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민주집중제의 亡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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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1980년대 학생운동권에 입문하면 먼저 학습하는 것이 조직론·혁명론·수령론 같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의 기본 개념이었다. 그중에서도 민주집중제를 골간으로 하는 조직론은 운동권 생활에 지켜야 할 기본철학이다. 현재 운동권 출신 586세대는 그런 조직 운영을 상식처럼 생각한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의해 제기되고 블라디미르 레닌이 체계화한 민주집중제는 민주주의와 중앙집권제를 합친 형태로 지금의 소련, 중국, 북한 등 사회주의권이 채택했다. 형식은 민주주의 시스템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결국 ‘당 중앙 = 최고지도자’의 독재를 합리화하는 이론이다. 최고지도기관은 상향식 선거로 구성하고, 토론을 거쳐 결정된 사안에 대해선 소수가 다수에게 절대복종해야 한다.

레닌이 공산당 운영 체제로 정착시켰는데 여류 혁명가인 로자 룩셈부르크는 일반선거, 언론 자유, 결사·집회의 자유와 노선 투쟁이 허용되지 않으면 독재로 변질된다고 경고했는데, 그런 우려는 현실이 됐다. 북한도 조선노동당 규약 제11조에 민주주의 중앙집권제의 원칙에 따라 운영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북한이 99.99% 찬성으로 김정은을 노동당 위원장으로 선출해 민주적으로 운영한다고 선전하지만, 1인 독재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논리를 체화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당헌·당규를 준수하고 당론과 당명에 따를 의무’를 명시했고, 당론을 위반하면 징계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제20대 국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표결 때 찬성 당론을 어기고 기권을 한 금태섭 전 의원에 대해 당 윤리심판원이 ‘경고’를 한 것이 대표적이다. 헌법과 국회법에는 양심에 따른 자유 투표를 명시해 놓고 있는데, 하위개념을 앞세운 것은 위헌·불법이다. 그동안 정당들이 ‘강제 당론’을 의원 통제 수단으로 쓰다 보니 지난 2012년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후보 단일화 논의를 하면서 ‘강제 당론을 지양한다’는 새정치선언문을 발표하기까지 했었다.

의혹투성이인 윤미향 의원은 감싸면서 소신을 지킨 금 전 의원은 징계한 것인데, 이럴 거면 많은 세금을 들여 국회의원 177명이 다 있을 필요가 없다. 세상은 개인의 자유를 더 보장하는 쪽으로 발전하는데, 민주당은 공산·사회주의 망령(亡靈)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