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adership 클래스-김무환 >속도보다 중요한 건 방향…연구중심 이끈 ‘특급舵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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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무환 포스텍 총장

리더십은 조정경기 닮아
노 젓는 漕手들 박자 맞추며
바람 읽고 길 잡는 舵手가 중요

코로나에 국가 상황 뒤바뀌듯
AI 혁신 파고 제대로 넘어야
4차 산업혁명 리더 될 수 있어

모두가 불가능이라 말할 때
넉 달 만에 원자로 실험장비 제작
脫원전 정책 찬반논쟁보다
합리적 에너지 수급 논의하길

포스텍(포항공대)은 지난해 영국 로이터통신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100대 대학’ 평가에서 12위에 올랐다. 이 순위는 대학 논문 영향력·인용도, 특허 출원 수 등을 수치화해 정한 평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 존스홉킨스대, 캘리포니아공대보다 높았고, 아시아에서는 단연 선두였다. 또 미국 학술정보분석업체인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는 2017년 세계 대학 중에서 가장 산학협력이 활발한 곳으로 포스텍을 꼽았다. 그만큼 포스텍은 세계적인 대학과 어깨를 견주고 있고 실질적으로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대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올해로 개교 34주년을 맞은 포스텍의 비약적인 발전에는 이 학교 개교와 함께 ‘불과’ 29세의 나이에 부임해 1회 신입생들부터 강의하면서 ‘타수(舵手) 리더십’을 강조한 김무환(62) 포스텍 총장이 있었다. 그는 학생처장, 입학처장, 기획처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뒤 2019년 9월, 마침내 임기 4년의 8대 총장 자리에 올랐다. 당시 포스텍 법인 이사회도 김 총장의 리더십에 깊은 신뢰를 보냈다. 포스텍의 한 직원은 “개교 당시 중소도시인 경북 포항에 자리 잡을 때 외부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면서 “국내 최초로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면서 출범해 국내 최고의 이공계 대학 중 하나로 성장한 것은 포스텍 산증인인 김 총장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원자력 전문가로 원전 정책에 ‘일관성 있는 리더십’도 발휘하고 있다. 그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나와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에서 원자력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대학 보직 외에 대외적으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자문기구 한국 대표위원,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등을 지내면서 원전 분야의 행정 리더로 활약했다. 올 1월에는 국내 최고 공학기술학술단체인 한국공학한림원의 정회원(재료자원공학 분야)으로 선임됐다. 그는 이러한 자리에 있으면서 정권이 바뀌거나 정책이 수정돼도 원전에 대해서는 줄기차게 한목소리만 냈다.

◇김 총장과 타수 리더십 = 그는 조정경기에서 리더십을 찾았다. 조정경기는 강을 8명의 조수(漕手)가 노를 저어 빠르게 나아가는 것으로, 힘과 박자를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힘이 센 한 명이 아무리 노를 젓는다 해도 전체가 따라가지 못하면 배가 흔들려 제 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배의 방향이 중요한데, 이때 타수가 바람·파도·물의 흐름을 얼마나 잘 읽을 수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확연히 달라진다.

김 총장은 “한 조직의 혁신과 리더십도 조정경기와 크게 닮아있다”면서 “배를 움직이는 것은 한 명의 힘이 아니라 모두의 힘이고, 리더는 타수와 마찬가지로 가야 할 방향을 정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리더십으로 학생들에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리더가 될 것을 강조하며 인공지능(AI)을 필수교육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는 “‘AI혁명’의 파고를 제대로 넘은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처럼 상황이 정반대로 뒤바뀔 것”이라며 “AI는 국가의 흥망성쇠가 걸린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1조 원을 투입해 AI대학을 설립했고 하버드대도 전 교육과정에 AI를 도입했다. 특히 중국은 2030년까지 ‘AI시장’을 1조 위안(약 168조 원) 규모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인재 유치, 규제 완화에 함께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에 포스텍도 발 빠르게 대처하면서 학생들이 어떤 전공을 선택하든 AI를 기본으로 다룰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 총장은 여기에 보태 리더로서 성장할 수 있는 역량과 윤리성, 잠재력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그는 포스텍이 2009년 전국 처음으로 입학사정관제(현 학생부종합전형)를 시행할 당시 입학처장을 맡았다. 교육부의 정시모집 인원 확대 권고에 공감되는 부분도 있지만, 미래의 대학이 필요로 하는 다양성과 이공계 대학이 필요로 하는 창의성을 위해 그는 여전히 이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김 총장의 이러한 리더십은 포스텍이 대한민국의 이공계 리더를 배출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혁신의 주역인 노태문 사장, 문미옥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 벤처기업인인 ‘카페 24’의 이재석 대표를 비롯해 기초과학연구원(IBS) 부연구단장인 장영태 포스텍 교수 등이 이 대학 출신으로 대표적인 리더다. 이외에도 구글이나 애플과 같은 세계적인 정보기술(IT)기업이나 국내외 대학과 연구소, 국내 글로벌 기업 등에서 2만여 명의 동문이 활약하고 있다.

◇원전 정책도 ‘일관성’ 있는 리더십으로 = 김 총장은 원자력안전기술분야에서 정평이 나 있는 전문가로 국내 관련 기관 요직을 두루 거쳤다. 김 총장은 “코로나19로 마스크는 물론 휴지나 식료품 확보까지 곤란한 상황을 맞는 선진국이 꽤 많은 것을 보면 식량과 기본 생활용품, 의료용품과 함께 에너지의 자체 수급이 생존과 직결된다”면서 “원자력 관련 정책 역시 탈원전 정책에 대한 찬반보다는 국가 전체의 합리적인 에너지 수급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는 물리학을 공부하려던 1976년 대학 1학년 때, 아버지의 친구인 고 박시열 전 과학기술처 원자력위원회 상임위원이 밤을 꼬박 새워가며 석유파동 극복과 에너지 자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바람에 원자력을 전공하게 됐다. 김 총장은 2012년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요청으로 연구용 원자로에 필요한 높이 12m, 물 60t을 사용하는 실험장비를 학생들과 함께 4개월 만에 만들었다. 당시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변에서 말했지만 그는 끝내 제작했고, 연구도 성공해 우리나라가 요르단에 연구용 원자로 설계와 허가를 받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김 총장의 리더십 배경은 고 박태준(포스텍 설립자) 명예회장과 고 김호길 초대총장 영향 커 = 박 명예회장은 6·25 전쟁 당시 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고, 포항제철소를 건설할 때는 기업인으로 ‘제철보국’에 목숨을 걸었던 ‘애국자’이자, 모든 일에 있어 최고를 추구하는 ‘일류주의자’라고 포스텍은 평가하고 있다. ‘빈곤하고 뒤처진 나라를 일류국가로 만들기 위해선 교육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교육철학과 제철보국이 합쳐져 교육보국이라는 이념이 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리더십은 우리나라 교육을 선도해 나가는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다.

또 김 초대총장은 약소국으로서 겪은 치욕과 고통을 씻어야 한다는 애국심이 투철한 인물로 익히 알려져 있다. 대학 설립 초기 실력 있는 교수를 영입하기 위해 미국, 유럽 등 22개 국가 450여 명의 해외 인재와 접촉하면서 “여생을 조국을 위해 바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외국에서 늙어 죽을 것인가?”라며 국가 발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 이야기가 유명하다.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포스텍 창립 교수로 세계적인 석학 33명을 끌어들였다.

김 총장은 “대담하고 흔들리지 않는 이분들의 리더십은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새 지평을 열었다”면서 “이분들의 리더십을 이어받아 ‘세상 어디라도 배울 곳이 있으면 가서 배우고, 가르칠 곳이 있으면 가서 가르치라’고 학생들을 격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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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무환 포스텍 총장의 인맥

김무환 포스텍 총장은 포스텍 역사와 함께하면서 열정을 쏟아부었고 지난해 9월 8대 총장이 됐다. 김 총장은 “세계 최고가 되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다”면서 늘 학업 동기를 부여한다. 김 총장의 고교와 대학 동기는 박수길·문대혁 울산의대 교수, 박원재 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책임연구원, 김용덕 전 대법관 등이 있다. 김 총장은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했을 당시 다녔던 홍익중 은사인 김윤수·허청산 선생을 평생 잊지 않고 있다.

출생 : 1958년 부산
학력 : △서울대 원자핵공학 학사△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 원자력공학 박사
경력 : △포스텍 기계공학과·첨단원자력공학부 교수, 학생처장·입학처장·기획처장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자문기구 한국 대표위원 △한국원자력학회 평의원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제8대 포스텍 총장

- 마이클 코로디니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

마이클 코로디니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는 원자력 안전에 활용되는 열수력학(Thermalhydraulics)과 다상유동학(MultiphaseFlow)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코로디니 교수는 김무환 포스텍 총장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였다. 그는 김 총장이 대학원생이던 시절, 밤을 새워 논문에 쓸 그래프를 그려서 갔더니 “앞으로 그래프 그리는 일은 제도사에게 맡기고 연구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시간을 아껴 사용하라”는 충고를 했다. 김 총장은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보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줬다”고 회고했다.

- 김학민 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국책연구사업관리단장

국내 항공기 재료 연구·개발(R&D)과 국산화의 초석을 다지며 항공기산업 육성을 주도해 온 김학민 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국책연구사업관리단장은 재료연구소 소장과 카이스트 감사를 지냈다. 김무환 포스텍 총장은 KISTEP 원자력전문위원으로 파견돼 국책연구사업관리단장으로 일할 당시 김 전 단장과 인연을 맺었다. 이때 같이 일했던 조경목 재료전문위원, 이영식 생명전문위원, 정태영 기계전문위원 등 여러 분야 전문위원들은 지금도 자주 모여 과학기술에 대한 식견을 나눈다. 김 총장은 “이들 덕분에 지금의 책무를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건축가로 현대 건축 비평분야를 넘나들고 있다. 특히 그는 박물관이나 기업체, 학교 등에서 깊이 있는 강연으로 건축의 대중화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김무환 포스텍 총장과는 고교와 대학 동기로, 대학 시절에는 같은 클럽에서 활동했다. 김 총장이 입학처장이던 시절 그는 한예종 기획처장을 맡았다. 두 사람은 엔지니어와 예술가는 서로에게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공감했다. 이로 인해 포스텍과 한예종은 학술교류협정을 체결, 과학과 예술 교류를 통한 융합교육도 진행했다. 지금은 총장으로 다시 만나 교육과 연구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 박창규 전 한국국방과학연구소장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과 한국위험통제학회 회장, 원자력에너지 상설 자문그룹 자문위원, 한국국방과학연구소 소장을 지낸 박창규 박사는 김무환 포스텍 총장이 미국에서 학위를 끝낼 무렵 진로를 상담하러 자택을 방문했을 때 따뜻한 격려와 충고를 했다. 김 총장은 귀국 후 연구에 한참 매진하던 시절, 여러 행정적인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도 항상 박 전 소장을 선배이자 형으로 의지했다. 이때마다 박 전 소장이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거절해서 다른 사람이 그 일을 맡아 잘못한다면 그 책임은 네가 져야 한다”는 조언을 했다. 이러한 대화 이후 김 총장은 행정과 연구의 서로 다른 영역을 바쁘게 오가고 있다.

포항 = 박천학 기자 kobbl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