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두산重에 ‘풍력’하라는 탁상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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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에교협 공동대표

두산중공업이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석탄을 내팽개치고 낯선 풍력·가스터빈을 선택할 모양이다. 잘 나가던 농구팀이 똑같은 구기 종목이라는 이유로 축구 경기에 나서는 격이다. 물론 승리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골병을 안겨준 정부가 던져준 3조6000억 원의 구제금융으론 어설픈 공차기 연습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이제 탈원전·탈석탄은 아무도 돌이킬 수 없는 불가역적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대통령으로선 내키지 않았던 원전 수출의 부담도 확실하게 털어 버리게 된다. 전력 부족을 걱정할 이유도 없다. 그러잖아도 시들하던 경제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은 만만찮다. 기계산업의 메카인 창원의 지역경제가 위험하다. 공론화위원회의 지혜로운 청년들이 어렵게 살려낸 신고리 5·6호기의 기자재 납품도 올 연말이면 막을 내린다. 두산중공업의 원전·석탄으로 연명하던 수백 개의 중소기업이 속절없이 문을 닫게 된다. 풍력·가스터빈으로 갈아탈 수도 없다.

원전을 운영해야 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사정도 절박해진다. 창원의 원전 부품산업이 무너지면 남아 있는 원전의 안전 가동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원전은 아무나 함부로 가동할 수 있는 시설이 아니다. 원전의 유지·보수에는 세계적인 공인을 받은 수많은 부품이 필요하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전문인력도 확보해야 한다. 결국, 남아 있는 원전을 앞으로 80년 동안 가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요행히 계속 가동하더라도 상황은 심각하다. 유지·관리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 한수원의 수익 구조도 심각하게 악화할 수밖에 없다.

국민 생활과 국가경제에 필요한 전력을 생산·공급해야 하는 한국전력공사의 입장도 난처해진다. 발전단가가 가장 싼 원전을 포기하고, 가장 비싼 액화천연가스(LNG)에 의존해야 한다. 그런데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탈원전을 고집하는 정부의 분명한 입장이다. 신재생의 보조금 부담도 극복해야 하고, 세계 최고급으로 만들겠다는 한전대학의 설립과 운영도 떠맡아야 한다.

기술적 어려움도 심각하다. 100여 개의 대규모 발전소로 구성된 송전망에 수천 개의 ‘간헐성’ 신재생이 추가된다. 고립무원의 ‘전력 섬’인 우리나라에서는 널뛰듯 출렁이는 신재생이 쏟아내는 전기를 소화할 수 있는 기술적인 방법이 없다. 세계 어느 나라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난제 중의 난제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스마트 그리드와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는 아직도 먼 훗날의 꿈이다.

한 번 잃어버린 원전 기술을 되살리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원전 종주국이었던 영국과 미국이 우리의 원전 기술을 탐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은 ‘기후악당’의 오명을 벗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세계가 원전 기술을 중심으로 빠르게 개편되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자칫하면 소중한 원전기술을 내던져 버린 우리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다.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습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통령 취임사의 한 구절이다. 세계 수준의 농구팀 더러 축구를 강요하는 것은 명백히 불가능하고 잘못된 일이다.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도 있었다. 다행히, 아직은 국민과 약속을 지킬 시간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