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국민 눈높이 재판’과 민중주의 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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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헌법학

김명수 대법원장이 25일 전국법관대표회의 인사말에서 “국민의 눈높이에서 어떤 재판이 ‘좋은 재판’인지를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법원장 추천제와 경력대등재판부 제도 확대, 상고제도개선특별위 설치 등을 좋은 재판 실현을 위한 토대 및 민주적·수평적 사법행정 실현을 위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재판 및 민주적·수평적 사법행정과 13일 자의 조선일보에 보도된 군부대 폭행을 다룬 군사법원의 유죄 판단에 대해 내린, 대기업 통상임금 사건에 대해 내린, 상반된 하급심 결론에 대해 양쪽 모두 상고 기각 등의 대법원 엉터리 판결들, 그리고 집행유예로 석방된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1심 판결 등 국민의 눈에 띄게 질이 떨어진 사법부의 모습은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지 알고 싶다.

우리는 대법원을 비롯한 재판부는 신전이며 판사는 신탁(神託·oracle)을 내리는 신관이라고 배웠다. 오늘날 신(神)을 빙자할 만큼 오로지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심판하는 한 사람 한 사람 판사의 독립과 신성함이 자유 민주정치에서는 결정적으로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 같은 신탁·신관에 비견되는 독립된 판사 임명과 그 판결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민주주의와 양립될 수 있는지 알기 어렵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민중주의적인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민중을 빙자하는 정치가 지배한다. 인민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인민공화국에서는 인민을 대변하는 공산당(즉 정치)이 사법부를 지배한다. 심지어 이런 나라에서도 판사들의 법원장 추천제, 민주적·수평적인 경력대등재판부 제도, 전국법관대표회의 제도는 없으며 우수한 자질의 판사 임명 등은 공산당이 결정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판사를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나라는 미국의 몇 개 주 판사의 경우를 제외하면 없다. 국민이 선출한 행정부의 수장(대통령)이나 국회가 판사의 임명에 관여케 함으로써 민주적 통제 아래 있게 될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법원장·대법관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며 일반 판사는 대법원장이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이 제도는 과거의 법관선거인단 또는 법관추천회의 등 나름의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진 임명제도라 할 수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판사로 임명받으면 임기 말까지, 또는 종신 제자리에 있는 판사 제도(예를 들면 미국)가 아니라, 일반 행정직 조직처럼 보직이나 임지 및 승진 등 인사가 상부에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계층적 조직 속의 판사 임명이라는 점이다. 계층적 조직 속에서 개개 판사로서의 자질·능력 판정을 배제한 완전한 추첨제가 아닌 한 공평(수평)한 민주적 판사 인사제도는 있을 수 없다. 판사의 자질·능력 판정에 따른 임지·보직·승진 인사권 행사를 대법원장 등 대법원이 장악했던 이전의 인사 제도는 불공평하고 비민주적이라고 지탄받게 돼 있다.

그렇지 않은 한 대법원장 등 대법원이 판사의 인사권을 지니게 돼 있는 현행 헌법과 법원조직법 체제에서 판사는 정치력의 행사를 잘해야 임지·보직·승진 등 인사상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전국법관대표회의나 ○○연구회 등의 조직 구성은 판사들이 법원 내 인사권 행사를 포함해 다양한 정치력 행사를 잘할 수 있는 유력한 장치일 수 있다. 정당의 국회의원 공천권 획득은 그 한 예다. 그 와중에 정치를 하지 않는 대다수 판사는 법률기술자·법률기능공으로 남게 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