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코로나가 ‘세계를 얼마나 바꿀까’ 보다… 인류가 ‘어떻게 대응할까’ 고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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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가 본 코로나 사태

감염대응 위한 개인자유 억압
‘메디컬 파시즘’등장할까 우려

역사는 과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인가. 임지현 교수는 “인간은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역사적 행위자(agency)”라며 “코로나19가 인류와 세계를 얼마나 바꿀 것인가가 아니라, 이번 사태가 만든 완전히 다른 객관적 조건들에 우리가 어떻게 개입해야 세계가 이전보다 좋아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린 뉴딜’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스크린 뉴딜’에 도사린 ‘메디컬 파시즘’과 같은 위험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노동의 변화’ 속에 노동자의 품위 있는 삶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코로나19가 던져준 쟁점으로 지목하고, 개인과 사회, 나아가 인류 전체가 해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3대 쟁점에 대한 임 교수의 진단과 처방을 압축해 옮긴다.

◇그린 뉴딜 =“최근 스웨덴 룬드대의 친구에게서 ‘이렇게 맑은 하늘은 몇 십 년 만에 처음 본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룬드 근처 코펜하겐 공항이 거의 업무 정지되다 보니 맑은 하늘이 열렸다는 얘긴데, 늘 푸른 하늘을 가진 스웨덴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오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히말라야 봉우리가 그대로 드러난 인도 사진도 있었죠. 불과 한두 달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기후변화가 인간이 만든 문제라고 해서 안트로포세(Anthropocene), 즉 인류세(人類世)라고 해왔는데, 이제 보니 캐피털로세(Capitalocene)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아요. 그사이 세계 인구가 확 줄어든 것도 아니고, 단지 차이는 많은 공장이 멈추고 차들이 안 다닌 것뿐이죠. 지구 환경에 큰 변화가 온 게 인간이 많아져서가 아니라 무한 생산, 무한 이윤 추구의 자본주의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겁니다. 코로나19 사태가 한국 사회, 나아가 인류가 ‘그린 뉴딜’을 추진할 계기를 만들어줬다고 봅니다. 예전에는 기후변화를 생각하면 암담했는데, 오히려 이번에 지구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니 자신감이 생깁니다.”

◇메디컬 파시즘 =“슬라보이 지제크가 최근 인터뷰에서 ‘스크린 뉴딜’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정보기술(IT)로 사람들이 비대면, 스크린을 통해 만나는 일이 많아지는 것을 말한 ‘그린 뉴딜’을 패러디해 표현한 거죠. 특히 원격의료의 부작용을 막을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10년 전쯤 의학사를 연구하는 독일 친구들이 ‘의료의 프로그램화’를 걱정하는 이야기를 했어요. 가령 문화일보 문화부 차장이 난치병에 걸렸다 칩시다. 프로그램이 ‘우리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10억 원의 사회적 비용을 들여서라도 살려야 한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겁니다. 정반대도 있겠죠. ‘스크린 뉴딜’로 의사가 환자를 직접 보지 않고 결정한다면 대면 때와 다를 수 있겠죠. 사실 나치가 가스실을 만든 이유도 비슷합니다. 동부전선에서 유대인을 그냥 총으로 쏴 죽였을 때 특수부대원들이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어했어요. 그런데 가스실은 그냥 스위치만 누르죠. ‘명령에 따라 스위치를 눌렀을 뿐 내가 사람을 죽인 건 아니다’고 생각하게 하는 시스템·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겁니다.”

“광범위한 개인정보 활용은 사후에라도 제대로 토론해야 할 사안입니다. 이태원발 감염 대응 때, 통신회사들이 기지국에 잡힌 사람들 정보를 질병관리본부에 제공했고 이제 QR코드를 쓴다고 합니다. 엄밀한 법적 근거가 있나요? 지금은 비상사태이니 다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어디까지 침해해도 되는지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법적 근거도 마련해야 합니다. 그냥 ‘온 국민이 협력해 잘 극복했다’고 넘어갈 게 아니라 비판적 검토가 뒤따라야 좀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겠죠.”

◇노동의 변화 =“‘그린 뉴딜’은 생산을 감소시킵니다. 이미 자동화로 경제성장에 반비례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더 심화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많은 노동자가 재택근무를 했는데, 자본 입장에선 ‘이 사람들 없어도 회사가 돌아간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그래서 노동으로 먹고살던 사람들이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어떻게 보장받을 것인가가 큰 문제가 됐습니다. 긴급 재난보조금이 굉장히 중요한 실험이었다고 봅니다. 미래통합당에서도 기본소득 얘기를 하잖아요. 생산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어떻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계기가 될 겁니다. 특히 이전에 노동이라고 하면 중공업, 자동차 공장 등의 노동을 떠올렸는데 이젠 ‘돌봄 노동’이 중시되면서 사람들의 각성이 시작됐어요.”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