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서 철학·일상으로… 생각을 확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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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 / 짐 홀트 지음, 노태복 옮김／소소의책

저명한 과학 서적 저자이자 철학자인 짐 홀트가 쓴 이 책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는 아름다운 경계에 서 있다. 저자의 정체성처럼 과학과 철학이 만나는 경계말이다.

최고의 과학 서적 필자답게 저자는 아인슈타인부터 끈 이론의 혁명가 에드워드 위튼,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숫자와 뇌 영역의 관계를 밝혀낸 신경과학자 스타니슬라스 드앤 등 현대 과학사의 분기점을 만든 과학자들과 숱한 발견들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하지만 철학자인 저자의 시선은 과학적 발견과 결과에 그치지 않고, 그와 얽혀 있는 인간 존재의 의미, 세계와의 관계, 때로는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같은 윤리적 문제로 나아간다. 2017년에 출간된 책은 저자가 그전 20년 동안 잡지 등에 기고한 짧은 글 24편을 묶은 것인데, 수록된 글들은 모두 과학에서 출발해 철학으로, 철학에서 일상으로, 일상에서 우주로, 신으로 독자들의 짐작을 배반하며 상상력을 더해 점프해 나간다. 철학자가 쓴 정확한 과학책, 과학 필자가 쓴 깊은 철학책, 드물고 귀한 책이다.

표제작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도 그렇다. 글은 제목처럼 아인슈타인이 프린스턴대에서 논리학자 쿠르트 괴델과 출퇴근길에 나눈 유쾌한 대화로 시작한다. 하지만 나이를 초월한 두 과학자의 우정 이야기는 곧 두 사람 각각의 과학적 발견으로 갈라진 뒤 다시 세계는 개인의 인식과 무관하게 합리적으로 조직되며 언제나 인간이 이해할 수 있다는 공통된 믿음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 믿음에서 다시 시간의 존재에 대한 문제, 이어 영원성 문제로 뻗어간다. 수학의 최대 난제인 리만 제타 가설을 다룬 글은 예상치 못하게 수학과 유머의 운명으로 풀려나간다. 리만 제타 가설의 역사를 꼼꼼히 전하던 저자는 이 가설로 인해 100만 년 후쯤엔 웃음이 수학보다 더 위대해질 것이라는 이야기로 점프한다. 리만 제타 가설이 해결될 경우 수학은 위대한 자리에서 내려와 컴퓨터 운영체제나 회계 방식처럼 단순한 인공물로 격하될 것이지만 지적 감정표현인 웃음은 여전히 위대한 것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광대한 우주 앞에 나는 미약한 존재’라는 깊은 밤 홀로 깨어나 가질 만한 허전함에 대해선 물리학의 우주 ‘스케일’ 개념으로 가볍게 정리해 우리를 다독이기도 한다. 키가 1∼2m인 인류는 우주적 스케일에서는 중간쯤에 위치하고, 우주적 수명면에선 오히려 제일 꼭대기에 있다며 인간이 그렇게 작고 덧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렇게 저자는 끈 이론을 이야기하며 진리와 아름다움을, 뇌과학의 역사를 훑다 기계와 기억, 그리고 행복에 대한 감각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생각의 깊이와 힘 그리고 순수한 아름다움을 견지하려 했다”며 “문외한에게는 빛나는 통찰을, 전문가에게는 뜻밖의 참신한 반전을 주고 싶다. 전혀 지루하지 않게”라고 썼다. 저자는 책에서 자신의 바람을 충분히, 넘치도록 해냈다. 508쪽, 2만7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