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트렌드>“60개 화분속 초록기운… 경직된 삶에 순한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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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금희의 ‘식물예찬’

눈을 뜨면 발코니의 화분부터 살핀다. 간밤에 무슨 일은 없었나. 요즘은 진딧물, 응애가 잘 생기는 때라 더 세심히 살핀다. 물을 주고, 앱을 켜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고 창문을 연다. 김금희(사진) 소설가가 아침마다 하는 일. 맞다. 김 작가도 이미 ‘식물교’ 신도다.

조금씩 들이기 시작한 식물이 어느덧 60여 개. 어떤 날은 ‘초록 기운’ 속에 마냥 앉아 있기도 하고, 자기 전엔 조용히 밤 인사를 한다. 김 작가는 “식물에는 인간이 본래 가졌을 중요한 환경을 되살려주는 힘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흙, 물, 공기, 그리고 생명이 있는 곳에 반드시 존재하는 벌레, 또 인공적으로 조합하지 않은 ‘살아 있는 것들’이 내는 본연의 냄새, 그 모든 것…. “식물은 왕성했다가, 시들었다가, 꽃과 열매를 탄생시켰다가, 잎을 모두 떨어뜨리기도 하죠. 경직화될 수 있는 우리 삶에 순한 균열을 내는 것, 그것이 식물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김 작가는 마음에 드는 식물이 있으면 용감하게 데려오는 편이다. 유칼립투스 블랙잭, 미니 코코넛나무, 칼라데아 메달리온, 떡갈고무나무, 올리브, 산호수…. 나열하자니 끝이 없다. 전부 잘 자라는 건 아니다. 얼마 전 화분 갈이를 한 유칼립투스는 지금 시들고 있다. 마음이 흐려지지만, 자책은 하지 않으려한다. 그는 “생명의 소멸을 안타까워하며 부정적 감정 속에 빠져드는 건, 또 다른 생명인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위”라며 “식물이 환경에 따라 변화를 겪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인간 손 밖의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화분이 죽으면 집 밖에 내놓곤 하는데, 비둘기가 날아와 가지를 물고 가더라고요. 집을 지으려는 것이지요. 그 장면을 본 후, 발코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완전한 자기 책임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것은 거창하게 말하면 자연의 일, 그 순환이니까요.”

“식물을 키우면서 깨닫는 것이 많다”는 김 작가는 조만간 식물 관련 에세이도 써 볼 생각이다. 식물을 돌보고, 죽이기도 하고, 살려내다 보면 자기 자신을 보게 된다. “저는 대체로 스스로에게 매정한 편이고 늘 해낸 것보다는 하지 못한 것에 더 마음을 쓰는 편인데, 그런 마음들이 화분에 투영되는 셈이죠. 뭔가 앞으로는 자신에게 너그러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은 그런 얘기들을 기록하고 식물을 기르는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에게나, 누구의 발코니에서나 일어나고 있을 일이니까요.”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