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한국형 뉴딜, 여전히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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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경제위기 때마다 성장의 발판
文정부는 분배와 복지에 치중
기업 경쟁력·이익창출 도외시

디지털·SOC 뉴딜 구체성 모호
대통령 직속委 제안 용두사미
전문 인력 양성도 문제투성이

어느 정도 통제돼 가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위험이 이태원 클럽에서 시작된 지역사회 감염으로 다시 커지고 있다. 학교의 정상화도 주춤하고 있어 이로 인한 학사 일정 차질은 우리 사회 전체를 어렵게 하지만, 이 또한 극복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4월과 5월에 몰려 있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날들에 되새기곤 하던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도 되새겨볼 겨를이 없다. 민주주의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독재자와 애국 민중 모두 피를 흘리게 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긴 민주화 과정을 함축한 말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식인과 학생들이 중심이 된 민주화 운동가들의 희생을 먹고 자랐다. 그리고 그 민주주의는 경제성장을 먹고 성공했다. 1960년 4·19혁명의 학생 참여가 자유당 정부의 장기독재를 무너뜨렸다면, 1987년 6월 항쟁에 참여한 넥타이 부대들은 군부독재를 무너뜨린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전자의 경우, 젊은 피의 희생으로 정권 타도에 일시 성공했으나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오래 가지 못해 다시 군부독재를 초래했다. 후자의 경우, 경제성장과 함께 중산층의 소득이 증대됨에 따라 개인의 자유가 통제된 상태에서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국민 정서가 보편화한 결과다.

아이러니하게도 군부독재 세력이 주력한 경제성장 정책이 군부독재를 몰아내는 민주 국민을 양산한 것이다. 6·10 민주항쟁에 떠밀려 마지못해 발표된 6·29선언으로 한 번에 군부독재를 무너뜨리지는 못했지만, 비가역적인 민주화를 이뤄 가는 출발점을 만들 수 있었다. 이후 군부독재 세력이 소멸하면서 정치 민주화와 함께 경제도 점진적인 성장을 이뤄 왔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경제위기를 맞았지만, 국민적 절약운동과 금 모으기 운동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정보·기술(IT)산업과 자동차·조선 및 화학산업 등 제조업 기반 실물경제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오히려 더 큰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우리 사회는 경제적 성과의 분배에 대한 갈망이 더 커지고, 그에 따라 노동운동이 세력화했다.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 세력과 이념과 정치적 지향을 함께하는 당시의 야당이 중산층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성공하고 뒤이은 대선과 지방선거, 그리고 올해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써 진보운동권의 정치 권력화가 완성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3년 동안 이뤄진 진보적인 정책 구현 과정에서 야기된 사회경제적 혼란과 코로나19 위기로 심화한 기업 일자리 감소, 한시적인 공공근로 일자리 증가, 자영업과 영세기업의 연이은 폐업 문제, 현금 복지 증대에 따른 눈더미 재정적자 등은 현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나아가 노조 중심의 경제정책으로 인한 고용 경직성으로 청년 일자리의 지속적인 감소, 노동 소외 계층과 노동 귀족 간의 노노 갈등, 건설 노동시장에서 양대 노총 간의 갈등도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결론은, 모두가 기업이 창출한 경제 성과의 배분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보다도 높은 법인세율과 증가하는 인건비의 고비용 구조 속에서도 기업들이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고 영업이익을 계속 창출할 수 있을지는 관심 밖이다.

정부가 5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한국형 뉴딜정책을 시행하겠다고 한다. 디지털 뉴딜과 확장된 사회간접자본(SOC) 뉴딜이라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모호하다. 지난 3년간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산업 체질을 바꾸고 새롭게 도약할 방안을 수없이 제시했지만, 정부가 검토하고 국회를 통과하면서 원래의 취지와 벗어난 경우가 대다수였다고 한다. 그나마 살아남은 정책은 기존 산업과의 갈등으로 소멸하기도 했다.

새로운 한국형 뉴딜정책이 이러한 어려운 과정을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인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미 정부의 방침에 길든 교육 현장이 미래 산업에 필요한 유연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교육계가 변혁에 성공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인구 감소와 초고령사회화가 우리 경제의 노동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념도 민주주의도 경제적 뒷받침 없이는 공허한 구호일 뿐임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더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