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권력 독점은 권력 실패의 입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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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대통령은 내일 이후 생각하며
소통의 大家로서 신뢰 쌓아야
야당 인정하는 협치 자세 중요

권력 주변 부정부패는 치명상
사법부 코드화 시도 특히 위험
견제와 균형이 방심 막는 장치

리처드 뉴스타트의 책 ‘대통령의 권력’은 대통령의 이중적 역할을 다룬다. 하나는 대통령이 현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매몰된 경우다. 이때 대통령은 법안을 의회에서 어떻게 통과시킬지, 파업을 어떻게 해결할지 등 지금 진행 중인 사안을 우선 다루게 된다. 하지만 대통령이 주어진 상황에 대한 대응에서 한걸음 물러나 전략적인 관점에 서게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대통령은 당장 어떻게 의회를 굴복시키느냐가 아니라, 내일과 이후를 본다. 대통령은 오늘의 시점에서 내일을 보며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한다. 단기 전술적 숙제는 일상적 국정 운영팀에 맡기고 대통령은 장기 전략적 과제에 집중한다는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과 경기 부양 등의 문제는 정세균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내각에 일임하고, 대통령과 청와대는 코로나19 이후의 한국 경제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대안 모색에 나서야 한다. 우리 공동체의 미래 경제와 사회를 위한 ‘한국판 뉴딜’의 정치적 기초를 만드는 게 대통령의 전략 과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국회와의 협치다. 대통령과 여당은 행정부와 입법부를 완벽하게 장악했다. 지방권력은 2018년 이미 정리됐다. 현실적으로는 협치의 필요성이 없는데 정치적 모양새를 만들어야 하는 역설적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에서조차 대통령과 의회는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양자가 함께 나라를 다스리지 않으면 어느 쪽도 나라를 다스린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행정부와 입법부가 미국보다 더 밀접하게 연결된다. 의원과 장관의 겸직이 그렇고 총리는 국회의장을 지냈다. 권력의 정점에 선 듯 보이는 대통령이 실제 권력의 현실에서도 정상에 서려면 무엇보다 ‘소통의 대가’가 돼야 한다.

대통령의 영어 단어 프레지던트(president)는 ‘회의·의식을 주재한다’는 프리사이드(preside)에서 나온 말이다. 대통령에게는 서로 권한과 책임을 나누고 대화와 논의로 힘을 모아가는 동지가 존재할 뿐인데, 동지는 여야(與野)를 초월한다. ‘대통령의 권력’에서 권력은 어떤 개인이 자기 손에 움켜쥐는 자산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맺어가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란다. 사람과의 관계에 물을 주고 볕을 쪼여 더 큰 권력으로 키우는 정원사가 대통령의 역할이란다. 핵심은 신뢰인데 이해 당사자 간의 불신은 권력 누수로 이어진다.

30일부터 시작되는 제21대 국회의 여야 개원 협상 쟁점인 두 위원회도 관례대로 하는 게 협치의 출발점이다. 비토 포인트를 가진 야당을 인정하고 그들도 국정 운영의 책임을 함께하게 하는 거다. 국회와의 협치는 대한민국 공동체의 경제·사회적 대타협의 정치적 기초를 놓는 출발점이다. 개헌도 포스트 코로나의 한국 정치를 담아낼 제도적 틀을 만든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둘째, 부패 관리다. “대통령은 두드러지게 도덕적 리더십이 필요한 자리”라고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지적했다. 우리 상황에서는 권력 주변의 부패 관리가 중요하다. 예상하지도 못한 시점에 의도하지도 않은 계기의 부정부패는 권력의 도덕성에 치명적이다. 세상사 뜻대로 되지 않는다지만 대의를 그르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기준보다 더 엄격하게 다루는 방법밖에 없다.

셋째, 권력의 견제와 균형의 존중, 특히 사법부 독립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한 1937년 ‘코트 패킹(court-packing)’이란 ‘사법부 개혁안’을 내놨다. 코트 패킹은 나이가 70세 6개월 이상 된 대법관이 나올 때마다 대통령이 대법관을 증원할 수 있게 하는 거다. 뉴딜 법안 중 일부는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는데, 대부분 연로한 판사들이 결정을 주도했다. 따라서 코트 패킹은 대법관 수를 늘려 위헌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었지만 상원은 압도적으로 부결했다. 권력의 견제와 균형, 3권분립의 도전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고참 판사들의 업무 부담이 걱정스럽다”고 했지만, 사법부를 ‘내 편으로 구성하겠다’는 그의 시도는 뉴딜 성공의 아픈 이면이다.

권력 독점은 권력 실패의 입구다. 견제와 균형 그리고 분권은 권력의 긴장이다. 권력의 세계는 잠깐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다. 오늘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의 청와대 오찬 회동이 협치의 출발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