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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병종의 시화기행 게재 일자 : 2020년 06월 02일(火)
울음과 노래는 하나… 사랑밖에 몰랐던 ‘작은 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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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비앙로즈, 39.5×54.5㎝, 종이에 먹과 채색


■(33) 佛 샹송가수 에디트 피아프

3류 가수 엄마·곡예사 아빠
피아프도 장터서 노래 불러

식당 사장에 이끌려 파리로
마침내 장 콕토 눈에 띄어

연인 이브 몽탕이 떠나자
자작곡 ‘라비앙 로즈’발표

열애했던 복싱선수는 사고사
‘사랑의 찬가’로 아픔 달래

21세 연하 이발사와 결혼뒤
마약중독 시달리다 세상 떠


저만치 물랭루주가 보인다. 하지만 이제는 쓸쓸한 풍경. 난쟁이 화가 로트렉도 없고 에디트 피아프의 그 애절한 노래도 들려오지 않는다.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가 사라지고 로트렉이 없는 물랭루주는 비어 있다. 물랭루주만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온 파리가 텅 비어 있는 것 같다. 파리의 밤하늘에 울려 퍼지던 그 연가(戀歌)가 사라지고 파리의 에스프리를 낳던 그 시대 그 사람들 또한 가버렸다. 이제는 기웃거리는 구경꾼들밖에 없다. 프랑스판 엘레지의 여왕, 파리에 이런 목소리는 두 번 다시 없다고들 했던 그 에디트 피아프는 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프랑스 외곽 베르빌에서 태어났다. 그 베르빌 장터에서 노래 부르던 북아프리카에서 흘러온 장터의 가수였던 에디트 피아프의 어린 엄마. 그 굴곡진 사연은 시작부터 슬프다. 우리네식으로 말하자면 판소리 열두 마당으로 풀어도 다 못할 한 많은 생애였다. 처녀는 어느 날 그 마을에 들른 서커스단의 잘생긴 곡예사와 눈이 맞아 하룻밤 사랑으로 그만 아이가 생기고 만다. 곡예사 남자는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나 버렸는데 마을의 삼류 가수인 이 아가씨는 홀로 딸아이를 낳는다. 불세출의 가인(歌人) 에디트 피아프는 그렇게 태어났다. 어린 딸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여인은 계속 생계를 위해 이곳저곳 시장을 떠돌아다니며 노래를 불러야만 했는데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삶이어서 외할머니는 어린 손녀딸에게 우유를 사 먹일 수도 없는 처지였다. 결국 아이는 영양실조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고 어른이 돼서도 키는 140㎝ 근처에 멈춰 있었다. 그 발육부진의 작은 아이 또한 5세 무렵부터 엄마를 이어 장터에서 노래를 불렀고 ‘작은 참새’로 불리던 소녀의 노래가 끝나면 할머니는 모자를 돌려 사람들에게 동전을 구걸했다. 그렇게 노래 부르던 키 작은 소녀 앞에 그녀의 엄마가 그러했듯 어느 날 휴가 나온 어린 군인이 나타났고, 하룻밤 동침으로 채 15세도 되지 않은 소녀 또한 아기를 낳았다. 휴가병은 물론 귀대하고 난 뒤. 하지만 극빈한 삶 속에서 아이가 아기를 제대로 키울 수는 없었을 것. 어린 소녀 에디트 피아프가 낳은 딸아이는 2세도 안 돼 뇌수막염으로 죽는다. 여기까지만 와도 기가 막히게 박절한 인생사다. 아기가 죽고 나서도 장터에서의 노래는 계속됐는데 어느 날 그 소녀 앞에 다시 한 남자가 멈춰 섰다. 행색은 남루했지만 소녀의 목소리가 비상했기 때문. 남자의 이름은 루이 레플리. 파리에서 재니스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우연히 만난 노래 잘하는 시장의 소녀 에디트 피아프를 데리고 파리로 간다. 낮에는 식당을 청소하고 밤에는 노래를 하도록 했다. 숙식 제공에 약간의 주급까지 주어졌다. 꿈같은 일이었다. 제대로 먹고 성량을 발휘하면서부터 바야흐로 에디트 피아프의 천재성이 발휘되기 시작한다. 싹수를 알아본 마음 좋은 루이는 작사 겸 작곡가인 레몽 아소에게 그녀를 데리고 갔고 그때부터 생애 최초의 음악교육을 받는다. 전문 음악인이었던 레몽 아소가 다듬은 그녀의 음악성은 빛을 발했고 바야흐로 온 파리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인이자 극작가, 소설가이자 화가였던 장 콕토에게까지도 그녀의 천재성은 발견된다. 당시 장 콕토는 파리문학과 예술계의 총아였다. 그의 눈에 들고 그 재능을 인정받는 것은 천금 같은 축복이었다. ‘작은 참새’의 인생행로가 물길을 바꾸기 시작했고 급기야 진출하게 된 곳이 바로 ‘빨간 풍차’라는 이름의 물랭루주였다. 유명한 환락가인 ‘피갈’의 ‘붉은 장미’였던 물랭루주는 캉캉으로 유명한 곳. 물랭루주 무대에 서기 시작하면서부터 에디트 피아프의 삶은 샹송 가수로서 질주한다. 특히 많은 가수가 목마르게 가사를 받기 원하던 장 콕토의 눈에 들었다는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 원래 샹송은 곡보다도 가사. 시성(詩性)과 적절한 드라마가 엮어지면서 비로소 ‘노래’가 되는 것이었다.


20세 무렵 이미 그녀는 잘 무르익은 샹송의 명인이었다. 이즈음 같은 물랭루주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이탈리아 출신 미남 청년 이브 몽탕이 그녀에게 접근해온다. 늘 채워지지 않는 사랑에 목말랐던 에디트 피아프는 자신도 노래를 부르고 싶다며 찾아온 연하의 청년에게 금방 빠져들고 만다. 무명의 이탈리아 청년은 사교계에 이름이 알려졌고 그녀는 그를 데리고 유명 영화감독을 찾아가 데뷔시킨다. 말하자면 혈혈단신 무일푼으로 파리에 온 이브 몽탕은 에디트 피아프 덕에 단번에 영화계로 진출한 것이다. 그녀는 잘생긴 그 이탈리아 남자를 너무도 사랑했지만, 그는 영화계에 이름이 알려지면서 물랭루주의 키 작고 못생긴 연인을 버리고 떠난다. 그와의 너무도 황홀하고 짧았던 사랑의 기억을 노래한 것이 바로 스스로 만들었던 ‘라비앙로즈(장밋빛 인생)’. 이후로 사랑이 떠나갈 때마다 노래가 남겨진다. 그리고 아무리 슬픈 사랑의 기억이라 할지라도 그녀는 아름답고 찬란한 노래로 승화시켜냈다.

▲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그녀에게 사랑의 아픔과 이별의 고통을 넘어서는 방법은 노래밖에 없었던 것. 더구나 자신의 삶 자체를 노래한 것이어서 더 절절했다. 급기야 물랭루주 출신의 이 불운한 여가수는 미국으로까지 초청받아 꿈의 무대인 카네기홀에 선다. 시골 시장에서 노래하던 옛날 거지 행색의 그 어린 소녀가 세기의 디바가 된 것. 그런데 이때 다시 운명의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상대는 109전 109승의 프랑스 역사상 전무후무했던 미들급 복싱챔피언 마르셀 세르당이었다. 같은 프랑스인으로 미국에서 만났던 두 사람은 불같은 사랑에 빠져들었는데 공교롭게도 무패의 전적이었던 그는 그녀와 사랑에 빠지면서 내리 4연패의 치욕적 기록을 남긴다. 급기야 마르셀의 아버지가 그녀를 찾아와 헤어질 것을 호소한다. 우리 아이는 애 셋 달린 유부남이라고. 제발 떠나달라고. 이렇게 해서 한동안 헤어졌던 두 사람은 어느 날 다시 전화가 연결됐고 에디트 피아프는 파리에 있던 마르셀에게 너무너무 보고 싶으니 내일 당장 미국으로 와달라고 간청한다. 마르셀이 배로 가겠다고 했으나 기다릴 수 없으니 당장 에어프랑스를 타고 와달라고 애원했고 마침내 마르셀의 티케팅을 확인하고서야 그녀는 행복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다음 날 TV를 켜니 미국으로 오던 에어프랑스가 추락해 승객 전원이 사망했다는 소식. 연인이 탔던 비행기였다. 충격으로 실어증을 앓고 한동안 두문불출하며 어두운 방에서 홀로 지내던 그녀를 일으킨 것 역시 바로 노래. 저 유명한 ‘사랑의 찬가’였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 해도 그대가 나를 사랑하기만 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아도 죽음을 넘어 나는 그대와 있을 거예요….” 비장하기까지 한 그 사랑의 노래를 그녀는 장엄 미사곡처럼 승화된 노래로 만들어 절창했다.

하지만 그 이후는 심신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술과 담배에 절어 피폐해져 간다. 아직 40대였던 그녀는 마치 70세 노인처럼 황폐하게 바뀌어버린다. 사랑은 이제 끝난 것일까. 아니었다. 불타버린 땅에 초록 풀이 올라오듯 다시 사랑이 찾아왔다. 1952년 자크 필스라는 남자와 결혼하게 되는데 4년 만에 이혼. 알코올중독과 함께 마약에까지 손을 대게 된다. 입·퇴원을 거듭하며 다 죽어가던 그때 다시 스물한 살 연하의 25세 이발사가 노래를 배우고 싶으니 가르쳐 달라며 나타난 것. 1962년 병상에 있던 그녀는 그 스물한 살 연하의 테오 사라포와 또다시 결혼한다. 그야말로 ‘사랑밖에 난 몰라’였다. 그러나 결혼 1년여 만에 48세 나이로 한 많은 이승을 떠나는데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받고 충격으로 쓰러진 사람이 바로 장 콕토였다. 다시 일어나지 못한 채 그는 에디트 피아프의 사망 다음 날 세상을 뜬다. 이틀 사이에 파리는 불세출의 천재 두 사람을 잃고 만 것. 그리고 운명이었을까, 테오 사라포 역시 그녀의 사망 7년 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지금 파리 외곽 공동묘지 페르 라셰즈에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갈망했던 그녀의 곁을 결국 스물한 살 연하의 마지막 남자 테오 사라포가 지키고 있다. 에디트 피아프. 이 불세출의 샹송 여왕은 평생 사랑에 목마르고 갈구하는 작은 꽃 한 송이였을 뿐이다.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파리 11구에는 기념관 불꽃같은 인생 ‘한눈에’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1915∼1963)

20세기 프랑스 최고의 샹송 가수로 일컬어지는 에디트 피아프는 유독 사랑의 기쁨과 상실을 노래한 것이 많다. 어릴 적 극빈한 삶 속에서 부모로부터 제대로 사랑받고 자라지 못했던 그녀는 연인들을 통해 사랑을 보상받길 원했지만, 번번이 그녀의 바람은 아픈 상처와 절망으로 되돌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치 사랑의 최종적인 승전가를 부르듯 노래했고 그중에서도 ‘라비앙로즈(La vie en Rose, 1946)’와 ‘사랑의 찬가(Hymne a La mour, 1949)’가 절창으로 꼽힌다.


지극히 자전적인 이 노래들은 사랑의 기쁨과 함께 지독한 상실과 외로움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호소력 있는 목소리에 담아냄으로써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이브 몽탕에게 버림받고 부른 노래는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장밋빛 인생’이라는 이름을 단 ‘라비앙로즈’로 꽃이 됐고, 연인 마르셀 세르당이 비행기 사고로 죽은 뒤에는 ‘사랑의 찬가’를 불러 죽음마저 뛰어넘은 사랑으로 회자됐다. 파리 11구에는 기념관이 있어서 음반과 의상사진 등을 통해 불꽃 같은 그녀의 생애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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