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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 체벌 금지 명문화… 民法 개정 추진
학대 가해자 77% 친부·친모
아동학대 국민적 공분 일어
62년만에 법 개정 계기로
징계권 삭제·체벌금지 명시
사회적 허용 훈육 범위 모호
법무부 “상황·사례따라 판단”
일각선 “가정교육 과도한 개입”
스웨덴 1979년 최초로 금지
일본 올 4월부터 새 법 적용
법무부가 갈수록 흉악해지고 있는 아동 학대 사건을 막기 위해 아동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을 추진키로 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58년 민법이 제정된 이래로 부모의 징계권을 인정한 민법 관련 조항을 삭제하고 개정키로 한 것은 처음이다. 2014년 아동학대 범죄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으나 가정 내 아동학대 사건이 좀처럼 줄지 않자 친권자 체벌 합법화에 빌미를 줄 수 있는 민법상 징계권 규정 자체를 없애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에 따라 체벌을 훈육 수단으로 여겨 온 유교적인 인식과 부모·자식 간의 관계에 대한 사회적 통념 및 관련 제도에도 큰 변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민법 개정 추진이 가정교육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번 징계권 삭제 추진을 아동학대 근절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① 친권이란
친권은 미성년인 자녀에 대한 부모의 보호·감독을 내용으로 하는 신분상·재산상의 여러 권리와 의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근대법(민법)은 미성년인 자녀를 보호·교양하는 사람을 위해 친권 개념을 만들었다. 친권자는 △자녀의 보호·교양, 거주지 지정, 징계, 영업허락 등 자녀의 신분에 관한 권리 의무 △재산관리 및 재산상 법률행위의 동의 및 대리 등 자녀의 재산에 관한 권리 의무를 진다. 친권은 친권자 또는 자녀의 사망, 자녀의 성년 도달로 소멸하고, 분가, 혼인, 이혼, 입양, 파양 등의 원인으로 소멸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소멸 원인으로는 친권상실선고와 친권의 일부 사퇴가 있다. 친권의 일부 사퇴는 가정법원에서 친권자가 친권을 행사하는 것이 곤란하거나 부적당한 사유가 있어 자녀의 복리를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 친권의 일부를 제한하는 것을 뜻한다. 친권은 부모가 공동으로 행사하는 것이 원칙이며, 부모의 한쪽이 친권을 행사할 수 없을 때는 다른 한쪽이 이를 행사한다. 혼인 외 자녀가 인지된 경우와 부모가 이혼한 경우에는 부모의 협의로 친권자를 정한다. 협의가 안 되면 가정법원이 정한다.
② 징계권 삭제 및 체벌금지 민법 명시
법무부가 아동 폭력·학대 사건의 꾸준한 증가세를 막고자 자녀에 대한 체벌 금지 조항을 민법에 명문화하는 방안(민법 일부 개정안 발의)을 추진하기로 했다.
법무부는 현행 민법 제915조 징계권 조항에는 ‘훈육’의 의미가 담겨 있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체벌을 허용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으므로 ‘체벌은 부모의 징계권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별도 조항을 신설할 방침이다. 현행 민법은 사실상 친권자에게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해놨다. 물론 민법에서 규정하는 징계에는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방식은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징계권 조항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민법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체벌을 허용하는 것으로 오인돼왔던 게 현실이다. 정부는 앞으로 이런 행위를 모두 ‘훈육을 가장한 학대’로 폭넓게 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동학대 신고가 매년 증가하고 이 중 부모가 학대 가해자인 경우가 70% 이상인 만큼 더는 자녀 체벌에 관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③ 사랑의 매 완전금지되나
민법에서 체벌권이 삭제되면 훈육을 위한 체벌, 이른바 ‘사랑의 매’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법 개정 이후에도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굿네이버스는 지난 1월 정의당과 ‘사랑의 매는 없습니다―민법 징계권 조항 삭제 촉구’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번에 법무부가 추진하는 민법 징계권 삭제는 입법 취지로 볼 때 가정 내에서 훈육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사랑의 매를 근절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사랑의 매에 대한 기준이 없어 일률적으로 적용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법무부도 법 개정 후에는 상황과 사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친권자가 훈육을 행사하는 방법이나 정도에 대해 민법에서 따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 구체적으로 어떤 사유로 인해 체벌이 이뤄졌는지 등에 대한 것은 사안이 발생했을 때 결과적으로 판단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민법 개정 후에도 부모가 자녀에 대한 훈육과 체벌 등이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면 친권상실이나 친권 일부 제한, 형사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은 현행과 동일하다.
④ 왜 62년 만에 개정 나서나
아동학대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충남 천안에서 계모가 9세 의붓아들을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해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29일 경남 창녕에서 계부와 친모의 엽기적인 학대로 손가락에 화상을 입고 온몸이 멍투성이가 된 9세 여아가 길거리에서 발견되자 법무부는 아동학대 사건을 막기 위해 친권자 징계권 삭제를 추진하게 됐다.
천안 가방 감금 사건은 지난 1일 사실혼 관계에 있던 계모(43)가 함께 살던 의붓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계모는 의붓아들을 여행용 가방을 바꿔가며 7시간 넘게 감금했고, 중간에 3시간 동안 외출까지 한 것으로 조사됐다. 창녕 ‘프라이팬’ 학대 사건은 지난달 29일 고문 수준의 학대를 견디지 못한 9세 여아가 추락의 위험을 무릅쓰고 빌라 4층 집에서 옆집으로 탈출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 여아는 계부(35)가 달궈진 프라이팬에 손가락을 지졌고 친모(27)는 달군 젓가락으로 발바닥을 지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계부와 친모가 쇠사슬로 목을 감은 뒤 자물쇠를 채워 발코니에서 생활하게 했고, 욕조에 몸을 담가 숨을 쉬지 못하게 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⑤ 통계로 본 아동학대
통계를 통해 확인된 아동학대의 실상은 ‘악화일로’다. 보건복지부 등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집계한 아동학대 통계에 따르면, 2014년 1만27건이었던 아동학대 건수는 △2015년 1만1715건 △2016년 1만8700건 △2017년 2만2367건 △2018년 2만4604건으로 매년 늘어났다. 이 중 아동이 사망에 이르는 심각한 수위의 학대도 잦았다. 아동학대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1년부터 2018년까지 학대로 세상을 떠난 아동은 279명에 달했다. 최근 5년간 추이를 보면 2014년 14명, 2015년 16명, 2016년 36명, 2017년 38명, 2018년 28명 등이다. 당국은 실제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 건수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수사기관과 아동보호전문기관 간 소통부족으로 통계가 누락됐을 가능성이 있으며, 의료기관 등에서도 빠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아동학대는 대부분 집에서 부모에 의해 저질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의 ‘2018 아동학대 주요 통계’에 따르면 가해자의 77%가 친부·친모이고, 발생 장소의 79%가 집이었다. 그러나 경찰조사를 받은 아이들의 82%(2만164건)는 원가정보호 조치가 내려져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으며, 학대행위자와 피해아동이 분리된 사례는 13.4%(3287건)에 그쳤다.
⑥ 형법상 현행 처벌 규정은
현행 형법상 처벌 규정은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명시돼 있다. 먼저 아동복지법 제17조와 제71조에 따르면,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신체의 건강 및 발달을 해치는 신체적 학대 행위의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만약 이러한 신체적 학대 행위가 아동을 사망이나 중대한 질병에 이르게 한 경우 등에 대해서는 특례법이 적용되는데, 학대로 아동을 사망에 이르게 한 아동학대치사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학대로 아동의 생명에 대한 위험을 발생하게 하거나 불구 또는 난치의 질병에 이르게 한 아동학대 중상해에 대해서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특히 상습적으로 아동학대범죄를 범한 자에 대해서는 형량의 2분의 1까지 가중할 수 있다. 다만 친권자 체벌의 경우 민법 제915조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참작돼 형량이 감경되거나 무죄가 선고되는 문제가 계속 제기돼 왔다.
⑦ 아동학대 재판에 미치는 영향은
친권자의 자녀 징계권을 인정한 현행 민법 제915조는 오히려 그간 아동학대 피의자에 대한 면책 사유와 참작 기준이 됐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실제로 대법원 판례 등에 따르면, 자녀에 대한 폭력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재판부가 친권자의 징계권 범위에 속해 위법성 조각사유(형식적으로는 불법 행위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도 실질적으로는 위법이 아니라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유)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이 부분만 따로 떼어 무죄 판결을 내릴 수 있었다. 법무부가 해당 조항을 아예 삭제할 방침을 밝히면서 앞으로 민법상 징계권을 근거로 아동학대 사건의 형량이 줄어들거나 무죄가 선고되는 사례는 사라질 전망이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이번 민법 개정으로 아동학대 사건에 있어서 면책 사유와 참작 기준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잇따른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21대 국회에서도 관련 형량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들이 발의되고 있다.
⑧ 스웨덴 아동체벌 금지 효시
스웨덴은 20세기 초만 해도 다른 북유럽 국가들처럼 부권이 강한 국가였다. 그러다 1971년 4세짜리 여아가 계부의 폭력으로 사망하는 등 1970년대 부모의 체벌로 자녀가 목숨을 잃은 사건이 5건이나 발생하자 가정폭력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1977년 스웨덴 정부는 아동권리위원회를 구성해 사건 조사와 대안 모색에 나섰다. 이후 1979년 3월 15일 ‘부모와 자식법’을 찬성 259표, 반대 6표, 기권 3표로 통과시켰다. 법 실시 이후 스웨덴 정부의 지속적인 계도활동이 병행됐으며, 1960년대 10명 중 9명이 경험했던 가정 내 체벌은 2014년 전체의 5%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후 많은 국가가 이에 동참했고 일본을 포함해 핀란드·독일·프랑스 등 56개국이 아동에 대한 모든 체벌을 금지하고 있으며,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우리 정부를 대상으로 아동체벌금지원칙 제정을 권고한 바 있다.
⑨ 뒤늦게 가세한 일본
한국과 함께 민법에 친권자의 징계권을 명시하고 있는 일본도 국제사회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 10세 소녀가 아버지의 학대로 욕조 안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는 등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르자 일본 참의원은 자녀에 대한 체벌을 금지하는 내용의 아동학대방지법을 만장일치로 가결했고, 이 법은 올해 4월 시행됐다. 하지만 징계권 삭제는 논의만 됐을 뿐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탓에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일본 민법 제822조는 ‘친권을 행하는 자는 양육 및 교육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그 자식을 징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징계라는 말이 없어지면 예절교육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으로 오해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자녀 체벌 금지’는 명문화했지만, 징계권 자체는 아직 폐지하지 못한 것이다.
⑩ 향후 법 개정 절차는
앞으로 법무부는 민법 개정을 위한 정부 입법 절차를 밟게 된다. 민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 위해서는 법안 입안, 관계기관 협의, 입법예고,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및 국무회의 심의, 대통령 재가 등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각 단계를 밟는 데 최장 60일 정도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민법 개정안은 이르면 올해 정기국회 기간에 국회에 제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에서는 법제사법위원회가 개정안 심사를 하게 된다. 아직 여야는 민법 개정안과 관련해 특별한 의견을 밝히지 않은 상황이다. 아동 체벌 금지에 여야가 이견을 보일 가능성은 작아 국회 심사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회 상황에 따라 법안 심사가 늦어질 수도 있다. 민법 개정안이 법사위 심사를 거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다시 정부에 송부돼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후 공포된다.
이해완·이은지·송유근·박준우·서종민·박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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