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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우석의 푸드로지 게재 일자 : 2020년 05월 22일(金)
참기름밥에 얹은 단무지·우엉… ‘엄마표 소풍 영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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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밥은 가장 평범한 음식이 됐지만, 독특한 재료를 넣으면 특별한 요리로 변신하기도 한다. 전복을 넣어서 말아낸 제주도의 전복 김밥. 제주에는 꽁치 한 마리를 통째로 말아 썰어내는 꽁치 김밥도 있다.

- 간단한 국민 간식 ‘김밥’

주인공은 김과 밥이지만
고기·채소 등 넣어 완성
섬유소 많고 열량은 적어

삼국시대에 이미 김 양식
기름 발라 구운 ‘김쌈’ 먹어
日 전래설은 사실이 아냐


소풍을 못 갔다. 올해 봄이 그래서였다. 아쉬워 춘래불사춘, 서러워 춘래불사춘이다. 소풍(消風)이란 무엇인가. 봄을 맞아 야외로 나가 볕을 쪼이고 바람을 쐬는 일이다. 때가 되면 해야 하는 일이다. 끼니처럼. 그걸 못했다. ‘봄소풍’이라고 하지만 따로 봄 자를 붙이지 않아도 된다. 소풍날, 그날이면 늘 설렜다. 전전반측 잠 못 이룬 꼭두새벽 일찌감치 깼다. 마치 장닭이라도 된 듯했다.


“삐리리 삐리리” 1비트 전자음 알람시계의 역할을 대신한 것은 바쁜 부엌에서 흘러들어온 고소한 참기름 냄새다. 어머니는 더 일찍 깨어나 부지런히 김밥을 말고 있다.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가 냉큼 김밥 하나를 통째로 집어 입에 물고 달음질을 친다. 갓 말아낸 김밥의 따스한 온기가 입가에 묻어나고, 참기름 향이 콧속을 찌른다.

김밥을 볼이 미어져라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노라면 재료들이 뒤섞이며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다. 혀를 한쪽으로 밀어붙이면, 부드러운 소시지와 밥이 함께 씹히며 달짝지근한 맛을, 또 반대편으로 밥을 넘기면 우엉과 단무지의 아삭하고 짭조름한 맛이 난다. 이제 가운데로 모아 우걱우걱 씹어본다. 익숙하다. 산채비빔밥에서 느꼈던 그 맛이다. 고추장 대신 김 향기가 가미됐을 뿐 딱 비빔밥 맛이다. 혀 놀림에 따라 하나하나 모두 다른 맛을 낸다. 이것이 한국인이 좋아하는 맛이다. 그랬다. 김밥은 비빔밥과 같은 맥락이라 한국인에게 인기가 높았다.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복합미(複合味, Blending taste)를 선호한다. 반찬을 한데 죄다 넣고 슥슥 비벼 먹는다. 그 안에서 맛을 찾는다. 비빔밥이며 김밥, 섞어찌개 등이 그렇다. 심지어 한정식도 그렇다. 반찬을 십수 가지 차려놓고 밥 한술과 함께 여러 반찬을 먹는다. 양푼이 아닌 입안에서 섞여 복합미를 낸다. 모두 한 상을 받았지만 다들 다른 맛을 느꼈다. 어떤 이는 우엉을 먼저 먹고 깻잎과 수육을, 그다음에 밥을 밀어 넣고 동치미를 떠먹는다. 건너편에 앉은 이는 호박전을 먹고 열무김치와 무채, 그리고 국에 만 밥을 먹는다. 같은 상 다른 식사다. 경우의 수에 따라 입속 맛의 조화가 몇 백 가지가 나온다.


다시 돌아와 김밥 얘기. 참기름 밥 속에 든 아삭하고 짭조름한 단무지, 분홍빛 싸구려 소시지는 분명 찰떡궁합이다. 어묵 조림도 우엉과 천생연분이다. 계란말이는 이를 완충시키고 김은 모든 것을 감싸 모양을 유지한다. 시금치와 당근, 때론 참치까지 초청 게스트의 역할을 제대로 한다. 당연히 김은 주인공이다. 너무도 지당한 말이겠지만 좋은 김밥은 무엇보다 김과 밥이 훌륭해야 한다.

사실 김밥은 고귀한 몸이었다. 지금이야 바쁜 일상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는 ‘구황 식품’ 신세가 됐지만, 예전엔 값비싼 별미였다. 손이 많이 가는 탓에 평소에는 하지 않는, 그래서 소풍쯤은 가야 먹는 음식이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좋아하는 메뉴도 김밥이다. 그때는 몸값도 귀했다. 1981년 4월 10일자 매일경제신문에는 롯데쇼핑센터 지하 1층에서 인근 회사원들의 점심 식사로 각광받던 김밥이 900∼1500원에 팔리고 있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10여 년 후인 1992년 10월 25일 동아일보는 1000원 하던 김밥 가격을 1200원으로 올렸다며 고속도로 휴게소의 ‘일방적인 바가지 상술(예나 지금이나!)’을 비판했다. 요즘 좀 비싸다 싶은 김밥이 3000원쯤(보통은 2000∼2500원)을 받으니, 30∼40년 전의 2배 정도다. 40년 동안 가격이 이 정도만 오른 물건은 김밥과 바나나(이건 오히려 내렸다)밖에 없는 듯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김밥 얘기를 해보자. 김밥은 어디서 왔을까. 대나무 발로 말아낸 오늘날의 김밥 형태는 일본 노리마키(海苔券)에서 시작된 것이 맞는다. 이를 위해 김을 네모나게 뜨는 ‘김발’도 그렇다. 하지만 앞서 가장 강조한 김밥의 특징인 복합미, 여기서부터 김밥과 노리마키의 차이점이 생긴다. 우리와는 달리 일본은 음식에서 단순미(單純味)를 선호한다. 대표적인 호소마키(細券, 가늘게 만다는 뜻)의 경우, 박고지나 아카미(赤身) 등 재료 하나만 넣고 작게 말아 한 가지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긴다. 김과 밥이 어우러져 새로운 맛을 낸다고 생각해 본래 이름도 사라진다. 메뉴가 재료의 이름을 따는 것이다. 간표마키(박고지), 데카마키(참치등살), 갓파마키(오이), 신코마키(다쿠앙) 등이 그런 예다.

초대리(노리마키용 밑간) 대신 참기름장과 갖은 채소, 다진 고기를 다채롭게 채워 넣는 방식은 순전히 우리식 입맛이다. 일본에도 여러 재료를 넣고 크게 말아놓은 간사이(關西)식 후토마키(太券)가 있긴 하지만, 어떤 지역에선 풀어헤쳐서 하나씩 맛을 본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거기다 20세기 초에야 처음 문헌에 등장할 정도로 호소마키에 비해 그 역사가 짧아 우리 김밥과 서로 어떻게 영향을 줬는지 불분명하다.

일본식 말이 기법과 도구를 사용하지만 김을 생산하고 밥을 싸먹는 본질적 김밥의 원리는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시작됐다는 의견이 많다. 심지어 김을 양식하고 즐겨 먹은 역사는 문헌상 우리가 더 빠르다. 김은 삼국유사에도 등장하고 본초강목 등에도 ‘신라의 김’이 언급된다. 경상도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도 광양과 하동에서 김을 길렀다는 내용이 나온다. 특히 인조 18년 병자호란 당시 의병장이던 전남 광양 김여익이 최초로 김 양식법을 보급해 그의 성(姓)을 따서 ‘김’이라 했다는 기록도 있다.

선조들은 김을 어떻게 먹었을까. 우리나라에는 애초 ‘김쌈’이란 음식이 있었다. 일본의 노리마키 등장 시기인 에도시대와 비슷한 1800년대 말엽에 나온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김에 솔로 기름을 발라 구웠다가 밥을 싸먹는 데 쓴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문헌상으로는) 후토마키보다 먼저(1928년) 별건곤에 등장하는 글에는 ‘김에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재웠다가 석쇠에 구워 밥 위에 놓아 먹는다’고 적었다. 따라서 김밥은 기존에 이미 상식(常食)하던 음식 ‘김쌈’이 일본의 식문화 영향을 받아 말아먹는 형태로 변형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통영의 명물인 충무김밥만 봐도 ‘독자적’ 김쌈의 형태가 남아 있으니 김밥을 딱히 일본 식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원래는 티끌만 한 작은 해초에 불과한 김을 제지(製紙)하듯 종이처럼 떠서 말린 이후, 쌈이나 말이의 형태로 김의 식용법이 변화한 것이다. 김밥은 둘둘 말린 원통 형태를 차용해 당당히 요리로 자리매김했다.

김밥은 맛도 좋지만 영양학적으로도 꽤 균형 잡힌 음식이다. 고기와 채소, 짠지를 충분히 넣었고 해조류로 감싼다.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어 좋고, 간편하게 섭취하지만 밥의 양에 비해 찬이 많아 섬유소는 높고 열량은 그리 높지 않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채소를 한꺼번에 넣어 한입에 즐기는 햄버거처럼 간단하게 먹을 수 있지만 비만을 초래하는 외국계 패스트푸드에 비할 바 아니다.

이처럼 한국인의 즐거운 날과 함께해온 김밥은 이제 허둥지둥하는 출근길 아침이나 바쁜 작업, 이동 중 끼니를 책임지는 역할을 충실히 해오고 있다. 학생과 회사원에게 값싸게 한 끼를 책임지는 ‘면학과 근로의 연료봉’으로서 그 충실한 기능도 당당하게 해낸다. 김밥과 함께라면 어떤 상황이라도 좋다. 향긋한 김 속 고소한 참기름밥, 그리고 아삭한 채소와 짭조름한 고기가 함께 어우러지는 김밥을 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소풍의 즐거움 절반쯤은 경험하는 셈이다. 바야흐로 김밥 한두 줄 손수 싸서 소풍이라도 다녀왔으면 하는 좋은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먹을까

명태·꽃나물 넣은‘연우김밥’… 섞박지·오징어조림 곁들인‘충무김밥’

국민간식 김밥, 그 덕분에 전국에 김밥깨나 만다는 맛집이 많다. 인기 있는 김밥 맛집을 소개한다.

◇연우김밥(서울 마포구) = 서울 마포구 상수동은 젊은이가 많이 사는 곳. 자취생들이 아침이면 바지런히 들러 김밥을 한 줄씩 챙겨가는 곳이 있다. 연우김밥은 별미 김밥으로 인기를 모으는 집. 좋은 식재료와 숙달된 솜씨로 다양하고 맛있는 김밥을 금세 쓱쓱 말아낸다. 피크닉 및 워크숍, 직장인 야구단 등이 단체 주문하는 명소다. 당근과 우엉조림, 단무지, 시금치, 햄, 계란말이 등이 들어간 연우김밥은 시그니처 메뉴다. 매운 멸치조림을 넣은 멸치김밥, 부드럽고 짭조름한 유부김밥, 명태회가 든 명태김밥, 참치김밥, 치즈김밥, 꽃나물김밥 등 다양한 메뉴가 있다. 여성에게 인기 높은 꽃나물김밥은 전주에서 가져온 꽃나물 무침을 잘게 썰어 넣어 담백하고도 싱그러운 맛이 난다.

◇보배김밥(경북 경주) = 성수기 하루 400∼500줄 판다는 바로 그 집이다. 경주역 근처 성동시장 내에서 이름을 날리는 집이다. 우엉김밥이 시그니처. 달콤 짭조름하게 조려낸 우엉을 김밥 가운데 듬뿍 넣어주고 아예 따로 수북이 더 얹어준다. 손에 들면 제법 묵직할 정도로 굵고 밥의 양도 상당하지만, 바삭한 김과 향긋한 우엉 향이 밥을 온통 지배하니 상관없다. 경주의 대부분 음식에 빠질 수 없는 고소한 참기름이 김밥의 맛을 완성한다.

◇통영 엄마손김밥 = 원래 통영이다가 1955년부터 1994년까지 ‘충무(忠武)시’였다. 이 지역 유명한 김밥이 있는데 이름은 여전히 ‘충무김밥’(사진)이다. 여수에서 충무를 거쳐 부산 가는 여객선이 있었는데, 배가 충무항에 들어서면 고무대야에 김밥을 잔뜩 담아 승객과 선원들에게 팔던 ‘뱃머리 김밥’에서 시작됐다. 김에는 순전히 밥만 말아내 꼬치에 꿰고, 호래기(참꼴뚜기)나 홍합을 조려 섞박지와 함께 먹는 독특한 방식이다. 중간에 소를 넣지 않으니 잘 쉬지 않아 먼 길 배 안에서 먹기 쉽고 맛도 좋았다. 강구안에 충무김밥집이 즐비하다. 죄다 원조라지만 별 상관없고 맛있는 집이 좋다. ‘엄마손김밥’이 옛날식으로 홍합과 호래기 등을 조려 판다. 서울에는 다동의 유명한 향토음식점 충무집에서 직접 운영하는 ‘충무집김밥’이 있다. 씹을수록 달고 구수한 섞박지와 쫄깃한 오징어조림과 함께 금방 말아낸 김밥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다 보면 한산 앞바다가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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