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클래식>뛰어난 곡 해석과 연주 … 당대 모든 성악가의 ‘꿈의 반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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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드 무어

푸대접 받던 반주자 지위 격상

피셔디스카우 등 3인 의기투합
로열페스티벌홀 은퇴무대 선물

1967년 2월 20일, 영국 런던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클래식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연주회가 열렸다. 이 공연을 위해 당대 최고의 성악가인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빅토리아 로스 앙헬레스와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가 한자리에 모였다. 당시 전 세계를 주름잡던 이 세 사람이 한 무대에 오른다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들이 바쁜 일정에도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자신들 평생의 음악 동료이자 사랑하는 친구였으며 존경해 왔던 그들의 반주자 제럴드 무어(Gerald Moore·1899∼1987)의 은퇴 무대에서 노래하기 위해서였다. 최초의 ‘전문 반주자’로 40년간 위대한 업적을 남긴 제럴드 무어를 위해 그들은 ‘제럴드 무어에게 경의를 표하며’라는 타이틀의 은퇴 연주회를 열어준 것이다.

지금은 다니엘 바렌보임이나 카를 리히터, 정명훈 같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이 가곡 연주회의 무대에 반주자로 오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훌륭한 솔리스트와 실력 없는 오케스트라와의 협주곡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독주나 실내악에서 피아노 반주는 연주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비중과 위치를 갖는다. 하지만 제럴드 무어 이전의 시대는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연주회의 포스터나 음반의 재킷에는 ‘반주자 ○○○’가 아닌 단지 ‘피아노 반주(with piano accompaniment)’라는 익명으로만 소개되며 푸대접을 받았다. 피아노 반주자는 독주 연주를 할 수준이 안 되는 실패한 피아니스트라는 편견의 시대에 반주자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당당히 올리며 그 지위를 격상시킨 최초의 피아니스트가 바로 제럴드 무어다.

무어는 뛰어난 해석을 바탕으로 한 피아노 연주로 단순한 반주가 아닌 성악가와의 완벽한 듀엣을 완성해냈다. 그렇기에 당대 모든 성악가는 그와 함께 연주하기를 원했고 수많은 공연과 명반을 남겼다. 새로운 연주자가 무어와 리사이틀이라도 열게 되면 사람들은 일제히 ‘새로운 별이 나타났군’이라 말했다고 한다. 그는 평생 한 번의 독주회도 열지 않고 평생을 오직 반주자로서 헌신한 피아니스트였지만 가장 큰 존경을 받으며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피아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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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은퇴 무대 마지막 곡을 반주한 무어는 마지막 인사를 위해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여러분, 저는 오늘 밤 제가 반주자로서의 전통적인 태도인 조심성을 버리고 피아노를 친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사실 저는 때때로 ‘내 반주가 너무 큰 것이 아닌가?(Am I too loud?)’라고 생각해 왔거든요. (중략) 그리고 오늘 이렇게 여러분을 향한 작별의 인사와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피아노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가 건반에 손을 얹고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 독주로 인사를 대신한 곡은 거창한 소나타가 아닌 슈베르트의 ‘음악에’였다. 연주시간은 1분 30초였고 아무도 앙코르를 외치지 않은 채 거장의 은퇴에 감사와 축복을 더해 줬다.

안우성 클래식 월담 대표

[ 오늘의 추천곡 ]
프란츠 슈베르트 ‘음악에’

‘음악에’는 프란츠 슈베르트의 후원자이자 친구였던 프란츠 폰 쇼버(Franz von Schober·1796∼1882)의 시에 곡을 붙인 곡으로 슈베르트가 20세가 되던 해인 1817년에 작곡됐다. 귀족 출신인 쇼버는 슈베르트보다 한 살 연상으로 슈베르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친구였다. 이 곡은 슈베르트가 쇼버의 시로 작곡한 12곡의 가곡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예술성이 높은 슈베르트의 다른 가곡 작품들에 비해 지나치게 단순한 구조를 띠고 있으나 예술을 향한 슈베르트의 순수하고도 고귀한 정서를 잘 드러내고 있는 명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