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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철환의 음악동네 게재 일자 : 2020년 06월 12일(金)
조롱을 피하는 방법… 적극적 대응하되 적대적 대처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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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깡’

‘과거에 머무르지 않기, 자아도취 금지’ 이 정도 조언이라면 수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얼굴도 이름표도 가린 사람들이 무리 지어 조언 대신 조롱을 쏟아낸다면 과연 참을 수 있을까. ‘내가 뭘 잘못했지?’ 두렵기도 하고 화도 날 것 같다. 음악동네에서도 이런 일이 가끔 벌어진다. 모욕의 상처엔 백신이 따로 없으니 심한 경우 병원보다 법원으로 가는 경우도 생긴다.

‘KBS가요대상’에서 대상(2004), 가장 영향력 있는 해외아티스트상(2014)까지 받은 가수 비(정지훈)는 한국 나이로 서른아홉이다. 사생활에 문제가 없는데 갑자기 온라인에서 비웃고 놀리는 소리가 쏟아졌다. ‘15년을 뛰어/ 모두가 인정해 내 몸의 가치/ 허나 자만하지 않지/ 매 순간 열심히 첫 무대와 같이/ 타고난 이 멋이 어디가’(비 ‘깡’ 중). 가사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난까진 감수해도 춤동작이 과하다는 지적은 납득하기 어려웠을 성싶다. 백댄서로 시작해 최고의 댄스가수로 자리매김했던 그 아닌가.

‘그래 그런 말들은 절대 듣기 싫어/ 가슴이 너무 아파 들을 수가 없어’(비 ‘안녕이란 말 대신’ 중). 억울했겠지만 비는 노랫말대로 대꾸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되 적대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화가 나는 건 불이 나는 것이고 화를 내는 건 불을 내는 것이다. 불이 나면 끄는 게 최선이듯 화가 나면 화를 가라앉히는 게 고수다. 그는 타고난 낙천성으로 승부했고, 마침내 음악동네의 명랑지수를 한 단계 높였다. 이야말로 슬기로운 가수생활의 성공사례 아닐까. 전략은 적중했다. 싸움터가 아니라 놀이터로 인식하니 댓글마당이 화풀이·한풀이가 아닌 공연의 뒤풀이 장처럼 변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욕을 하는 자들의 심리는 욕을 세 번 반복해서 발음하면 답이 나온다. 욕을, 욕을, 욕을, 요구를, 요구를, 요구를. 결국 그들은 원하는 바를 숨어서 얘기하는 것이다.

‘1일 1깡’이란 말이 들불처럼 번진다. 하루에 한 번은 비의 ‘깡’ 뮤직비디오를 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뜻이다. 2017년 11월에 발표한 뮤직비디오가 재활을 넘어 부활한 모양새다. 심각은 심각을 부른다. 길게 보면 울고불고, 붉으락푸르락은 소탐대실, 비실용적 처세다. ‘어차피 인생이란 연극이 아니더냐’(나훈아 ‘울긴 왜 울어’ 중). 연극은 놀이(play)고 인생은 역할극이니 위기도 즐기면 기회가 된다. 20대 초반의 비를 직접 본 건 ‘스타도네이션 꿈은 이루어진다’(2002)를 연출할 때였다. 첫 회 주인공으로 낙점된 그는 피아노공장에서 온종일 일해 번 돈을 불우청소년에게 기부했다.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고 즐겁게 일하던 표정이 좋았다. 그날 배경음악이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이어서 그 후에도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비의 천진한 말투와 눈빛이 떠오른다.

코미디언 이주일은 ‘내 얼굴이 어때서’가 아니라 ‘얼굴이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로 코미디 황제로 추대받았다. 무한경쟁을 무한긍정으로 승화시킨 유쾌한 소동의 전말을 보면서 나는 명랑소년이 오래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성악설 대신 성선설에 한 표를 던지고 싶어졌다. ‘다른 많은 사람들 눈에는/ 아주 보잘것없는 나지만’(비 ‘나쁜 남자’ 중). 대부분의 누리꾼도 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추론에 이른 것이다.

“나는 그들한테 ‘나를 갖고 놀아 달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광대는 사람들에게 즐거운 놀이 수단이 돼서 돈을 버는 직업이니까.” 열정이 없는 허세는 거품에 불과하다. ‘태양을 피하는 방법’은 태양을 즐기는 것이다. 시선을 즐겨라. 시선의 노예로 살지 마라. 일희일비하지 마라. 슬픔을 피한다고 기쁨이 손을 잡아주진 않는다. 존 러스킨의 시처럼 산다면 고맙지 않은 날이 없다. ‘햇빛은 달콤하고, 비는 상쾌하고 (중략)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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