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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철환의 음악동네 게재 일자 : 2020년 05월 29일(金)
편의점 알바서 가요계 ‘영웅’으로… 듣는 이에게 행복 주는 ‘감성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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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 ‘이제 나만 믿어요’

편의점에 들어갔는데 판매원이 약간 이상하다. 손님 온 것도 눈치 못 채고 노래 삼매경에 빠져 있다. 눈은 반쯤 감은 상태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졸지에 관객이 된 손님은 당황했을까, 황당했을까. ‘아저씨 뭐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입에서 이 말이 안 나온다. 보통노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흥얼거리는 것 같은데도 목소리에 실린 가사가 마음을 파고든다.

‘잠깐 내 얘기 좀 할게/ 잠깐 내 얼굴 좀 봐 줄래’(임세준 ‘오늘은 가지 마’ 중). 그날 그 노래에 사로잡힌 손님은 숨어서(?) 숨죽이며 끝까지 청년의 노래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야단 대신 박수를 받은 ‘알바’는 나중에 ‘영웅’이 됐다.

그는 눈을 감고 존 게 아니라 미래를 준비한 거였다. 미래가 안 보이는 건 그것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휘황찬란하기 때문이라는 드라마 대사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편의점 손님이 그 방송을 봤다면 친구에게 혹시 이런 문자를 보내지 않았을까. ‘계산대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꿈꾸는 알바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참고로 안도현 시인은 연탄을 소재로 두 편의 시를 남겼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너에게 묻는다’ 전문),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연탄 한 장’ 중).

요즘 이름값 제대로 하는 가수가 있다면 그가 바로 임영웅이다. 팬카페 이름도 영웅시대다. 가는 곳마다 문전성시고 출연하는 프로마다 대박 행진이다. 그가 머물렀던 곳엔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온다는 소문도 들린다.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까지 찾아온다(近者說遠者來)는 게 공자님 말씀이다. 임영웅이 ‘아는 형님’(JTBC)의 ‘나를 맞춰봐’ 코너에서 편의점 ‘알바’ 시절 일화를 공개할 때 제작진이 준비한 자막은 이랬다. ‘난 너무 감동을 받은 거야’. 여기서 ‘난’ 단수가 아니다. 노래를 부른 청년, 끝까지 기다려준 손님, 편집하는 PD, 그리고 미지의 시청자까지.

▲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감나무 밑에 누워 감(枾) 떨어지길 기다린다는 속담도 있지만 감(感)이 떨어지면 퍽 살기 난감해지는 곳이 음악동네다. ‘감성장인’ 임영웅은 바야흐로 감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다. 웬만큼 바람이 불어도 무게감, 안정감으로 버틸 것 같다. 음색은 시거나 떫지 않다. 음역에 자신감이 넘친다. 하지만 감나무골 기상도는 예측불허다. 기대감이 부담감으로, 행복감이 좌절감으로, 다정다감이 배신감으로 언제 바뀔지 장담 못 한다. ‘그저 꽃길만 걷게 해주세요’. 하지만 꽃도 꽃 나름이다. 인간이 만든 불꽃은 순간이지만 자연이 만든 풀꽃은 해마다 다시 핀다.

그날 편의점에서 고객은 감탄했고 가객은 감동했다. 그사이에 소중한 감이 하나 더 있으니 그게 바로 감사다. 세상엔 지켜보는 이가 있고 지켜주는 이가 있다. 영웅 뒤엔 ‘가진 것도 없던 내게/ 무작정 내 손을 잡아 날 이끈 사람’(임영웅 ‘이제 나만 믿어요’ 중)이 있었다. ‘궂은비가 오면/ 세상 가장 큰 그대 우산’이 돼준 바로 그 사람이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중략) 눈이 오면 눈 맞을세라/ 비가 오면 비 젖을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세라/ 사랑 땜에 울먹일세라’(나훈아 ‘홍시’ 중).

충만은 감성이 헤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결핍과 궁핍에서 우러난 절제가 감성장인을 키웠다.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이세돌은 경쟁에서 졌지만 감동에선 이겼다.

노래하는 로봇, 노래하는 인형은 감탄일 순 있어도 감동일 순 없다. 감사와 겸손, 감동과 눈물이 있어야 진정한 영웅이다. 인간의 향기를 잃지 마라. 그대가 그랬듯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진짜 행복이다.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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