됐다. 그의 곁엔 낯익은 얼굴이 웃고 있었다. ‘오후 햇살마저 지나간 거리에/ 오랜 기억들은 내 곁에 찾아와’(이은미 ‘기억 속으로’ 중). 맨발의 디바는 격정적으로 무대를 휘젓다가 마지막에 꼭 이 노래를 부른다. 아껴둔 노래다. 관객들도 이 노래를 듣고서야 축제가 끝났음을 실감한다. 아, 효상이를 이은미의 남편으로 다시 만날 줄이야. ‘내게 돌아와/ 닫고 싶은 기억 속으로/ 내게 남겨진 너의 사랑이 미소 질 수 있도록’. 솔직히 난 아직도 정확한 가사를 모른다. 가끔은 ‘닫고 싶은’ 기억으로 들리지만 지금은 ‘닿고 싶은’ 기억으로 들린다.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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