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adership 클래스-나영석 >삼고초려 마다않고, 인연은 길고 깊게… 신뢰로 ‘흥행불패’ 견인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왼쪽 위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삼시세끼’ ‘스페인하숙’ ‘윤식당’ ‘금금밤’ ‘신서유기’ ‘꽃보다 할배’ 등 숱한 히트작을 낸 나영석 PD는 항상 ‘사람’과 ‘협업’을 중시한다.

■ CJENM 나영석 PD

대화식 회의로 후배 아이디어도 경청… 암초 만나면 우회하듯 안되는 것은 빨리 포기하는 것이 강점
13년전 ‘1박2일’출연진 ‘신서유기’서도 활약 중…꽃할배들도 “나PD가 또 하자면 한다” 무한 믿음

CJ ENM 소속 나영석 PD가 만든 케이블채널 tvN 예능 ‘꽃보다 누나’에 이어 ‘윤식당’에 출연한 배우 윤여정. 직설적인 말투와 솔직한 입담으로 유명한 그는 ‘윤식당’ 제작발표회에서 “나영석 PD가 ‘우리 결혼했어요’를 찍자고 해도 찍을 것”이라며 “재미없으면 보지 마세요”라고 답했다. 연출자로서 나 PD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그가 만든 프로그램은 재미있다는 자신감이 담긴 외침이었다.

“나영석 PD는 어떤 사람일까?” 그를 둘러싼 주변 이들에게 물었다. 여러 평가 중, 반복적으로 나온 표현은 “잘난 척하지 않고, 진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위에 군림하며 지시하는 보스가 아닌, 앞에서 이끄는 리더라는 평가를 받는 나 PD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삼고초려, 발로 뛰는 섭외

나 PD의 프로그램에는 예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이들이 출연하기로 유명하다. ‘삼시세끼’ 시리즈를 이끄는 차승원·유해진·이서진, ‘윤식당’의 윤여정, ‘꽃보다 할배’의 이순재·신구를 비롯해 공효진, 염정아, 정우성, 소지섭, 박서준 등 특별 게스트로 참여한 이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특히 나 PD는 소지섭, 에릭, 엄태웅 등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예능 출연이 뜸한 이들을 섭외하기 위해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 외에도 나 PD는 주요 배역을 섭외할 때 항상 직접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이런 진정성 있는 접근이 출연진의 마음을 움직이는 원동력인 셈이다.

섭외 후에도 나 PD의 노력은 계속된다. 일례로, ‘꽃보다 할배’ 촬영은 술자리로 마무리되곤 했다. 이순재·신구·박근형·백일섭뿐만 아니라 ‘짐꾼’ 이서진도 술을 즐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나 PD는 항상 곁을 지켰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술 한 잔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로 출연진의 이야기를 듣고 장단을 맞추는 나 PD의 모습은 함께 촬영장에 나온 동료 제작진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나 PD가 유명 연예인들과 두루 친분을 맺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대단한 편견이다. 그는 촬영 외적으로 연예인들과 따로 만나 소통하는 경우가 드물다. 일부러 공과 사를 구분하려 한다기보다는, 낯가림이 심한 그의 성격 때문이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너무 깊이 친분을 맺으면 막상 촬영할 때 그를 객관적으로 보기 힘든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PD는 한번 맺은 인연을 길게 가져간다. 13년 전 ‘1박2일’로 시작된 강호동·이수근·은지원과의 인연은 현재 tvN ‘신서유기’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다. 이서진은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윤식당’의 단골손님이고, 차승원·유해진은 현재 ‘삼시세끼’ 시리즈뿐만 아니라 ‘스페인 하숙’ 등으로 나 PD와 소통하고 있다.

이전 시리즈가 성공했기에 자연스럽게 다시 손잡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연예계의 생리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특정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 덤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개런티가 상승하고 스케줄을 맞추기도 어려워진다. 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변했다”며 감정적으로 골이 생기는 경우가 적잖다. 이를 매끄럽게 정리하는 것이 나 PD의 강점이다. 또한 무리한 설정이 아니라 등장 인물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캐릭터에 맞춘 롤(role)을 부여하는 것도 나 PD표 예능의 매력이다. 꾸미지 않은 맛이 배어 나오는 이유다. 이순재는 “나 PD의 프로그램에는 억지가 없기 때문에 인기를 끄는 것”이라며 “나와 같은 늙은이들의 본래 모습을 자연스럽게 노출해도 공감을 주고 재미있게 만들어낸다. 나 PD가 하자고 하면 또 출연할 것”이라고 말했다.

◇듣기 위한 회의

나 PD의 주변 이들은 “회의가 잦다”고 말했다. 회의를 많이 하는 것은 인기 없는 리더의 요건 중 하나다. 하지만 나 PD의 회의에 대한 불만은 많지 않았다. ‘회의’란 이름을 빌렸을 뿐, 형식은 파괴했기 때문이다. 나 PD가 먼저 말문을 열면 동료들이 순서대로 돌아가며 의견을 제시하며 받아 적는 형식이 아니라, 그야말로 자유로운 대화를 통한 브레인 스토밍(brain storming)이다. 게다가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번 회의실로 모이라”가 아니다. 그가 연출하는 예능 프로그램에는 통상 사전 회의 장면이 삽입된다. 이 장소는 편안한 카페나 식당인 경우가 많다. 닫힌 공간에서는 사고(思考)도 닫힌다. 하지만 공간이 변화하면 생각의 틀도 달라진다는 것이 나 PD의 지론이다. 따지고 보면 그가 만든 대다수 예능이 스튜디오가 아니라 농촌과 어촌, 숲속, 해외와 같이 현장감을 중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PD가 회의를 자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생각을 듣기 위해서’다. 이는 평소 “나는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 아니고, ‘천재 PD’가 아니라 그냥 보통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2014년 CJ가 투자한 아카데미에서 열린 강의에 참여해 이렇게 밝혔다.

“수능 점수에 맞춰 행정학과에 진학했는데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공부도 재미없었다. 고민 끝에 ‘아는 것이 없으니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만화와 무협지밖에 기억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복잡하고 대단한 것보다는 기승전결과 권선징악이 뚜렷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KBS 입사 시험 때, 지원자들이 필기시험 준비에 매달릴 때 오히려 집에서 TV를 많이 보며 프로그램의 장단점, ‘나라면 어떻게 만들었을까’를 생각했다. 나는 포기가 빠른데, 이것이 바로 나의 장점이다.”

아집을 부리지 않고, 암초를 만나면 빨리 우회로를 찾는다는 나 PD의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자기 고백이었다.

◇그는 왜 카메라 앞에 설까?

나 PD는 카메라 앞에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낸 ‘1호 PD’로 손꼽히곤 한다. ‘1박2일’을 연출할 때 그는 출연진과 대화하는 목소리를 노출시킨 데 이어 직접 게임을 하며 자신을 드러냈다. 이후 카메라 뒤에 앉아 있던 PD들이 카메라 앞으로 나서는 일이 늘었다.

정작 나 PD는 “나는 굉장히 낯을 많이 가리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다. 보통 PD라고 하면 현장을 지휘하는 리더십이나 사교성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런 편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주변 이들도 이에 고개를 끄덕인다.

나 PD가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유명해지고자 함이 아니라 출연진과 신뢰를 쌓고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의도가 크다. 지난해 11월 방송된 ‘신서유기’에서 나 PD는 제작진이 낸 문제를 출연진이 맞히면 촬영을 일찍 마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출연진이 정답을 맞혔고, 촬영은 2시간 만에 종료됐다. 망연자실한 나 PD가 무릎 꿇는 모습은 이날 ‘신서유기’의 백미였다. 또한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십오야’가 구독자 100만 명을 달성하면 달에 가는 프로젝트를 시행하겠다고 공언했다가 실제 이를 달성하자 “달에 가려면 한 명당 4000억 원이 든다고 한다. 두 명이 가면 8000억 원”이라며 “돈을 빌리는 방법도 알아봤는데 tvN을 담보 잡혀도 못 빌린다고 한다”고 구독 취소를 호소하기도 했다. 소통을 중시하는 21세기 예능 시청자을 위한 ‘맞춤형 PD’인 셈이다.

후배 PD들에게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것도 나 PD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삼시세끼’를 비롯해 ‘알쓸신잡’ ‘윤식당’ ‘신서유기’ 등은 ‘나영석표 예능’이라 불린다. 하지만 나 PD는 단독 연출하는 작품이 아니라면 한발 물러선다. 프로그램과 관련해 인터뷰 요청이 와도 공동 연출자인 후배 PD들에게 기회를 돌린다. ‘1박2일’의 막내 PD로 그와 인연을 맺은 후 현재 ‘신서유기’와 ‘삼시네세끼’ 등을 연출하고 있는 신효정 PD는 언론 인터뷰에서 “후배 직원의 단점을 혼내기는 쉽다. 그런 단점을 덮어두고 장점을 칭찬하기는 어렵다”면서 “나 PD는 후배 PD의 장점을 찾아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고 말했다. 나 PD가 보여주는 리더십의 크기와 형태를 알 수 있는 증언이다.


■ 나영석의 인맥

“20대 때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지 확신이 없었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것과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관련된 일에 도전해왔다.”

남들은 ‘예능 천재’라 부르지만 스스로 ‘보통 사람’임을 강조하는 나영석 PD는 자신의 학창시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PD를 직업으로 택했다. 그러면서 그는 깨달았다.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공동작업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 PD는 항상 어우러졌다. 동료 스태프들과 머리를 맞댔고, 출연진과도 유대를 쌓았다. 그가 카메라 앞과 뒤를 넘나들며 ‘소통’하는 이유다. 또한 자신이 만드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관계성에 주목한다.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즐긴다는 그는 한자리에 모았을 때 강한 화학작용을 낼 수 있는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한다. 나 PD표(標) 예능의 성공 확률이 높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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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동 방송인

강호동은 ‘나영석의 페르소나’라 해도 무방하다. 두 사람이 합작한 ‘1박2일’이 2010년 3월 기록한 시청률 39.9%는 여전히 역대 예능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다. 강호동은 ‘1박2일’ 이후에도 ‘신서유기’ ‘강식당’ ‘라끼남’ 등을 함께 했다. 리얼 버라이어티부터 ‘윤식당’의 스핀오프인 ‘강식당’, 그리고 5∼10분 분량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반 콘텐츠를 만드는 등 새로운 포맷을 시도할 때 나 PD의 선택은 주저 없이 강호동이었다. 강호동은 ‘신서유기’ 제작발표회에서 나 PD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눈빛만 봐도 서로의 생각을 안다. 믿고 간다. 아무 고민 없이 (참여)한다.”

김대주 작가

드라마는 통상 ‘작가의 예술’이라고 한다. 하지만 예능 또한 작가의 역량이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한다. 이런 맥락으로 나영석 PD의 곁에는 김대주 작가가 있었다. ‘1박2일’ 때 나 PD와 처음 인연을 맺은 김 작가는 이후 ‘삼시세끼’시리즈와 ‘윤식당’ ‘스페인 하숙’을 거쳐 최근작인 ‘금금밤’까지 동행했다. 김 작가는 이명한 본부장, 나영석·신원호 PD 등 CJ ENM의 핵심 연출진과 짝을 이루는 작가진의 ‘허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김 작가 위로는 ‘1박2일’부터 나 PD의 예능과 신원호 PD의 ‘응답하라’ 시리즈를 매만진 이우정 작가가 있고, 후배 중에는 김란주 작가가 눈에 띈다.

이서진 배우

KBS에서 CJ ENM으로 이적한 나영석 PD의 성공 신화의 시작은 ‘꽃보다 할배’(2013)였다. 여기에 ‘짐꾼’으로 참여한 배우 이서진은 이후 나 PD 예능의 단골이 됐다. 이서진은 나 PD가 연출하던 ‘1박2일’에 게스트로 참여해 ‘미대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툴툴대며 적극적이지 않은 이서진의 스타일은 하나의 예능 캐릭터로 자리매김하며 그에게 전성기를 안겨줬다. ‘윤식당’ 제작발표회에서 윤여정은 이서진에 대해 “곁에서 지켜보니 신구 선생님을 진심으로 모시는 그에게 놀랐다”고 말한 바 있다. 대중이 미처 알지 못하던 이서진의 모습을 나 PD가 먼저 발견한 셈이다.

이명한 CJ ENM 본부장

tvN 이명한 본부장은 나영석·신원호로 대표되는 CJ ENM 예능 사단을 조각한 인물로 손꼽힌다. 이 본부장이 CJ ENM으로 이적한 후 두 PD가 순차적으로 회사를 옮긴 점만 봐도 그 과정에 이 본부장의 역할이 작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본부장과 나 PD의 인연은 지난 2003년 방송된 KBS 2TV ‘산장미팅-장미의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1박2일’을 연출하던 이 본부장이 나 PD에게 바통을 넘겨줬고, 그때부터 나 PD의 성공 신화가 시작됐다. 나 PD의 고향 선배이기도 한 이 본부장은 평소 나 PD에 대해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 지 정확히 아는 인물”이라고 평하곤 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