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일 경제동맹 생각할 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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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 논설고문

호주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
對中 연합의 고리 차단이 목적
美中분쟁 속 한국도 선택 강요

한국·일본 경제동맹 구축 땐
2억 명 가까운 소비시장 출현
국제무대 내세울 절호의 카드

중국이 호주에 대해 전례 없을 정도로 가혹한 경제 보복을 펼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한 국제 조사를 요구한 데 따른 응징이다. 물론 조사 필요성을 역설한 나라는 호주만이 아니었다. 미국 주도하에 영국·독일·프랑스 등도 발을 맞춰 왔다. 그런데도 유독 호주만을 겨냥한 것은 호주가 가장 작은 나라라는 점에서 연대의 약한 고리를 끊으려는 전형적인 정치공학인 셈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를 두고 미국이 이끄는 ‘경제번영네트워크’(EPN)에 참여하려는 나라들에 본보기를 보여주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얼마 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격화하는 미·중 분쟁에 대해 ‘디커플링이 시작됐다’는 제목을 달았다. 하지만 지금의 국제 정세는 단순히 디커플링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미국의 대중(對中) 경제 압박은 상당히 노골적이다. 중국 경제의 대폭적인 후퇴 및 몰락까지 시야에 넣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미국 조야는 이를 위해서라면 신냉전마저 불사하겠다는 각오다. 서유럽 국가는 물론 일본·이스라엘 등도 중국으로부터 서서히 발을 빼는 양상이다. 이런 추세가 장기화한다면 국제사회는 앞으로 미·중 양축을 중심으로 한 경제 블록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동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 많은 국가가 중립이 허용되지 않는 선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호주 사태는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그러지 않아도 한국은 미국의 동맹권에서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로 취급당하는 처지다. 어설픈 등거리 외교를 펼치다가는 중국은 물론 미국에까지 배척당하는 가혹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그만큼 한국의 처지는 외롭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손을 잡을 수 있는 이웃이 중요하다. 그중 눈여겨봐야 할 나라가 일본이다. 미·중 대충돌의 와중에서 한국과 일본이 한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여러모로 유리한 입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국제 무대라는 장기판의 형세가 흔들릴 시점을 양국이 오히려 반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 회심의 카드가 바로 한·일 경제협력체 내지 한·일 경제동맹의 구축이다.

한·일 두 나라는 과거 역사를 둘러싼 감정적 앙금을 해소하지 못한 채 경제 협력의 폭이 줄어들면서 투자·고용, 기업 수익성 훼손뿐 아니라 경제 전반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 기업은 수출 시장이 축소되고 한국 기업은 연구·개발(R&D)을 포함한 생산비가 증가할 뿐 아니라, 시장 수요를 양분해 출혈 경쟁까지 벌임으로써 경제적 피해까지 감수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경제동맹에 성공한다면 양국은 내수 시장의 상호 개방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한편, 새로운 시장 창출을 위한 선도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내수 시장 통합만으로 2억 명 가까운 균질적 소비 시장이 열린다. 일본의 고도 산업 역량과 한국의 정보통신기술을 결합하고, 일본의 학문적 축적과 한국의 에너지(활력)를 융합함으로써 지구 상에서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경제 주체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다. 한·일 경제동맹이 본격화할 경우 G2 패권 다툼이 본격화한다 해도 미국이나 중국 어느 쪽이든 두 나라를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하지만 역사에 묶인 채로 미래를 열어갈 순 없다. 한·일 양국은 이제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환경에 대처해 나가야 한다. 국가 간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 유럽통합은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었던 독일과 프랑스가 서로 손을 잡음으로써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한국과 일본이라고 못할 일이 아니다. 다만 경제 침략이라는 주장 등이 득세하지 않도록 면밀한 협상과 정치력 발휘가 필요할 것이다.

때마침 위안부 출신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를 계기로, 상대에 대한 증오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반일(反日)운동이 무대 뒤에서 남몰래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에 의해 추동돼왔음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반일 마케팅으로 정치적 흥행을 유지해온 문재인 대통령이나 혐한(嫌韓)으로 맞서온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서는 공진(共進)의 대화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좋건 싫건 두 정치인의 시대적 효용은 끝났다. 하루빨리 새로운 대안이 출현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를 향해 손을 뻗어야 한다. 국제사회는 더 이상 반일과 혐한이라는 소모적 감정싸움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될 만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