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홍콩갈등’ 가치논쟁으로 확전…文정부 정체성 딜레마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반대” 대만 시민단체 회원들이 28일 타이베이에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통과시킨 홍콩 국가보안법은 ‘악법’이라는 문구를 적은 팻말을 들고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연합뉴스

英·加·濠 등 中규탄 공동성명
국익 기반한 가치수호에 무게

韓 ‘전략적 모호성’ 한계 봉착
“홍콩 외면땐 정권 정체성 타격
외교원칙 정한뒤 유연성 발휘”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과 관련해 미국과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이 인권과 민주주의 등 ‘가치 수호’에 무게를 두고 동맹국들의 참여를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도 이 같은 “‘가치 기반’ 위에 국익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문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가치와 국익추구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으로 버텨온 정부의 딜레마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의 올해 9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방한 추진으로 중국의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여 안보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원칙을 정한 뒤 유연성을 발휘하는 외교력”을 주문하고 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29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스스로 표방하는 것이 광장 민주주의, 대중 민주주의”라며 “우리 스스로 홍콩의 문제를 외면하면 정권의 정체성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도 “(홍콩보안법은) 원칙의 문제로, 이럴 때일수록 외교력이 중요하다”며 “홍콩 주민의 인권을 보장한다는 뜻을 담으면서도 중국을 자극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도 이날 가치수호를 위한 동맹국의 동참을 압박하고 나섰다. 하이노 클링크 미국 국방부 동아시아담당 부차관보는 이날 미 싱크탱크인 전략예산평가센터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우리는 중국의 악의적인 활동에 침묵하고 소극적으로 있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동맹과 우방에도 같이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클링크 부차관보는 중국 공산당이 중국을 개혁의 길에서 정치적 탄압, 경제적 강요, 국제질서의 거부라는 길로 전환시켰으며 중국은 미국의 동맹국과 파트너들의 주권도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날(28일) 표결 처리된 홍콩보안법의 골자는 홍콩에 정보기관을 세워 폭력 시위 등 반(反)중국 행위를 막는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인권 탄압 우려 속에 미국과 캐나다, 영국, 호주 등 4개국 외교·국무장관은 공동명의의 성명을 내 “홍콩보안법 도입이라는 중국의 결정과 관련해 큰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서구 사회가 미·중 사이에서 이익보다 가치를 우위에 두고 움직인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과 영국의 요청에 따라 29일 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과 관련한 공식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는 홍콩보안법과 관련한 입장 표명 없이 대응 방향을 고심하고 있다. 전날 올 들어 처음 열린 외교전략조정회의 통합분과회의에서도 이 문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성호 외교부 경제외교조정관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오늘 결론이 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중 양국의 압박이 거세지는 형국에서 정부가 시 주석의 조기 방한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국제 사회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김유진·박준우·정철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