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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20년 05월 28일(木)
왜 원조를 퍼부어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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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흙탕에서 물을 긷는 아프리카 아동들(왼쪽 사진)과 여가를 즐기는 미국 뉴욕 시민들(오른쪽). 19세기만 해도 빈곤국이었던 미국이 오늘날 번영을 누리는 것은 포드자동차 등 기업들이 시장을 창조하는 혁신을 이룬 덕분이라고 경영 사상가 크리스텐슨은 말한다. 자료사진

- 번영의 역설 /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등 지음, 이경식 옮김 / 부키

‘파괴적 혁신’ 주창한 저자
阿빈곤해결 실패원인 분석

우물 5만개 넘게 파줬지만
관리·수리할 인력 없어 방치
부패 없애려 규제 강화하니
음지화 등 부작용만 키워

시장 창조해내는 ‘혁신’하고
번영할 수 있다는 희망 줘야


“한국은 한국전쟁 직후의 한국이 아니다. 심지어 내가 처음 찾아가 보았던 1970년대 초의 한국도 아니다. 한국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이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이 번영을 창조하고 지속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은 한국 기업들이 끊임없이 수행해 온 혁신이다.”

이 책은 6장에서 10쪽에 걸쳐 삼성, 현대, 기아, 엘지, 포스코의 혁신 사례를 소개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한국은 수십 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는데, 1970년대에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부룬디, 아이티, 니제르, 과테말라는 왜 여전히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어떤 나라는 번영의 길로 가는데, 다른 나라는 왜 그렇지 못할까.”

책의 주 저자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은 미국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를 지내며 ‘파괴적 혁신’ 이론을 주창한 경영 사상가이다. 올해 초 67세로 타계했을 때 그의 혁신 이론이 세계적으로 다시 주목을 받았다. 크리스텐슨연구소에서 수석 펠로로 일한 에포사 오조모와 ‘하버드비즈니스리뷰’ 편집자를 지낸 캐런 딜론이 함께 집필했다.

책에 따르면, 1960년 이후로 빈곤 국가를 돕는 공적개발원조는 4조3000억 달러가 넘는다. 그런데 피원조 국가들 대부분이 여전히 가난하며, 심지어 20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더 줄었다. 국제통화기금(IMF) 표 자료를 통해 20개국 국민소득 감소 수치를 보면, 한국의 경제 성장을 왜 기적이라고 하는지 실감이 난다.

그런데 지구촌에서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며,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저자는 세계 각지 사례를 연구한 결과, 잘못된 전제로 밀어붙이기식 개발 전략을 썼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동안 인프라 개선, 제도 정비, 해외 원조 증대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으나 모두 실패했다. 이는 자원 부족을 빨리 해결해줘야 한다는 가정 자체가 잘못된 탓이라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버려진 우물이 5만 개가 넘는다는 사실은 그 증거이다. 물이 부족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우물을 만들면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지만, 우물이 고장 났을 때엔 고칠 수 있는 숙련공을 찾을 수 없는 등의 이유로 얼마 있다가 방치돼버린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학교, 병원 지어주기 사업 역시 교육과 의료 시스템 부족으로 해당 국가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인프라 개선이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에 회의를 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선진 제도를 도입해 사회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통념이 유효한 것은 아니다. 그 나라의 복잡한 사회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억지로 밀어붙이면 효율성을 이뤄낼 수 없기 때문이다. 2003년 아프가니스탄을 제2의 한국으로 만들고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은 제도 개혁은 그런 이유로 실패했다. 조지아 정부가 자국을 ‘캅카스의 싱가포르’로 만들겠다고 실시한 규제 개혁도 마찬가지이다.

빈곤국에 만연한 부패를 해결하기 위해 규제와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 이들 나라에서 서민의 부패는 힘겨운 삶의 조건에서 생존하기 위한 안간힘일 경우가 많다. 그런데 도덕적 의무감만을 부과하면 오히려 부패가 지하 세계로 뻗어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크리스텐슨은 빈곤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꿀 것을 제안한다. 즉, 아프리카에서 전기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약 6억 명의 사람을 단지 가난의 표지로만 보지 말고 개발과 발전을 기다리는 기회, 즉 거대한 시장 창조의 상징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탓에 제품을 소비할 여력이 없다고 치부하지 말고, 비(非)소비 상태의 사람들이 진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면 잠재력 있는 시장이 보인다. 밀어붙이지 말고 끌어당기는 전략, 즉 시장을 만들어 인프라와 교육과 제도, 심지어 문화 변화까지 견인하는 것이 실효적이라는 주장이다. 가난한 아프리카에서 휴대전화 사업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통념을 깨부순 셀텔이 그 사례이다.

이러한 ‘시장 창조 혁신’이 지향하는 가치는,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나날이 애쓰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번영의 희망을 주는 것이다. 크리스텐슨은 이 책에서 ‘번영(Prosperity)’을 어떤 지역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복지를 개선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부존자원에 의존한 부를 일부 시민에게만 편중 분배하는 나라는 부유하지만 번영하지는 않는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탐구와 혁신을 통해 다양한 시장을 개척하려 하지 않는 탓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세계의 찬사를 듣는 대한민국의 번영은 앞으로 어떻게 유지돼야 할까, 라는 새삼스러운 질문을 하게 된다. 472쪽, 1만9800원.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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