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스마트폰, 진실을 기록하다… Z세대, 시위를 주도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관 데릭 쇼빈이 수갑이 채워진 채 “숨을 쉴 수 없다”며 애원하는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누르고 있다. 사진은 월스트리트저널이 17세 흑인 여고생 다넬라 프레이저가 아이폰11으로 촬영한 비디오를 캡처한 뒤 변형했다. 그래픽 = 김연아 기자

■ 美 인종차별 반대운동 도화선 두가지

17세 여고생 스마트폰 촬영물
SNS 타고 ‘진실의 순간’ 확산
‘플로이드 사망’ 항의시위 촉발
‘로드니 킹 사건’과도 닮은꼴

“내가 본 것을 세상도 볼 필요”
경찰 가혹행위에 본능적 대처

‘디지털 원주민’ Z세대가 리더
美 시위인파 절반이 30세이하
경제위기 직격탄에 불안 표출

“스마트폰과 Z세대(1995년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가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탄생시켰다?”

지난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비무장 상태였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46)가 사망한 사건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각국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불을 댕겼다. 과거에도 유사 사건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왜 강력한 폭발력을 갖게 됐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공포와 각국의 봉쇄조치에 따른 불만 및 피로감 누적 등이 겹치면서 인종차별 시위에 새로운 동력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핵심 요인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스마트폰의 진화와 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젊은 세대, Z세대다. ‘사건’은 물론 일상까지 스마트폰에 담고, 이를 SNS에서 공유하는 것은 이제 Z세대의 ‘본능’이 됐다.

◇스마트폰, 진실을 기록하다=이번 플로이드 사망 사건은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의 도화선이 된 ‘로드니 킹’ 사건과 닮았다. 1991년 로스앤젤레스. 과속운전을 하다 체포된 흑인 킹은 백인 경찰들에게 무차별 구타를 당한다. 인근 주민이었던 조지 홀리데이는 집 발코니에서 자신의 캠코더로 이 장면을 촬영했고, 이 영상은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지금, 더 이상 캠코더와 같은 ‘별도의 장비’는 필요 없다. 누구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진실을 기록하는 시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로이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도 스마트폰으로 플로이드를 촬영한 17세 흑인 여고생 다넬라 프레이저 덕분이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 “과거에도 이런 사건은 있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우리가 증거를 포착하고 광범위하게 노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라며 “스마트폰 카메라 기술의 진화는 경찰의 진실을 기록하고 역사를 바꿨다”고 평가했다. 2019년 기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미국인은 전체의 69%에 달한다. 18∼49세로 좁히면 사용률은 90%를 넘어선다.

실제 지난 10년간 스마트폰은 흑인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 시민들이 직접 포착한 ‘진실의 순간’들은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와 만나 폭발적인 파급력을 일으켰다. 2009년 한 흑인 청년이 경찰의 과잉진압과 총격으로 사망한 ‘오스카 그랜트 사건’도 카리나 바가스가 휴대전화와 디지털카메라로 현장을 촬영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바가스는 “당시 내가 아이폰을 가지고 있었다면 훨씬 더 좋은 영상을 찍었을 것”이라며 “아마 인스타그램이나 다른 곳에 공유했다면 모두가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바가스와 목격자들이 촬영한 영상들은 증거로 제출됐고, 해당 경찰관은 유죄를 받았다.

2014년 한 흑인이 경찰의 ‘목 조르기’ 가혹 행위로 인해 숨진 ‘에릭 가너 사건’은 램지 오타와 그의 스마트폰에 의해 폭로됐다. 영상에서 가너는 2020년의 플로이드처럼 죽기 전 11차례나 “숨을 쉴 수 없다”고 말했다. WSJ는 “(가너의) ‘숨을 쉴 수 없다’는 말은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의 구호가 됐다”고 설명했다.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노스 찰스턴에서 경찰이 흑인을 향해 5번이나 총을 쏴 숨지게 한 ‘월터 스콧’도 페이딘 산타나가 우연히 스마트폰으로 이 장면을 포착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2016년에는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에서 CD를 팔고 있던 한 흑인이 백인 경찰 2명에게 제압당하다 총에 맞아 숨진 ‘앨턴 스털링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역시 한 시민이 직접 촬영한 영상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흑인 사회의 분노를 사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의 ‘스마트폰 기록자’들은 ‘왜 촬영을 했나’라는 질문에 하나같이 ‘본능’이란 표현을 썼다고 WSJ는 전했다. 플로이드 사건을 촬영한 프레이저는 “나의 동네에서는 경찰의 가혹 행위가 너무 만연하기 때문에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녹화를 시작했다”며 “세상은 내가 본 것을 볼 필요가 있었다”고 언론에 밝힌 바 있다. 프레이저가 본능적으로 스마트폰 녹화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경찰관들은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며 또 다른 흑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을지도 모른다. 스마트폰 기술은 계속 진화한다. 시민의 손안에 든 ‘감시의 눈’이 더 정확해질 것이란 뜻이다.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 Z세대, 시위를 주도하다 = 이번 인종차별 반대 시위의 또 다른 특징은 스마트폰, SNS 사용에 능숙한 Z세대가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코로나19로 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시위를 통해 표출하고 있다.

Z세대란 1995년 이후 태어난 세대로, 디지털 세상에서 태어나고 자라 ‘디지털 원주민’이라고도 불린다. 대부분 학생이거나 막 사회에 나온 사회초년생들이다. 이들은 올해 코로나19를 계기로 ‘봉쇄 세대(lockdown generation)’라는 별칭도 얻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코로나19로 전 세계적으로 실업률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특히 젊은 노동자들(18∼26세)은 6명 중 1명이 일자리를 잃을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며 Z세대를 봉쇄 세대로 정의하면서다. ILO는 “수많은 청년이 노동시장에서 뒤처질 것이며, 이러한 충격은 10년 혹은 그 이상 계속될 것”이라며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이와 관련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Z세대는 이번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서 직접 단체를 조직하고 SNS에서 입소문을 퍼트려 참여를 독려하는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시위는 지난 몇 달간 갇혀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배출구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이들 상당수는 현재 학교에 가지 못하거나 실직한 상태”라고 전했다. 실제 사회학자인 다나 피셔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주말 뉴욕, 워싱턴, 로스앤젤레스, 런던의 시위에 나온 인파의 절반은 30세 이하였다. 피셔는 “이들은 바이러스 감염에 상대적으로 덜 취약하며, 더위 속에서 몇 시간 동안 항의할 수 있는 체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 DC에서 활동하는 한 청소년단체 관계자는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위기는 유색인종에 대한 미국 사회의 지속적인 불평등을 인식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윤정아 기자 jay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