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일 기자의 인생풍경>‘코로나19’가 가져온 국내여행의 희망

국내여행 전문 여행사인 승우여행사는 요즘 빗발치는 예약과 문의 전화로 눈코 뜰 새가 없습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업계 전체가 폐업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감안하면 좀처럼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이원근 승우여행사 대표가 예약상황표를 보여줬습니다. 전남 신안의 작은 섬에서 열두 개 예배당을 걸어서 돌아보는 이른바 ‘섬티아고 순례길’ 여행 상품은 이달 말까지 모두 예약이 끝났습니다. 백두대간 코스의 33개 봉우리를 한 달에 한 번 가보는 ‘백미대간’ 종주 상품도 이미 연말 출발 분까지 예약이 찼습니다. 해남 땅끝에서 출발하는 ‘삼남길’ 걷기 상품의 문의 전화도 쇄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곧 코로나19 발생 전 실적을 넘어설 게 분명하답니다. 더 희망적인 건 이런 폭발적인 신장세의 기울기가 앞으로 얼마나 더 가팔라질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다른 여행사들이 생존 문제를 고민하며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여행사가 위기를 기회로 바꿔낸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 비결의 바탕에 ‘소비자의 변화’가 있습니다. 승우여행사는 거리 두기의 기준이 완화되고 버스여행을 재개하면서 45인승 버스의 최다 탑승 정원을 25명으로 줄였습니다. 거리 두기를 위해 한 줄씩 띄어 앉도록 한 것입니다. 그만큼 여행 상품 가격은 올랐지만, 가격 저항은 없었습니다. 소셜커머스에서 저렴한 여행 상품만 찾던 소비자들이 달라진 겁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승우여행사가 꾸준히 직접 개발한 300여 개에 달하는 여행 상품이 경쟁력의 기반이 된 건 물론이지요. 다들 대관령 양떼 목장이나 거제 외도 등의 천편일률적인 여행 상품을 팔 때, 승우여행사는 새로운 목적지를 찾아 코스를 만들어 왔고, 그게 지금 빛을 보고 있는 것이지요.

승우여행사의 사례에서 코로나로 빈사 상태에 빠진 우리 국내여행 시장의 희망을 봅니다. 싸구려 덤핑여행이 판을 치면서 외면받던 제값의 좋은 여행 상품이 이제 시장에서 통한다는 것을 승우여행사는 보여줍니다. 이런 기회를 잘만 활용한다면 국내여행의 내실과 규모를 동시에 키울 수 있을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2대에 걸쳐 여행사를 운영하는 이 대표가 최근 부친에게 들었다는 얘기를 보탭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가 국내 여행업계에 큰 기회였어. 코로나19도 좋은 여행이 뿌리를 내리는 기회가 될 거야.” IMF 당시 여행 상품 중 가장 인기가 있었던 건 ‘일출 여행’이었답니다. 다들 희망을 기다리고 있어서 그랬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