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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Deep Read 게재 일자 : 2020년 05월 21일(木)
권력이해 따른 前文 개정 안돼… 국민 ‘보편동의’ 없는 개헌, 분열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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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권에서 5·18민주화운동(오른쪽 사진)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개헌의 향배에 관심이 쏠린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 18일 광주 시내의 구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모습.

■ 5·18정신 ‘헌법 전문 포함’ 논란

美·獨·佛 헌법 前文엔 역사적 사건 없어…섣부른 개헌 시도, 법적 안정성·계속성 약화
‘5·18정신’ 전문에 담기려면 3·1운동 같은 역사 평가와 주권자의 공감 획득 과정 끝내야


헌법은 한 국가의 최고법이며 헌법의 전문(前文)은 헌법의 얼굴이다. 헌법 전문에 담긴 내용은 그 헌법의 성격과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국가는 대체로 헌법 전문에서 헌법 제정의 역사적 의의와 주체, 제정 과정, 헌법 제정의 목적, 헌법의 이념과 지향점 등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에서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삽입하자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하는 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헌법 개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5·18정신의 헌법 전문 포함 여부 역시 이 사안에 대한 ‘주권자의 보편적 동의’를 획득하는 역사적 평가를 전제해야 한다. 섣부른 개헌 시도는 법적 안정성과 계속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국민을 통합이 아닌 분열의 길로 몰고 갈 수 있다.

◇ 시대 상황과 전문의 변화

우리 헌법은 1948년 제헌헌법부터 전문을 두고 있었다. 제헌헌법 전문에서는 헌법 제정의 주체가 대한국민임을 밝힘과 동시에 3·1운동의 독립정신 계승을 선언했고, 나아가 정의·인도·동포애와 민족의 단결, 사회적 폐습의 타파, 민주주의 제도의 확립, 기회의 균등, 능력의 최고도 발휘,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 국제평화의 유지 등을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가치로 제시했다.

이후 헌법 전문은 여러 차례 개정됐다. 제5차 개헌(제3공화국 헌법)에서는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을 삽입했고, 제7차 개헌(유신헌법)에서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이 추가됐다. 제8차 개헌(제5공화국 헌법)에서는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을 삭제했고, 제9차 개헌(현행 헌법)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표현으로 4·19 관련 내용이 다시 포함됐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이 추가됐다.

이러한 헌법 전문의 변화는 헌법 개정의 시대적 배경이 전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제3공화국 헌법에서는 5·16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 4·19혁명을(4·19의거로 표현하면서) 함께 삽입했지만, 신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에서는 4·19와 5·16을 모두 삭제했다. 그리고 현행 헌법에서 5·16은 사라지고 4·19가 부활한 것 역시 헌법 개정 당시의 정치적 상황 변화를 보여준다. 즉 대한민국의 헌법 전문 역사는 정확히 말하면 권력의 이해가 반영된 시대적 변화상을 반영하면서 함께 바뀌어온 역사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 바람직한 헌법 전문

강조돼야 할 것은 헌법이 개정될 때마다 어떤 역사적 사건이 전문에 삽입되거나 삭제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적 현실에서 헌법 전문에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것은 대부분 권력의 이해를 반영하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는 전문에 담기 부적절한 내용을 억지로 넣는 부작용이나 무리하게 삭제하는 반작용을 동반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개헌은 헌법의 계속성과 안정성을 약화시킨다.

서구 선진국의 경우 역사적 사건을 나열하는 헌법 전문을 찾아보기 힘들다. 성문헌법이 없는 영국은 논외로 하더라도 미국·독일·프랑스 등 국가의 헌법 전문은 역사적 사건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독일의 경우 기본법 전문에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주들의 가입으로 인한 기본법 적용 범위의 확대가 새로 규정됐을 뿐이다. 그리스나 네덜란드, 덴마크, 이탈리아 등에선 헌법에 아예 전문을 두지 않고 있다.

우리 헌법 전문의 경우 이미 역사적 사건을 여럿 명시하고 있으므로 여기에 하나를(5·18정신) 추가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헌법사적 중요 사건 중 어떤 것을 헌법 전문에 담는 것이 적절하며 어떤 것은 빼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먼저 확실하게 정해져야 한다. 첫째로 헌법 제정의 원초적 배경이 된 역사적 사건을 고려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3·1운동이 제헌헌법 당시부터 현행 헌법에 이르기까지 전문에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둘째는 헌법 개정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평가와 국민의 보편적 동의를 획득한 사건이다. 대표적인 예가 4·19혁명이다. 이에 반해 5·16쿠데타의 경우 헌법 개정의 결정적 계기가 됐고 중요한 역사적 가치도 있지만, 국민적 평가에 있어 부정과 긍정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는 점 때문에 전문 삽입은 바람직하지 않다.

앞의 두 가지 즉 3·1운동과 4·19혁명 이외의 역사적 사건을 헌법 전문에 삽입하는 것은 아직은 논란과 정쟁, 때론 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사안이다. 지금까지의 중요 사건이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중요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데 그때마다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25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갖는 미국 연방헌법 전문 에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독립전쟁이나 노예해방, 남북전쟁 등 그 어떤 역사적 사건도 기술하지 않았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 5·18 평가는 진행형

국가 질서의 기본인 헌법에 각계 주장을 다 넣는 게 능사는 아니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아직 진행 중이며, 새로 밝혀지는 사실들에 대한 종합적 평가가 선행돼야 하므로 헌법전문 포함이 시기상조라는 주장에 일단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건 관련 당사자들이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역사적인 평가를 제대로 내리기 힘들고, 이 경우 기준의 명확성과 객관성 면에서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왜 유독 5·18정신만 헌법 전문에 추가해야 하느냐 하는 점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시대적 흐름으로 보자면 1980년에 발생한 5·18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시민혁명의 모델을 만들어낸 1987년 6·10민주화운동의 전 단계 사건이다. 그렇다면 6·10민주화운동이야말로 4·19혁명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전기를 일궈냈다는 점에서 헌법 전문에 담을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그 연장선에서 부마항쟁 또한 헌법 전문에 포함돼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할 수 있다. 유신 정권에 저항했던 1979년 부마항쟁은 같은 해 10·26사태와 다음 해의 ‘서울의 봄’ 및 5·18민주화운동의 발화점이 됐다는 점에서 그만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견해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나아가 4·19혁명의 계기가 됐던 마산의거를 넣자는 견해 역시 제기될 수 있다. 여권에서는 아직 4년도 채 지나지 않은 ‘촛불 혁명’을 헌법 전문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 헌법 개정과 국민적 합의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헌법 전문에 담는 것에 대한 최종적 판단은 주권자이자 헌법의 주인인 국민의 몫이다. 따라서 헌법 개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 합의를 획득하는 과정이다. 자칫 잘못하면 이런 작업이 논쟁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낼 수 있다. 국민의 보편적 동의 획득과 역사적 평가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의 섣부른 헌법 전문 개정 시도는 자칫 갈등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정부·여당이 다수의 힘을 앞세워 이를 관철하려 한다면 더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자


■ 세줄 요약

헌법 전문의 변화史 : 우리 헌법 전문은 1948년 제헌헌법 이후 시대상 및 권력 이해에 따라 변화돼 옴. 개헌 때마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 전문에 삽입되거나 삭제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음. 섣부른 헌법 전문 수정은 최고 법인 헌법의 계속성과 안정성을 약화시킴.

바람직한 헌법 전문 : 미국·독일·프랑스 등에서는 전문에 역사적 사건을 명시하지 않고 있음. 전문에 특정 사건이 담기려면 그 사건이 헌법 제정·개정의 결정적 계기가 됐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평가와 함께 국민의 공감과 보편 동의를 획득해야 함.

5·18 평가는 진행형 : 헌법 전문에 무엇을 담을지에 대한 최종적 판단은 주권자이자 헌법의 주인인 국민의 몫임. 이것이 무시되면 국민 통합 아닌 분열이 올 수 있음. 5·18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아직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헌법 전문 포함은 시기상조일 수 있음.

■ 용어 설명

‘제헌헌법’이란 1948년 제헌국회에서 공포한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을 말함. 그해 5월 10일 총선거로 5월 31일 제헌국회가 성립됐고, 7월 1일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한 뒤 7월 17일 제헌헌법을 공포.

‘미국 연방헌법 전문’엔 ‘우리 인민은 완벽한 연방을 형성하고 정의를 수립하고 안녕을 보장하고 공동방위를 도모하고 복지를 증진하고 자유와 축복을 확보할 목적으로 이 헌법을 제정한다’는 내용만 담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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