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케첩의 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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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첩의 원산지는? 조금 뜬금없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채소나 과일의 원산지라면 모를까 공장에서 만들어낸 소스의 원산지를 묻는 것은 좀 이상하다. 그런데 질문을 잘 살펴봐야 한다. 케첩 하면 연상되는 ‘토마토케첩’이 아닌 ‘케첩’의 원산지를 묻는 것이다. 예상 밖의 정답을 미리 말하자면 중국이다. 중국에서 생산한 토마토케첩을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랜 옛날 중국 푸젠(福建)성의 바닷가 사람들은 생선을 절여 소스로 만들어 먹었다. 우리 식으로 치면 생선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젓갈이다. 푸젠 지역 방언으로 된 이 이름을 한글로 적으면 ‘코에찹’ 정도가 된다. 동서양이 뱃길로 교류하기 시작할 무렵 이 코에찹이 동남아 지역으로 전해지게 되는데 그 이름은 여전히 코에찹이다. 여기에 동남아식 발음이 가미돼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에 전해진다.

이 음식의 전형적인 특성은 재료인 생선이 아니라 어떤 재료든 발효시킨다는 데 있다. 뭐든 발효시키면 되니 유럽에서는 주로 버섯을 발효시켜 소스로 쓴다. 그래도 이름은 여전히 코에찹 비슷한 그 무엇이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꿈을 따라 신대륙에까지 이르게 된다. 대량으로 재배해 대량으로 생산하기를 좋아하는 미국에서 가장 적당한 재료를 찾다가 다다른 재료가 바로 토마토다. 그리하여 아래가 뚱뚱한 원추형 플라스틱 통에 담긴 토마토케첩이 다시 동양에 수출돼 세계 일주의 여정을 마친다.

이런 여정을 모르는 중국에서는 토마토케첩을 ‘판체장(番茄醬)’ ‘시훙시장(西紅시醬)’이라 한다. ‘판체’나 ‘시훙시’ 모두 토마토를 뜻하니 오늘날 중국에서는 그저 미국산 케첩을 충실하게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케첩의 여정을 안다고 하더라도 굳이 ‘시훙시찹’이라고 할 필요는 없다. 그 출발점이 어디든 돌고 돌며 서로가 공유하는 것이니 인류 전체의 자산일 뿐이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