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탈원전 폐기해야 ‘文 뉴딜’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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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코로나19 위기는 개혁 모멘텀
한국형 뉴딜 제시한 文대통령
돈풀기 대신 구조개혁 나서야

美처럼 경제번영 이끌 수 있어
노 前대통령의 한·미 FTA처럼
原電을 동맹 강화 카드로 써야

코로나19 사태 5개월여 만에 우리나라와 미국, 유럽 등이 초기 공포에서 벗어나 현실감을 갖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사망자는 30만 명을 넘어섰지만, 미국·유럽에서 확산세가 둔화되고 백신과 치료제 개발 기대감이 커지면서 안정을 되찾는 기류다.

이언 브레머 등 국제 분석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골디락스(Goldilocks) 위기’로 규정했다. 경기가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최적의 상태를 골디락스 경제라고 하는데, 현국면은 코로나 파장이 지나치게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아 제도·정책 개혁의 계기로 활용할 경우 보약이 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예상외로 조기에 끝나 국제금융제도 등의 개혁으로 이어지기 어려웠다. 1930년대 대공황은 미증유의 위기가 장기 지속되는 바람에 공포가 컸고 결국 2차대전이 끝나며 마무리됐다. 반면 코로나19 팬데믹은 백신 개발이 위기의 종식이라는 인식이 분명해 2008년 금융위기보다는 강도가 세지만 대공황보다는 덜 파국적이어서 각국이 개혁의 기회로 활용할 만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유리한 위치다. 먼저 코로나 확산 위기를 진정시킨 덕분에 여유 있게 포스트 코로나 대응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위기의 한복판에 있는 미·일·유럽 국가들에 비해 골디락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조건을 갖게 된 것이다. 코로나가 가져다준 위기라는 이름의 기회를 낭비하지 않는다면 코로나19 진단 시약을 발 빠르게 만들어 방역 모범국이 된 데 이어 코로나19 이후의 개혁 모델도 한국이 주도할 수 있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에겐 177석의 거대 여당과 어떤 경우에도 지지를 철회하지 않겠다는 열혈 지지층도 있다. 대한민국을 21세기형 ‘세계 공장’으로 거듭나게 할 구조 개혁을 정치적·사회적 저항 없이 할 수 있는 최적의 ‘3중 골디락스 기회’를 갖춘 셈이다.

대공황 분석서 ‘공포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Fear)’로 퓰리처상을 받은 데이비드 케네디 스탠퍼드대 명예교수는 최근 미 공영라디오(NPR) 토크쇼에서 “뉴딜의 성패 논쟁은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뉴딜이 제2차 세계대전 후 번영이 가능하도록 미국의 사회경제 프레임을 바꾼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뉴딜로 금융 및 사회보장·노동 등의 개혁을 이뤄낸 덕분에 미국의 전후 경제 성장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당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세계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인물”이라고 했던 지도자다. 그러나 대공황의 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공공사업 및 실업자 구제 등 국부 처방에 집중하느라 탈 공황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해 실패한 대통령이 됐다. 반면 1932년 대선에서 후버를 꺾고 백악관에 입성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구제·공공투자·구조개혁이라는 3중 프레임으로 번영의 기초를 닦았다.

문 대통령이 한국형 뉴딜을 언급한 이후 디지털 뉴딜, 한반도 뉴딜, 그린 뉴딜 등 기존 정책을 뉴딜로 포장한 유사 뉴딜이 쏟아지고 있다. 관건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미래 지향적 프레임을 어떻게 짜느냐이다. 위기 해결에 눈감은 채 현금 퍼주기 등 인기 영합 정책에 치중한다면 K-방역 덕분에 얻은 국제 신뢰를 잃어버리게 돼 제2의 후버가 될 수 있다. 반면 루스벨트식 사회·경제 프레임 개혁에 집중한다면 한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지지층을 겨냥한 노동·사회 보장 개혁에만 매달리지 말고 한국의 생존을 위한 경제·안보·동맹에 대한 종합 구상을 해야 한다.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본격화하며 경제번영네트워크(EPN)란 이름의 자유 진영 공급망을 구상 중이다. 우리나라가 이 기회를 활용하면 자유 진영의 원전·반도체 중심 공장이 될 수 있다. 미국이 한국과의 원전 공조를 동맹 강화 차원에서 접근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안보동맹을 경제동맹으로 격상시킨 것처럼 문 대통령은 원전 공조로 한·미 동맹을 첨단기술 분야로 확장할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원전은 온실가스 배출이 제로이기 때문에 ‘기후 악당’이란 오명도 벗을 수 있다. 이런데도 “탈원전은 신성불가침의 어젠다’라는 입장을 고수한다면, 골디락스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뉴딜은 성공하기 어렵다. 경제는 물론 동맹도 망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