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시진핑 방한 구걸, 외교 재앙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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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코로나 초기 중국인 차단 실패
시 주석 방한 집착에 따른 참사
주미대사·靑특보 중국에 굽실

홍콩 사태 反민주·反인권 부각
포스트 코로나 시대 中은 부담
자유·법치 국제 연대가 더 중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처음 방한한 지난 2014년 7월 3일 서울 시내 모 호텔에서 열린 미국 독립기념일 리셉션은 썰렁했다. 이임을 앞두고 행사를 주최한 성 김 미국대사는 애써 태연한 태도를 보였지만, 실무자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시 주석 방한 청와대 국빈만찬에 초대받는 주요 인사들이 서둘러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 시 주석이 북한에 앞서 한국을 찾은 것에 감동한 박근혜 정부는 방한 시기의 외교적 민감성까지 따지지 못했겠지만, 시 주석은 첫 방한을 ‘미국 밀어내기’ 상징 무대로 이용했다. 미국 독립기념일 전야에 개선장군처럼 청와대 만찬을 함으로써 “중국이 돌아왔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시 주석 방한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책임론으로 궁지에 몰린 시 주석이 지난 5월 14일 문 대통령과 통화에서 “금년 중 방한에 대한 굳은 의지는 변하지 않았다”고 한 이후부터다. 청와대는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되는 대로 적절한 시기에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 측은 연초에도 연내 방한 원칙만 얘기했을 뿐인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방한 시기를 무기로 미·중 갈등 상황에서 한국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계산인 듯하다. 문 정부가 코로나19 초기 중국인 차단에 실패한 원인은 시 주석 방한에 대한 미련이란 것을 세상이 다 안다. 대만처럼 국민 최우선 원칙으로 차단했다면 감염자와 사망자가 1만1902명, 276명이나 되진 않았을 것이다. 의료진의 헌신과 방역으로 코로나19 확산세는 진정됐지만, 시 주석 방한 집착이 부른 참사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이번에도 시 주석 방한 시기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코로나19 초기 때처럼 중국에 끌려다닐 수 있다. 시 주석 4월 국빈방문에 매달리느라 코로나19 차단에 소홀했던 일본은 11월 이후 재추진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은 주요 7개국(G7) 및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후 추진 원칙을 밝혔다. 일본의 이 같은 입장은 미국 중심으로 제기되는 코로나19 중국 책임론 등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G7·G20 정상회의의 논의를 보면서 시 주석 방문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문 정부가 시 주석 방문을 한·일 자존심 대결 차원에서 ‘방일 전 방한’을 추진할 경우 중국에 이용당할 수 있다. 첫째, 시 주석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글로벌 사회에서 몰려 있는 형국이다. 문 정부가 시 주석 조기 방한을 추진하다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을 부정하는 국가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둘째, 중국은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후 “국제법을 지키지 않는 나라”로 비판받고 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이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표결에 앞서 “일국양제 하에서 홍콩의 번영과 발전이 지속돼야 한다”고 밝혀 민주주의 국가로서 체면을 세웠지만, 정상회담 때 중국이 이에 대한 명시적 지지를 요구할 수도 있다. 셋째, 미·중 신냉전 초입에서 자유주의 국가들의 공급망 연대 및 미국 주도의 경제번영네트워크(EPN) 논의가 본격화하는 국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조급하게 하면 중국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

2014년 시 주석 방한 당시 중국 인사들은 “미국과 결혼했다고 중국과 연애하지 못하란 법은 없다”며 구애했다. 그러나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후 표변했다. 국회의장이 된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중국 요구 사항을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질문해 동의를 구하는 형식의 ‘3불’로 겨우 봉합됐지만, 중국은 사드 제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 1일 “시 주석 방한 후 양국 관계가 급진전될 것”이라고 했지만, 사드 갈등까지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드는 이제 한·중, 한·미 관계의 뉴노멀이다.

이수혁 주미대사는 지난 4일 우리나라가 미·중 사이에서 어느 한 나라를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호도했고,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도 최근 “중국과 적대하면 우리에게 군사위협이 될 수 있다”면서 친중 불가피론을 폈다. 시 주석 조기 방한 성사를 위한 작전이겠지만 그럴수록 중국은 더 오만하게 나올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중 관계 강화는 자산이 아니라 부담일 뿐이다. 중국 우선주의를 제어하기 위해선 동맹과 자유·법치에 기반한 국제 연대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그게 안보를 위한 최선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