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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20년 06월 05일(金)
‘원죄의식’에서 벗어나려면 숨기지도 꾸미지도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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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엘리 제공

- 나는 독일인입니다 / 노라 크루크 지음, 권진아 옮김 / 엘리

‘독일인’임이 부끄러웠던 저자
가계도 따라가 그들의 삶 추적
묵묵히 진실 인정하고 껴안아
일러스트·사진·그래픽 콜라주
아름답게 꾸민‘절절한 논픽션’


“아무리 열심히 봐도 끈질기게 나를 괴롭히는 불편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잃어버린 나의 고향 하이마트를 찾을 유일한 방법은 뒤를 돌아보는 것. 추상적인 수치심을 뛰어넘어 너무나 묻기 힘든 질문들. 내 고향 그리고 아버지의 가족과 어머니의 가족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는 것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내 어린 시절 나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빵 부스러기를 따라가며 그것들이 내게 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기를 바라는 방법밖에는 없을지도.”

2018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영국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 북일러스트상, 독일 슈바르츠 문학상 등 양 대륙의 주요 상을 휩쓴 그래픽 논픽션 ‘나는 독일인입니다’는 여기서 시작된다. 사라지지 않는 불편함과 수치심, 잃어버린 고향, 물을 수 없는 질문들. 그를 괴롭힌 불편함의 정체는 히틀러, 나치, 홀로코스트…, 국가의 죄다. 전쟁, 역사, 죄의식 그리고 이를 끌어안고 해결해내려는 한 개인의 집요하고도 아름다운 시도를 담아낸, 감동적인 이 책의 저자 노라 크루크는 놀랍게도 전쟁의 직접 책임에서 비켜선 1977년생, 전후 2세대이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 고해성사를 할 무렵부터 ‘물려받은 원죄’를 확실하게 알았다고 했다. 그 뒤 우연히 만난 홀로코스트 생존자 앞에서 독일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웠고, 외국에선 독일 억양을 들키지 않으려 입을 가리고 가능한 한 짧게 말했다. 요가 수업을 받을 땐 다른 수강생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오른팔을 비스듬하게 쭉 펴서 들어 올릴 수 없었는데, 그렇게 할 때마다 히틀러 경례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독일을 사랑할 수 없었고,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같은 원죄의식은 저자가 독일에서 68혁명 이후 과거 청산 교육을 철저히 받은 첫 세대고, 유대인 남편과 결혼해 미국에 사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라고 짐작해 보지만 그래도 그 놀라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오랫동안 내면의 갈등을 겪은 그는 어느 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길을 잃은 헨젤과 그레텔이 숲속에 떨어뜨린 빵 부스러기를 따라 집을 찾아가듯 가족의 역사를 따라가 보겠다고 결심한다.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자기 정체성, 근원의 실체를 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그의 가족들이 어마어마한 큰 죄를 감추고 산 이들은 아니었다. 그저 한 사회와 국가가 밝혀낸 공식적인 ‘국가의 죄’와는 별개로 사랑했던 우리 가족은 그 시절 어떻게 살았는지, 혹시라도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원죄의 정체도, 자신을 옥죄는 그림자도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곧 고향인 독일 남부 도시 카를스루에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기록 보관소를 뒤지고, 자료를 모으고, 친척들을 만나고, 지인을 추적하며, 가계도를 따라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을 추적해 간다. 그렇게 드러난 가족사엔 열여덟 살에 나치 병사로 이탈리아 벌판에서 목숨을 잃은 삼촌이 있었고, 전쟁터에서 부인에게 절절한 그리움의 편지를 보낸 작은 할아버지도 있었고, 나치당에 입당해 결국 부역자라는 낙인이 찍힌 할아버지도 있었다. 하지만 끈질긴 추적 작업으로 누구를 단죄하거나 책임을 물으려 하지 않는다. 반대로 누구의 죄를 숨기거나 꾸미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진실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뿐이다. 책임과 참회에서 자라난 용서와 치유의 가능성을 품은 채. 그렇게 모든 것을 껴안아 자신의 근원에 제대로 서고 싶다는 절절한 마음.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뜨거운 기운이 가슴을 훅하고 지나간다. 한편, 이야기는 다양한 스타일의 일러스트와 그림, 사진과 그래픽의 콜라주 작업으로 재현됐다. 글로만 쓰였다면 촘촘한 논픽션이 됐겠지만 그래픽 서사였기에 원죄의 역사는 미학적으로도 아름다운 작품이 됐다. 292쪽, 2만2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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