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피해자 방치주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도운 논설위원

일본군에 끌려간 한국인 위안부는 적게는 5만 명에서 많게는 수십만 명으로 추산된다. 통계조차 없던 시절 은밀하게 이뤄져 파악하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위안부 피해자 대다수가 어두운 과거를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에서도 위안부 문제는 의제가 아니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뒤 정부가 피해자 신고를 받기 시작했다. 2007년까지 234명이 신고했다. 피해자들은 궁극적으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원했지만, 개인적 사정이나 상황이 달랐다. 양국 협상에 대한 기대치도 차이가 있었다. 1995년 일본은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을 조성하고 피해자에게 지원금과 의료·복지 혜택, 총리 사과 서신을 제안했다. 당시 한국의 위안부 피해 신고자 207명 가운데 147명은 “정부가 아닌 사설단체의 지원”이라며 거부했다. 그러나 60명은 지원금을 받았다. 한 피해자는 “우리는 나이 먹고 자꾸 죽어간다. 아무 데고 주는 돈 받아서 쓰고 죽겠다”고 말했다. 돈의 성격·액수나 서신 내용을 따지기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매듭짓고 여생을 보내고 싶은 피해자들이 있었다.

2015년 박근혜-아베 신조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을 통한 피해자 지원에 합의했을 때 신고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47명이었다. 대부분 구순을 전후한 고령이었다. 35명이 1억 원씩 지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다른 피해자들에게 지원금을 받지 말라고 했고, 그 대신 모금을 통해 8명에게 1억 원씩 줬다. 어느 쪽 피해자의 선택이 옳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최근 잇달아 기자회견을 열고 호소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대협, 정의기억연대 등의 회계 부정 의혹 조사. 또 하나는 정부가 더 늦기 전에 일본과의 협상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것.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처음으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언급했다. 그러나 일본과의 협상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었다. 이제 남아 있는 위안부 피해자는 17명뿐. 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합의를 사실상 파기했지만, 재협상을 하지 않고 있다. 문 정부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피해자 방치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