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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20년 06월 02일(火)
人材안목 없는 우둔한 임금… ‘권간’ 제거하려다 ‘다른 권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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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제13대 명종(1545∼1567)과 그의 부인인 인순왕후 심씨의 무덤인 강릉(康陵).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자리 잡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 박현모의 한국형 소통이야기 - (10) 명종이 ‘혼군’인 진짜 이유

‘조선의 동탁’윤원형, 무소불위 힘으로 매관매직·역사까지 조작… 명종, 尹 견제위해 중용한 이량도‘사리사욕’
당대 뛰어난 이황·이이·기대승 활용안해 국정쇄신 기회 놓쳐…결국 왕에 대한 신뢰 사라져


얼마 전 경기 파주시에 있는 윤원형(尹元衡)의 묘소에 갔을 때 난데없이 떠오른 사람은 노벨이었다. 조선 명종시대 “권간(權奸)”의 무덤 앞에서 스웨덴의 발명가를 생각한 것은 아마도 역사적 평가의 엄중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만약 윤원형이 사후에 자신이 ‘권력 가진 악인’의 대명사로 불릴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노벨이 “죽음의 상인 죽다”라는 어느 신문의 잘못된 부고(訃告)에 충격을 받아 전 재산을 기부해 노벨상을 만든 것처럼, 윤원형이 ‘조선의 동탁’이라는 오명으로 두고두고 불릴 걸 알았더라면 다른 삶을 살았을까?

사실 윤원형보다 좋은 정치를 펼 기회를 가진 사람도 없었다. 그는 중종 때 과거에 합격한 문신으로 뒤에는 누이 문정왕후가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었다. 그가 만약 12세의 어린 왕 명종을 보필해 국가경영을 제대로 했더라면 ‘조선의 주공’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국가’가 아니라 ‘권력’에 있었다. 윤원형이 심혈을 기울인 것은 이조와 병조의 5품 이하의 인사 담당 부서에 자기 사람을 심는 일이었다. 낭관(郞官)이라 불리는 인사 실무자를 장악해 중앙의 언론을 통제하고 지방 수령의 발령을 좌우했다(한춘순, ‘명종대 훈척정치 연구’ 90쪽).

▲  MBC 드라마 ‘옥중화’에서 윤원형을 연기한 정준호(위). 경기 파주시에 있는 윤원형의 묘역.
언론과 인사권을 장악했다는 것은 곧 마음대로 매관매직을 해도 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을 뜻했다. “인사 담당자가 오직 재상이 있는 것만 알고 군부(君父)가 있는 줄은 알지 못해서, 작금(昨今)의 정사가 모두 사사로운 요청(私請)에 의하여 이뤄진다”는 비판이나 “옛날에는 인물이 현능(賢能)한지 아닌지를 보아서 무사를 등용했는데 지금은 재상과 결탁한 뒤에야 등용되며, 권신(權臣)에게 후한 뇌물을 바치기만 하면 장군까지 올라갈 수가 있다”는 말은 그런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명종실록 8년 3월 4일, 15일).

매관매직의 필연적 결과는 백성 수탈이었다. 지방의 수령들은 재상에게 바칠 뇌물을 마련하기 위해 힘없는 백성들만 찾아서 과중한 세금을 부과했다. 내수사(內需司)를 통한 왕실 재산 증식 과정에서 백성들이 땅을 빼앗기거나 노비로 전락하는 현상도 발생했다. 명종 14년에서 17년까지 약 4년간 중앙정부를 위협할 정도로 커진 임꺽정의 활약은 그러한 민생 파탄을 배경으로 삼고 있었다.

명종시대의 언론은 집권자의 정치도구에 불과했다. 윤원형 등 집권자들은 언론을 담당하는 “대간(臺諫: 사헌부와 사간원)에게 관작을 뇌물로 주고 대간의 관리를 불러 탄핵하지 말라고 주의 주는가” 하면, 정적들을 공격하는 도구로 언론을 활용하곤 했다(명종실록 15년 10월 4일). 명종의 즉위 초부터 계속된 고변(告變)과 추국(推鞫)을 통한 일련의 정적 제거(을사사화)는 이러한 언론의 권력자 추종과 무관하지 않았다.

대담하게도 윤원형 등 집권 세력은 역사 조작까지도 감행했다. 1547년(명종2)의 ‘양재역 벽서사건’, 즉 서울 양재역에 “여주(女主)가 위에서 정권을 잡고, 간신(奸臣) 이기 등이 아래서 권세를 농간하고 있으니, 나라가 장차 망하는 것을 서서 기다리게 됐다”라는 대자보가 나붙자, 문정왕후는 이언적과 유희춘 등 비협조적인 인물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나아가 성종시대부터 그때까지의 내우외환을 정리해서 ‘속(續)무정보감’이란 책을 편찬하게 했다. “(사화 때 숙청된) 윤임이 흉악하게 역적질을 한 정상을 외인들로 하여금 자세히 알게 해야 한다”는 편찬 목적에서 보이듯이(명종실록 2년 10월 11일), 이 책은 철저하게 집권 세력의 정치보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만들어졌다. 실록의 사료까지도 검토해서 집권 세력에게 불리한 것을 고치려 한 것이라든지, 이 책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한 사람을 엄하게 처벌한 것을 볼 때(명종실록 2년 11월 28일, 4년 2월 3일), 윤원형 등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자였음을 알 수 있다.

역사 속 권간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은 “탈가(脫駕: 수레에서 내려옴)할 때”를 모른다는 점이다. 더 많은 권력과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정적 제거 작업을 계속하다가 최고 권력자, 즉 국왕의 역린을 건드린다. 고려 인종 때의 이자겸이 그랬고, 조선 후기 정조 때의 홍국영도 같은 길을 걸었다. 국가경영의 비전이나 방략이 없다 보니 왕과의 혈연관계를 더욱 강화하거나(국혼(國婚)정치), 자기 세력을 정부 요처에 심어서 권력을 영구화하려 한다(낙하산 인사). 하지만 왕들은 자신을 허수아비로 만들려는 이들의 시도에 곧 염증을 내고 대체 세력을 끌어들이곤 했다.

▲  병풍석과 석인으로 둘러싸인 강릉의 전경.

재위 중반에 명종이 윤원형 대신 이량이라는 또 다른 외척을 끌어들인 것이 그 예다. 이량은 왕비의 외삼촌으로 명종 초년 문과에 합격한 후 왕의 후원에 힘입어 고속 승진했다. 명종은 이량과 친한 사람들을 인사 담당 부서에 임명하는가 하면, 승지인 이량으로 하여금 쓸 만한 인물 이름 아래 표시하게 하는 방식으로 그의 세력을 키워주었다. 윤원형을 견제하기 위해서였지만 그것은 ‘늑대를 피하려다 승냥이를 끌어들인 꼴’이었다.

이러한 ‘리스트 인사’와 왕의 밀지(密旨)를 이용한 ‘비선(秘線)정치’는 실제로 윤원형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새롭게 득세한 이량은 윤원형을 대신해 새로운 권간이 돼가고 있었다. 그는 이전의 권간들과 마찬가지로 ‘동조자는 진출시키고, 달리하는 자는 배척하는’ 편당적 인사를 계속했다. 환관을 통해 과거시험 문제를 빼내 자기 아들을 인사 담당 부서에 앉히는 등 사사로운 인사도 감행했다. 결국 ‘왕의 위복(威福)을 도적질’해서 사욕을 채운다는 비판이 명종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사사로이 누구에게 벼슬을 주려고 할 때면 인사 담당자에게 ‘상지(上旨: 왕의 뜻)’라고 협박하고, 남의 집을 뺏을 때는 ‘내헌(內獻: 왕에게 바침)’이라고 핑계한다”는 탄핵이 그것이다(명종실록 18년 8월 19일). 이 탄핵으로 이량은 즉시 삭탈관직되고 유배형에 처해졌다. 윤원형과 비슷한 말로를 걸은 것이다.

그런데 이때 무너진 것은 이량만이 아니었다. 왕에 대한 신민들의 신뢰도 함께 사라졌다. 불과 40여 년 전에 중종이 조광조 등에게 했던 권력정치를 반복하는 것을 보고 인재들이 떠나갔다. 즉위 초반 수렴청정 때는 어린 왕에게 무언가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왕의 친정(親政)이 시작된 재위 8년 이후부터 명종에게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특히 문정왕후가 사망하고 윤원형이 제거된 재위 20년 이후부터 왕은 이황, 이이, 기대승 등 당대의 뛰어난 인재를 제자리에 앉혀 국정을 쇄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명종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권간으로 권간을 제거하는 데 힘을 쏟았고, 모처럼의 기회는 사라져 버렸다.

나중에 율곡은 혼군(昏君)을 이렇게 정의했다. “다스림을 이룩해 보려는 뜻은 비록 있으나, 간사한 자를 분별할 총명이 없어서 어진 인물과 재능 있는 인재에게 믿고 시킬 줄(任賢使能) 몰라 점점 나라를 패망하게 하는 자”라고. 인재 안목이 없었던 명종을 정확히 가리키는 말이라 생각한다(역설적이게도 그런 그에게 ‘눈 밝은 명(明)’이라는 묘호가 주어졌다.)

윤원형과 이량, 그리고 역사 속 숱한 집권자를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그들이 공부를 안 한 것도 아니었고, 힘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왜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을까? 기회의 활용은커녕 두고두고 지탄받는 대상이 되고 만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경영의 비전과 방략이 없었기 때문일까? “중책 맡은 자가 품은 계책이 없으면, 비방 받고 마침내 화를 입게 된다(任大責重 而無所蘊 則招謗取禍)”는 황희 정승의 말이 더욱 간절히 와닿는 요즘이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 용어설명

내수사(內需司) : 조선시대 왕실의 재정 관리 관서로, 개국 초 고려 왕실로부터 물려받은 왕실 재산과 함경도 함흥지역을 중심으로 한 이성계 가문의 사유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설치됐다. 명종시대에 들어 내수사는 왕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의 뜻에 따라 강화됐다. 중요한 지역의 토지와 노비가 내수사 소속으로 옮겨졌으며, 내수사를 담당하는 환관의 세력도 커졌다. 특히 불교 행사 비용이 내수사를 통해 지출되면서 언관의 비판 대상이 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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