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호국영웅 파묘(破墓) 선동의 노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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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6·25전쟁 발발 70주년에 ‘친일파 파묘(破墓)법’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있다. 일부 여당 의원이 국립현충원에 묻힌 친일파 묘역을 파내겠다며 파묘법 추진 의사를 밝힌 데 이어 간도특설대 복무 이력을 이유로 6·25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 불가 입장을 피력했다. 군인권센터가 현충원 안장 친일 군인 56명 파묘를 주장하자 재향군인회는 “창군 원로들을 친일파로 몰아 파묘하자는 주장은 대한민국 정부가 창군 멤버로 임명해 목숨 걸고 나라 지킨 공로로 현충원에 안장된 전쟁영웅들을 토사구팽하자는 것으로, 모욕감과 배신감을 느끼며, 호국영령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반역사적 행위”라고 성토했다.

친일파 파묘법 추진 배경은, 광복 후 군 지휘부를 일본 육사나 만주군 출신 장교 등 친일파들이 독차지했으며, 미 군정과 이승만 대통령이 광복군 출신을 배제한 채 친일파 군인들을 대거 등용했다는 선입관에 근거한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미 군정은 국방부 장관격인 통위부장과 조선경비대 총사령관에 각각 광복군 출신 유동열과 송호성을 임명했다. 또, 이 대통령은 초대 국방부 장관에 광복군 참모장 출신 이범석을 임명했고, 국방부 차관에 최용덕, 6∼9회 육사 교장에 최덕신·김홍일·이준식·안춘생 장군 등 광복군 출신을 등용했다.

일본 육사 출신 신태영-응균 부자(父子) 장군 등 우수한 일본군 출신 고급장교들이 국군에 들어와 큰 공을 세운 것도 광복군 출신들의 설득 때문이었다. 이범석 장관은 “일본군에 충성한 것을 속죄하고 민족에 참회하는 차원에서라도 군대에 들어오라”며 친일군인들을 독려했다. 6·25전쟁 중 조국을 위해 산화한 장군·연대장급 고위직은 모두 15명인데, 이 중 채병덕 육군참모총장, 김백일 1군단장, 이용문 육군준장, 박범집 공군준장 등 9명이 일본 육사·학도병 출신이다. 신태영 장군 아들이자, 신응균 장군 동생인 신박균 하사는 위험한 전방 근무를 자청, 고관대작 아들 가운데 6·25전쟁 중 전사한 거의 유일한 사례다. 신태영 장군은 육군참모총장 시절 북한의 전면전 남침 정보를 입수하고 전쟁 발발 석 달 전,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38호’라는 독자적인 국군방어계획을 수립, 실전에 적용했다. 최연소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백선엽 장군은 수적으로 3배나 많은 인민군을 상대로 경북 칠곡 다부동 전투 승리의 기적을 일궈내는 전공으로 친일을 속죄했다. 백 장군은, 간도특설대로 발령받아 부임한 것은 1943년 초로, 당시 독립군은 일본군 토벌작전으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 독립군과 전투행위를 한 사실이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백 장군은 일본어판 자서전에서 간도특설대 근무 시절 조선인 항일 독립군과 전투가 있었던 것처럼 기술한 데 대해 “1930년대 간도특설대 초기 피할 수 없었던 동족 간 전투와 희생 사례에 대해 가슴 아픈 소회를 밝힌 것”이라고 해명했다.

광복군 출신 창군 원로들은 친일군인 배제 대신 포용·통합의 리더십으로 국난을 극복했다. 현 정부·여당은 시대착오적인 친일파 파묘법 추진으로 적전(敵前)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창군 과정에서 광복군의 친일 군인 포용·통합의 역사를 모독하고 있다. 친일-반일 이분법적 잣대로 호국 영웅마저 민족반역자로 매도하는 것은 보훈의 가치를 배반하는 행위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전우들이 묻힌 곳에 함께하고 싶다는 민족 영웅의 소원 하나 못 들어준다는 게 말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