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통일과 귀향을 고대하는 실향민 개풍인들의 정신적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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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실(1912~1987)

회장님! 어느 때나 저승에 있어도 두고 온 고향을 애타게 그리며 염려하시겠지요. 우리 개풍 회원들은 회장님 은덕에 통일과 귀향을 고대하며 친목과 애향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회장님이 우리 곁을 홀연 떠나신 지 33년. 그간 군민회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1950년 6·25전쟁으로 피란 온 개풍인들은 하루를 먹고살기 힘들어도 1955년 군민회를 창립해 실향의 한을 달랬습니다.

하지만 산 설고, 물 선 곳에서 이산가족 모임은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1961년 군민회 활동은 흐지부지되고 역사 속에 묻히는 듯했습니다. 회장님은 1983년 군민회장을 맡아 유명무실한 군민회를 재건하고 동향인들을 다시 규합했습니다. 회장님은 사재를 털어 1984년 개풍인들의 향토역사서인 ‘개풍지’를 발간해 배포하면서 고향과 실향민의 정체성을 강조했습니다. 이어 1985년에는 고향 사람들의 근황을 전하는 ‘개풍군민회보’를 창간해 이북도민사회를 놀라게 했습니다. 월간회보 창간은 자금조달 등 반대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회장님은 회보가 분단된 남북에서 개풍인의 삶을 증언하고 후계세대를 위한 통일운동임을 설득해 회원들의 참여와 협조를 끌어냈습니다. 이를 계기로 35년 동안 지금까지 실향민 회보를 발간하는 곳은 미수복지역에서 개풍군이 유일합니다. 이는 재임 기간에 회장님의 혜안과 통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회장님은 이토록 개풍인들에게 고향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통일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셨습니다.

1957년 창업한 중앙제지공업주식회사를 경영하면서 회장님은 맨손의 실향민들을 가족처럼 우선 채용하는 등 투철한 애향심과 후덕한 인심으로 군민회장이 되기 전부터 정평이 났습니다. 당시 회장님이 고사 직전의 군민회를 되살리지 않았다면 지금의 군민회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란 게 그때를 회고하는 원로들의 중론입니다. 회장님이야말로 통일한국을 끝까지 염원하다 산화한 실향민들의 정신적 스승입니다.

개풍인들은 뜻하지 않은 전쟁으로 고향을 등진 실향민들입니다. 1·4후퇴로 하루나 며칠, 잠시 피란길에 오를 줄 알았던 것이 고향·가족과의 마지막 이별이었고, 7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우리 고향은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가까운 곳입니다. 같은 실향민이라도 개풍인이 더 절절하고 애틋하다고 말하는 배경이지요.

이러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했던 회장님은 고향 사람을 한결같이 보듬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개풍인 특유의 근검절약과 희생정신도 잊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런데 부전자전인가요. 장남인 희윤(90) 옹은 개풍군 명예군수를 지내고 회장님의 유지를 받들고 있습니다.

올해는 군민회 창립 65년을 맞았습니다. 회장님이 그토록 염원하던 평화통일과 귀향은 아직도 미완의 과제입니다. 군민회가 추진하는 각종 애향사업과 통일을 대비한 후계 육성도 녹록지 않은 실정입니다. 세대를 거듭하며 선대와 달리 실향민 후세들의 뿌리 의식과 가치관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애향모임도 거의 멈춰 군민회원 간 소통이 위축될까 걱정이 앞섭니다. 그러나 고비를 맞을 때마다 회장님이 다져 온 단합과 애향정신을 되새기며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있습니다. 생전에 회장님이 하신 말씀이 생생합니다. “뿌리 없는 초목 없듯이 조상 없는 후손 없다.” 마치 회장님 존함 그대로입니다.

오는 8월 17일은 군민회 창립일입니다. 개풍 회원들은 조만간 회장님 공적비가 있는 선영을 찾아 새로운 각오를 다질 계획입니다. 그때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귀향과 통일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주시길 기대합니다.

이혁진 개풍군민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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