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정권-사법 ‘이념동맹’ 법치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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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우 前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판결 둘러싼 재판부 갈등 표출
진보의 요직 독식 맞물려 심각
하급법원 배석판사에 악영향

어느 검사는 대통령 찬양하고
대법원장은 “국민 중심 재판”
정파적 판결 不正義 우려 증폭

지난해 8월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매우 특이한 판결 하나가 선고됐다. 재판부가 주주권 확인 사건에서 판결을 선고하면서 재판장이 자신의 ‘소수 의견’을 노골적으로 기재해 판결이 자신의 뜻과 다름을 표시했다. 하급심은 심판의 합의를 공개할 수 없다는 법원조직법(제65조)을 위반했다는 논란을 낳았다. 또, 2012년 개봉된 영화 ‘부러진 화살’의 주인공이 제기한 교수복직소송 항소심에서 주심판사가 합의를 공개해 정직 6개월의 징계처분을 받은 사례도 있다.

판사 3인으로 구성된 합의부의 심판은 통상 재판장과 주심판사가 합의하고 다른 배석판사가 이의하지 않으면 그 합의대로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순천지원 사건은 재판장과 주심판사의 의견이 달랐고, 다른 배석판사가 주심판사에게 동조한 결과, 배석판사들의 의견이 과반수가 됐다. 합의에서 밀린 재판장은 자신의 억울함을 ‘소수 의견’으로 표명했다. 배석판사들이 재판부 구성의 일원으로 재판장과 대등한 결정권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지만, 배석판사들이 경험과 연륜이 높은 재판장에게 항거한 것이다.

순천지원 판결은 민사 사건이었지만, 형사 사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심각한 상황이 된다. 사법부 내부의 진보 세력 확산과 맞물려 법치주의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를 구성하는 대법관 13인 중 7인이 진보 성향이다. 대법원장이 국제인권법연구회장 출신이고, 법원장 등 법원 요직은 진보 성향의 판사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가 3년여 남아 있어 대법관의 진보 편향과 진보 법관의 요직 장악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하급심의 배석판사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사법부의 미래 구도를 하급법원 배석판사들이 모를 리 없다. 최근 하급법원 형사부 배석판사들이 재판장에게 ‘대등한 합의 결정권’을 요구하는 사례가 있다는 법조계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진보 법관의 법원 수뇌부 독점 현상은 예상보다 빨리 하급법원 배석판사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달 어느 지방검찰청 검사는 ‘달님에게 바치는 노래’를 인용해 대통령을 찬양하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곧 검찰을 장악하고, 임기가 1년 1개월쯤 남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시대가 끝나면, 검찰도 권력 앞에 힘없이 무릎을 꿇을 것으로 예측한 현상일지 모른다.

177석의 거대 여당은 진보로 쏠리는 사법부의 이런 현상을 기대하고 ‘한명숙 구하기’에 나선 게 아닌가.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건설업자로부터 9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건설업자에게서 나온 수표 1억 원이 한 전 총리 동생의 전세금으로 사용된 게 결정적 이유였다. 여당이 혐의가 조작된 증거라고 내세우는 비망록은 재판에 증거로 제출돼 판단을 받았다. 재심 사유가 없다. 물증이 명백한 사건을 두고 여당이 강압 수사라며 재수사를 주장하는 건 권력으로 흑을 백으로 만들겠다는 심산이다. 사법 체계를 무너뜨리고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지금 하급법원에선 청와대의 울산시장선거 개입 사건, 조국 전 법무장관 부부 사건, 김경수 경남도지사 사건,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 사건과 같은 많은 권력형 비리 사건이 진행 중이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해야 한다. 헌법이 법관에게 부여한 책무다. 법관이 이념에 동조돼 반대쪽 정파에 불이익을 주거나 같은 쪽 정파에 부당하게 관대한 판결을 내리는 건 맹목적 정의의 오류다. 배석판사들이 재판장에게 대등한 합의 결정권을 요구하는 건 법원의 서열식 문화를 깨뜨리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의도가 같은 정파 구하기라면 법관이 법과 양심을 버리는 부정의(不正義)다. 사법부가 권력과 이념적 동맹을 맺는 것만큼 법치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일은 없다.

대법원장이 말하는 ‘국민 중심의 재판’은 국민의 법 감정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밖에 없다. 재판의 기준이 법과 양심이 아니라면 법치가 아니다. 사법부의 수장은 통치자가 실패한 정치를 감출 때 쓰는 ‘국민’을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 국민 중심을 구실로 진보 세력의 무한 확대를 시도한다면 사법부를 자해(自害)하는 일이다. 정치권력에 맞서 사법부를 지키고 입법부를 견제하며 법치를 실현하는 게 대법원장 본연의 임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