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코로나 책임론’ 몰린 中… 글로벌 패권 행보 위축되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전승훈 기자

■ 양회 마친 中, 향후 대외정책 변화 가능성

‘중국夢’ 밀어붙이던 시진핑
코로나 이후 反中정서 직면
외부환경에 패권 전략 흔들

스인훙 런민大교수 논쟁촉발
“중국내 경제조정 필요성 때문
국제전략 재검토 나설 수도”
일대일로 등 부분조정 전망

맥그레고르 등 전문가 다수
“美와 경쟁하며 영향력 확대
기존전략 그대로 유지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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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대한 우리의 정책은 타협과 양보가 아니라 이제 ‘투쟁’으로 협력하고, ‘투쟁’으로 단결하는 길로 가야 한다.”(진찬룽(金燦榮) 중국 런민(人民)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이 일부 인용한 마오쩌둥(毛澤東) 전 국가주석 발언)“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중국 거국 체제의 우세와 통치능력의 효율성이 두드러지고 광범위한 인정을 받았다.

이런 체제가 포퓰리즘과 보호주의 등으로 세계가 급변하는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반면, 기존 패권국의 흡인력은 떨어지고 있다.”(푸멍즈(傅夢孜) 중국 현대국제관계연구원 부원장) 최근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에서 시작해 경제·기술·군사 등 전방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미·중 갈등을 바라보는 중국 학자들의 발언이다.

강경한 대미 인식은 물론 관변 지식인의 자국 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잘 보여준다. 중국이 글로벌 패권을 쟁취하기 위해 미국이라는 ‘산’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이 염두에 두고 있는 세계 패권과 장악 방식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지역 패권부터 추진하고 있는 중국의 전략은 미국을 뛰어넘는 안정적인 세계 질서를 창출할 수 있을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속에서 지난 5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마친 중국의 향후 진로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패권을 향한 중국의 ‘두 가지 길’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최근 할 브랜즈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와 제이크 설리번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이 공동 작성한 ‘글로벌 패권으로 가는 중국의 두 가지 길’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보고서를 게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이 택할 수 있는 첫 번째 길은 미국의 군사적 견제를 뚫고 서태평양 지역에서 주도권을 쥔 뒤 글로벌 패권으로 가는 것이다. 둘째는 지역 패권 구축보다는 글로벌 수준에서 정치·경제·외교적 영향력 확대에 주력하는 길이다.

먼저 중국이 택한 길은 첫 번째에 가깝다. 이는 미국이 세계 패권 장악을 위해 시도해 성공했던 방법이다. 미국은 1820년대 유럽의 간섭을 불용하는 먼로주의 선언부터 미국의 턱밑인 카리브해 연안에서 스페인 퇴출 등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의 주도권을 잡은 뒤 세계 패권으로 나아갔다. 중국 역시 미국의 포위망을 뚫고 서태평양으로 진출, 전 세계에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어야 진정한 패권 국가가 될 수 있다. 중국의 자체 해상 방어선인 제1 도련선(島련線·island chain·일본 오키나와∼대만∼필리핀∼보르네오)을 넘어 제2 도련선(일본 본토∼괌∼사이판∼파푸아뉴기니)까지 뚫고 나가야 한다. 중국은 이를 위해 최첨단 전투기, 조용한 잠수함, 대함 미사일 개발 등에 집중투자했고, 미군 전투기와 전함의 중국 해안 접근을 막는 ‘반(反)접근·지역거부 전략(A2AD·Anti-Access Area Denial)’을 구축했다. 이를 이용해 전략적 요충지인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중국의 ‘호수’로 만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미국의 대중국 봉쇄 구상인 인도·태평양 전략과 일본이라는 강력한 지역 경쟁자의 저항 등으로 이러한 접근법은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지역 패권→글로벌 패권 추구 선회

중국은 서태평양 지역에서 군사적 우위 확보가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동쪽이 아닌 서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두 번째 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과 인도양을 가로질러 중국 주도의 경제 및 안보 질서 구축에 나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야심이 담긴 글로벌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인 이른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전략과 안보협력체인 상하이협력기구(SCO) 등이 대표적 수단이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바이오기술, 양자컴퓨팅 등 첨단기술 분야에 대한 집중 투자를 통해 글로벌 핵심 플레이어가 되는 디지털 실크로드 전략, 국제기구에서의 중국 주도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중국의 이 접근법은 글로벌 리더십 확보에 전통적인 군사력보다 경제·기술력이 근본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주도권이 세계 패권의 전제 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중국의 두 번째 길도 미국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는 전략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권국이 된 미국은 냉전이 끝난 이후 이를 더욱 굳혔는데, 이 과정에서 3대 핵심 요소에 의존했다. 경제력을 정치적 영향력으로 전환하는 능력, 전 세계에 대한 혁신 우위 유지, 국제기구를 통한 국제 규범(norm) 수립·시행이다. 중국 역시 같은 전략을 추진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이후 두드러지고 있는 국제사회에서의 힘의 공백을 서서히 채워가고 있다. 특히 미국에 비해 동맹 관계가 취약한 중국은 미국과 유럽, 미국과 아시아의 동맹 구조를 약화 및 분화시키거나 와해하는 전략도 쓰고 있다.

하지만 이 길에도 장애가 적지 않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함께 중국 공산당 권위주의 체제의 부정적 측면이 도드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호주·헝가리 등에서 정치적 영향력 확보를 위해 경제적 영향력과 유인·매수 등을 동원하는 이른바 ‘샤프 파워(sharp power)’의 면모다. 중국의 힘이 축적될수록 전 세계에 권위주의 공간이 확대되고 투명성과 민주적 책임성이 제약되는 현상도 나타난다. 서방국들은 중국의 약탈적 무역 관행과 핵심 산업에 대한 장악 시도, 중국 인권 상황에 대한 침묵 강요 등에 대해 매우 불쾌해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반중(反中) 정서가 걸림돌, 전략 수정하나

일단 중국은 외부에서 주장하는 글로벌 패권 전략 자체를 부인하지만, 2013년 시 주석이 집권하자마자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뜻하는 ‘중국몽(夢)’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사실상 미국에 선전포고했다. 2017년 10월 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는 중궈멍을 구체화한 사회주의 강국 비전도 내놨다. 2020년까지 전면적인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를 달성하고,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를 기본적으로 실현한 뒤 중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종합국력과 국제적 영향력에서 앞자리를 차지하는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건설한다는 목표다. 이에 맞춰 군사력에서도 2035년까지 국방 현대화를 실현한 뒤 21세기 중엽에 세계 일류 군대로 우뚝 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코로나19 사태가 중국에서 터지면서 모든 것이 헝클어졌다. 미국이 제기한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에 미국의 동맹국들과 유럽연합(EU) 등 주요국들이 가세한 데다, 중국이 책임론을 모면하기 위해 실시한 ‘마스크 지원 외교’의 역풍이 불면서 글로벌 반중 정서가 확대되고 있는 것. “코로나19로 1989년 민주화 시위인 6·4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최악의 반중 정서가 초래되고 있다”는 관영 싱크탱크의 보고서가 최고지도부에 전달됐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보고서는 “반중 정서로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면서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국 정서를 경계해야 하며, 최악의 경우 양국의 무력충돌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코로나19 책임론에서 시작된 미국의 대중 공세는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으며, 최근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강행으로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미국은 탈중국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할 ‘경제번영네트워크(EPN)’를 추진하고 있으며, 군사적으로도 ‘태평양 억지 구상’을 통해 반중 군사 블록화에 나설 태세다.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수출 규제를 촘촘히 하는 것은 물론, 자유민주주의 세력 대 권위주의 정권이라는 구도로 중국 공산당을 ‘독재정권’으로 모는 이념 대립도 부추기고 있다.

이 같은 위기 속에서 중국의 글로벌 패권 전략 수정 여부를 둘러싼 논란도 뜨거워지고 있다. 중국이 전략적으로 패권 전략을 조정할 수 있다는 의견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문제 전문가인 스인훙(時殷弘) 런민대 교수는 최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코로나19와 반중 정서 확대에 따른 국내 경제 조정의 필요성 때문에 중국이 전략적 재검토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 자원이 감소하고 있고, 코로나19로 복잡한 글로벌 환경이 조성되고 있어 중국의 전략적 수축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미국의 대중 공급망 의존 탈피 등 디커플링(탈동조화) 추진으로 경제적으로도 내수 위주로 조정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대다수 전문가는 중국의 기존 전략 유지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 호주 시드니의 싱크탱크인 로위협회의 리처드 맥그레고르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코로나19로 전략적 사고를 바꾸지 않을 것”이라며 “국내적으로 공산당의 지배를 공고히 하고, 대외적으로 중국의 무역, 기술표준, 군사 등에서 미국과 경쟁하면서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왕후이야오(王輝耀) 중국세계화연구소 대표도 “중국 정부가 반도체 등에서의 자립 기반을 구축하면서 AI와 빅데이터 등 선진 제조 섹터에 대한 전폭적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브랜즈 교수 등은 앞서 언급한 보고서에서 “중국의 정치·경제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경쟁자들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에는 성공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시 말해, 중국의 정치·경제가 흔들리고 미국이 효과적인 대중 견제에 나선다면 글로벌 패권 확보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베이징=김충남 특파원 utopian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