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식의 지식카페>부산보다 강릉이 동쪽?… 필요 정보만 민감, 불필요 땐 둔감한 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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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식의 과학으로 본 마음 - (10)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

심적 지도에 언어적 개념 지식이나 판단의 왜곡 요인이 침투해 도시의 위치 변형 시켜
심상 형성할 때 뇌 영역 함께 사용… 감각적으로 많은 훈련하면 학습에 더 나은 수행 이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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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마음이 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 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어머니의 얼굴, 좋아하는 냉면의 맛, 친구의 미세한 몸짓, 표정 하나하나도 말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고 있다. 미술과 음악, 무용과 연극, 영화 등 다양한 예술적 표현은 우리가 단순한 언어만으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의 표상(심적 표상)을 투영해 왔다.

우리 마음에는 세상을 언어나 명제로 전환해(디지털화해) 저장한 것이 있고 세상의 모습과 비슷하게(아날로그적으로) 저장한 지식이 있다. 현재 우리 앞에 존재하지 않아서 우리가 직접 보거나 듣거나 만지거나 냄새를 맡거나 맛볼 수 없는 어떤 대상을 마음속으로 표상하는 것을 심리학자들은 심상(mental imagery)이라고 부른다. 즉, 현시점에서 우리의 시각이나 청각과 같은 감각기관에 어떤 정보도 입력되지 않는 어떤 대상에 대한 표상이며, 우리는 이러한 심상을 갖고 이를 수시로 이용한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시각적 심상은 마음속의 영상이라고 할 수 있고, 청각적 심상은 마음속의 녹음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늘 아침 식사로 무엇을 먹었는지 떠올려보라. 만일 콩나물국밥에 깍두기 반찬을 먹었다고 하면, 그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가? 깍두기가 어떤 반찬 그릇에 어떻게 놓여 있었고, 그 냄새와 맛을 떠올릴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깍두기를 깨물었을 때 들렸던 소리도 떠올릴 수 있는가? 이런 감각적 표상들이 바로 심상인 것이다. 그리고 심상은 여러분이 전혀 경험한 적이 없는 일들에 대해서도 이용될 수 있다. 자신의 이마 위에 눈이 하나 더 있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거나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밀림 속을 자신이 탐험하는 장면을 대부분의 독자는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예술작품이 탄생하고 새로운 디자인의 상품이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심상을 만들어 저장하고 사용할까? 여전히 많은 인지심리학자가 연구해왔고 현재도 연구하고 있긴 하지만 분명한 건 이미지는 언어와는 다른 혹은 추가적인 부호화 과정이 개입한다는 것이며, 심상을 형성할 때 실제로 우리가 지각하는(보고나 듣거나 하는) 뇌 영역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우측 두정엽이 손상돼 편측 시각 무시증(unilateral visual neglect)이 생긴 환자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오른쪽 두정엽에는 시각 정보 중에 왼쪽 공간과 관련된 정보들이 처리되는 경로가 있으며 따라서 이 영역에 손상을 입으면 환자는 자신이 보는 장면 중에 왼쪽 시야에 있는 정보들을 의식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난다. 즉 이들 환자가 보이는 전체 장면 중에 오른쪽 시야에 보이는 것들만 의식하고 왼쪽에 보이는 것들은 의식하지 못한다. 식사할 때도 오른쪽에 있는 반찬만 먹고 왼쪽에 놓인 반찬들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왼쪽에 놓인 반찬을 의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환자에게 예전에 익숙한 장소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라고 하고 보이는 것들을 얘기해 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가령 서울 광화문 앞에서 시청 쪽을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하고 무엇이 보이는지 보고하게 하면 이 환자는 오른쪽에 있는 세종문화회관이나 정부서울청사는 보고하지만 건너편에 있는 미국대사관이나 교보빌딩은 보고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보고하지 못한 건물이 기억에 없기 때문은 아니다. 동일한 환자에게 시청에서 광화문을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하고 무엇이 보이는지 물어보면 이제는 거꾸로 미국대사관이나 교보빌딩은 보이는데 세종문화회관이나 정부서울청사는 보고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지각하는 것과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 비슷한 기제로 작동하며 공통된 뇌 영역이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또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법(fMRI)을 이용한 최근 뇌 영상 연구들에서도 우리가 실제로 지각할 때와 이미지를 상상할 때 유사한 뇌 영역이 활성화됨을 보였으며, 심지어 무엇을 상상했는지를(가령 수평선이나 수직선) 시각을 담당하는 뇌 영역에서의 활성화 패턴을 보고도 알아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런 발견들과는 달리 지각과 심상이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들도 있다. 어떤 사람은 지각은 정상인데 심상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심상은 제대로 떠올리는데 지각을 못하는 사람도 있다. 물체를 앞에 놓고 볼 때보다 마음속에 떠올릴 때(심상을 형성할 때)가 정신적 노력이 더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의 심상은 실제보다 덜 정확하다.

우리 모두 자주 보았던, 그래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예로 들어보자. 필자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500원 동전에 어떤 그림이 있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학생은 학이 날아가는 모습이 있다고 대답한다. 맞다. 하지만 그 학이 왼쪽으로 날아가고 있는지 오른쪽으로 날아가고 있는지 선택해 보라고 하면 반은 왼쪽을 나머지는 오른쪽을 답한다. 즉, 대부분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동전을 본 지가 오래돼서 잘 모르겠다고 하는 독자가 있다면, 다음 과제를 해 보자. 자신의 아파트(아파트에 살고 있지 않은 독자들은 자신의 회사나 자주 가는 건물)의 엘리베이터 안의 각 층과 열림·닫힘 단추의 배열을 빈 종이에 그려보자. 매일 집에만 있는 독자가 아니라면 적어도 승강기의 모양을 하루에도 두 번 이상은 봤을 테고 같은 아파트에 3년 이상 살았다면 1000번 이상은 봤을 것이다. 독자들 중 몇 %나 정확하게 그릴 수 있을까? 비슷한 질문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캘리포니아대(UCLA)의 심리학자들이 했는데, 자신들 학과인 8층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오래 이용해 온 교수와 교직원,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엘리베이터 버튼 배열을 비슷하게 그린 사람들은 16%에 불과했다.(완전히 동일하게 그린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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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처럼 너무도 익숙한 모양을, 그리고 엘리베이터 버튼처럼 하루에도 여러 번 보는 대상을 이처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필요한 정보에는 민감하지만, 필요하지 않은 정보에는 둔감하기 때문이다. 500원 동전이라는 것만 알면 되는 것이지 학이 어느 방향으로 날아가는지는 500원짜리 동전을 구별할 때 중요한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버튼의 배열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가려고 하는 층수를 보고 누르면 그만이지 다른 층의 단추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필요는 없다. 특히 우리는 자신의 집 엘리베이터만 타는 것이 아니라 직장이나 병원, 백화점 엘리베이터도 타게 되고 엘리베이터마다 각기 다른 층수가 있고 그 배열 역시 가지각색이어서 자신의 집 엘리베이터 버튼의 배열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서로 간섭을 일으키고 불필요한 정보들일 수 있는 것이다.

동전이나 엘리베이터 버튼의 예는 우리가 어떤 정보를 반복적으로 보고 듣는 것만으로 기억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시사해준다. 결국, 우리가 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인출하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상황이 존재해야 하고 우리는 그 상황에 맞는 기억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

UCLA 심리학자들의 연구에서 또 다른 재미있는 발견은, 자신의 사무실이 있는 층의 버튼을, 버튼의 층수를 모두 지우고 눌러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잘 누르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는 우리가 컴퓨터 자판을 이용해 타이핑을 할 때 ‘ㅁ’이나 ‘ㅜ’ ‘ㄴ’ ‘ㅎ’ ‘ㅗ’ ‘ㅏ’라는 낱자가 어디에 있는지는 의식적으로 빠르게 대답하지 못하지만 ‘문화’라는 단어를 자판으로 치는 것을 상상하면서 손가락의 위치를 통해 더 쉽게 알 수 있는 이치와 비슷하다. 즉 우리의 손가락 동작과 연합된 절차적 지식(이 또한 언어적으로 저장된 지식이 아니다)으로 저장되고 표상된 것이다. 반복된 학습을 통해 우리의 의식이 아닌 몸이 익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물론 몸이 익힌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뇌에 저장된 정보다)

또 다른 과제를 한번 해 보자.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봤던 우리나라 지도를 마음에 떠올려보고 다음 도시들(강릉, 부산, 서귀포, 서울, 평양―가나다순) 중 가장 동쪽에 있는 도시부터 종이에 적어보라. 여러분이 적은 도시 순서에서 서로 인접해 있는 도시 쌍 중에 가장 동서로 떨어져 있는 도시의 쌍은 무엇인가? 이제, 자신이 적은 도시들의 순서를 지도를 보고 확인하든지 아니면 칼럼 끝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독자들 중 얼마나 정확하게 대답했는지 필자 역시 궁금하지만, 위 문제를 틀렸다면 여러분의 심적 지도(이것도 심상이다)에 언어적인 개념 지식이나 판단의 왜곡 요인이 침투해 각 도시의 위치를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가령 강원도가 더 동쪽이라든가 제주도는 서울과 부산 사이에 있다든가 혹은 서울에서 곧장 북으로 가면 평양이라는 생각들이며, 이러한 생각들은 심상에 영향을 준다.

비언어적인 마음이 우리의 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교육이나 사회 인식에서 등한시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비언어적 마음의 특성이 과학적으로 연구돼 온 것이 최근 일이며, 비언어적 마음이 의식적으로, 언어적, 논리적으로 표현되기 어려운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날 많이 사용하는 지능 검사에는 언어적 지식을 측정하는 검사 문항들(예:어휘력, 독해력 등)뿐 아니라 공간적 지식을 측정하는 문항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들 문항은 마음속으로 3D 물체를 회전시켜서 동일한 물체를 찾거나(그림 1), 주어진 종이를 접어서 만들어지는 입방체가 무엇인지를 고르는 문항(그림 2), 혹은 종이를 접고 구멍을 뚫고 나서 펼쳤을 때 모양을 고르는 문항(그림 3)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문항들 모두 우리의 심상 형성과 조작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다. 미국 치과대학 입시 시험에 어려운 공간 지능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는 이유 역시 치과의사에게 공간적 능력이 필수적임을 의미한다. 이런 공간 지능은 비행기 조종, 조각, 건축, 외과 수술뿐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예:스마트폰이나 가상공간)를 창조하고 디자인하는 많은 직업군에 매우 중요한 지식이다.

어휘력이나 독해력과 같은 언어적 지식이 훈련을 통해 향상되는 것처럼, 공간 능력이나 비언어적 지능도 훈련을 통해 향상이 가능하다. 인지심리학에서 최근의 많은 연구는 우리가 감각적으로 많은 경험을 하면 지각적인 학습이 일어나고 더 나은 수행을 보인다는 것을 밝혀 왔다. 오랜 훈련을 통해 영상의학과 의사들은 영상에서 이상 징후들을 잘 찾게 되고, 프로 게이머들 역시 컴퓨터 화면에서 일반인들이 대부분 놓치는 잠깐 나타나는 상대방의 움직임을 잘 탐지하는데, 이러한 능력 역시 끊임없는 훈련의 결과다. 음악이나 무용 전문가들은 일반인들이 탐지할 수 없는 미세한 소리나 율동의 차이를 감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감각이나 운동기관을 통해 지속적으로 경험하지 않고 오직 심상만을 사용해 훈련해도 효과가 있을까? 2009년에 스위스의 심리학자인 엘리자 M 타르탈리아 박사와 그녀의 동료들은 시각적으로 특정한 자극을 마음속에 떠올리도록 훈련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나중에 그 특정 자극을 더 잘 탐지한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증명한 바 있다. 심상과 같이 비언어적 마음에 대한 훈련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 용어설명

심적 표상(mental representation): 외부 대상을 대표하는 마음속 상징 혹은 그 상징을 사용하는 내적 과정.

※ 5개 도시 위치 정답 : 가장 동쪽부터, 부산, 강릉, 서울, 서귀포, 평양 순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제주도가 서울보다 훨씬 동쪽에 있다는 착각을 한다.
심적 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