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2020.7.7 화요일
전광판
Hot Click
문화일반
[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20년 06월 24일(水)
약자가 강자를 무너뜨리는… ‘꾀의 영웅’ 현실에선 없다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일러스트 = 이철형 작가

■ 김태환의 이야기철학 - ③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직시 않고 책임회피… 불가능한 해결 약속하는 ‘가짜 영웅’ 불러
제대로 된 계산이 없는 비합리적 기대를 근거로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경고


쥐들이 고양이의 위협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모여서 회의를 연다. 한 쥐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고 제안한다. 모두 다 좋은 생각이라고 박수를 치며 찬동할 때 한 늙은 쥐가 일어나서 묻는다. 그런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겠소? 그러자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속담의 기원으로도 잘 알려진 이 이야기는 흔히 이솝 우화로 여겨지지만, 문헌상으로는 13세기 초에 발간된 오도 오브 체리튼의 라틴어 우화집에 처음으로 나타났고, 17세기 후반에 비로소 영어로 된 이솝 우화 모음집에 들어갔다. 비슷한 시기에 발간된 라퐁텐의 우화집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동일한 이야기가 조선 중기의 문헌에도 수록돼 전해지고 있다. 라퐁텐이 우화집을 발간한 것과 같은 시기인 1678년에 홍만종(洪萬宗)이 쓴 ‘순오지(旬五志)’라는 책에 이 이야기가 ‘묘항현령(猫項懸鈴)’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돼 있는 것이다. 고양이 묘, 목덜미 항, 매달 현, 방울 령이니, 말 그대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의미다. 서양에서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말은 일찍부터 속담으로 사용됐는데, 홍만종의 글 역시 당시에 이미 묘항현령이라는 말이 속담으로 쓰이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로 유사한 이야기가 상이한 문화권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가 이곳저곳으로 전파됐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다는 속담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무엇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크게 두 가지 해석으로 나뉜다. 하나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이 실현 불가능한 허망한 공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모두를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지만 그 일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할 용기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첫 번째 해석이 안 될 일을 가지고 애초에 생각하고 논의한다는 게 에너지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면, 두 번째 해석은 꼭 돼야 할 일을 해낼 영웅이 없다는 것에 대한 한탄에 가깝다. 우화의 본래 교훈은 첫 번째 해석에 가깝지만, 우화를 잘 분석해보면, 왜 그 우화에서 속담의 두 번째 의미가 나왔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고양이는 쥐의 천적이다. 쥐는 고양이와 맞서 싸울 힘이 없을 뿐 아니라, 고양이를 피해 달아나기에도 역부족이다. 힘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를 써야 한다. 리투아니아 출신의 기호학자 그레마스가 분류한 바 있듯이 이야기의 세계에는 두 유형의 영웅이 있다. 엄청난 힘을 가진 영웅과 힘은 없지만 꾀가 많은 영웅. 주체의 능력에 힘과 꾀라는 두 종류가 있는 셈인데, 힘없는 쥐들은 꾀라도 짜내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래서 나온 꾀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이다. 방울소리는 고양이에게서 달아날 때 쥐가 가지고 있는 육체적 핸디캡을 보완해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곧 꾀가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그 꾀가 실제로 작동하려면 다시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처럼 고양이를 힘으로 제압할 수 있어야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다. 그런데 쥐들이 꾀를 짜내려 한 것은 고양이와 자신들이 결코 힘으로 대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쥐들의 회의는 어처구니없는 자가당착에 빠져든다. 보다 못한 늙은 쥐가 대체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거냐고 물으며 그 자가당착을 드러낸다.

쥐들의 회의는 고양이의 위협을 막을 수 없다는 불가능성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없다는 또 다른 불가능성으로 대체한 꼴이 된다. 그런데 왜 쥐들은 그 불가능한 아이디어에 환호한 것일까? 쥐들은 어쩌면 고양이가 잠든 사이에 눈치채지 않게 방울을 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양이가 깨지 않게 그런 작업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고,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고양이에게 바싹 다가가서 작업할 쥐도 없다. 쥐들도 좀 더 깊이 생각해봤다면 고양이와 대결하는 것이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이나 모두 똑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쥐들이 막연한 생각으로 성급한 결론을 내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래의 문제, 즉 고양이에게서 안전하게 피한다는 것은 모두가 똑같이 직면한 문제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고양이의 위협에 어떻게 대비할까를 각자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만큼 쥐들은 고양이를 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다. 고양이에게서 목숨을 보존하느냐의 여부는 오직 운에 달려 있다. 살아남은 쥐들은 오직 다른 쥐들이 먼저 죽어준 덕에 살아남은 것이라고 봐야 한다. 내가 우연히 고양이에게 가장 가까이 있다면 고양이를 피할 수 있었을까? 모든 쥐가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것에 대해 전혀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모여서 대책 회의를 한 것이다.

하지만 회의에서 제안된 계책, 즉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는 사정이 다르다. 그것은 모두가 저마다 수행해야 하는 과제가 아니다. 누군가가 한번 실행하기만 하면 모두에게 두고두고 고양이를 미리 피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따라서 쥐들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제안이 나왔을 때 ‘내가 그 일을 해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었다. 다른 쥐 중 누군가 한 번만 그 임무를 수행해주면 된다. 자기가 직접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쥐들은 그 과제가 정말 실행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기를 중단한다. 누군가 나보다 능력 있는 쥐가 그 일을 하겠지. 한 마리의 용감한 쥐만 있다면 두고두고 걱정이 없다. 이런 생각에 빠져 쥐들은 불가능한 계획에 열렬히 찬동한다.

우화가 뚜렷하게 부각시키지는 않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환호하는 쥐들의 마음에는 경우에 따라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줄 영웅에 대한 기대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사람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어려운 사회 문제에 직면해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라고 한탄할 때, 우화에 잠재적으로 남아 있는 영웅주의가 모습을 드러낸다. 영웅이 등장해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영웅이 나타나지 않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한탄도 모두 영웅주의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영웅주의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에 대한 희망이라는 점에서 거짓된 희망이며, 또한 위험한 희망이기도 하다. 영웅주의는 자기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누군가가 대신 모든 짐을 짊어지고 나서서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의타심과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해결을 맡긴 뒤에 더 이상 문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나태함과 무책임함으로 이뤄진다. 영웅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문제 자체를 직시하기를 거부하며, 그럼으로써 불가능한 해결을 약속하는 가짜 영웅이 등장할 수 있는 좋은 토양을 제공한다.

다행스럽게도 우화에서는 쥐들의 영웅주의적 열광에 찬물을 끼얹는 늙은 쥐가 마지막에 등장한다. 늙은 쥐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는지 물음으로써, 영웅에 대한 기대가 헛된 것임을, 영웅을 필요조건으로 하는 문제 해결책이 사실은 아무런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힘 있는 영웅만이 실행할 수 있는 꾀는 꾀가 아닌 것이다. 우화의 진짜 메시지는 여기에 있다. 늙은 쥐의 질문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러가는 용사가 없느냐는 질타가 아니라, 제대로 된 계산이 없는 비합리적 기대를 근거로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경고다.

이 우화의 반 영웅적 성격과 관련해 흥미로운 몽골의 설화가 있다. 그것은 서양에서 전해져온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우화나 조선 시대에 기록으로 남은 묘항현령의 우화와 완전히 다른 성격의 이야기다. 고양이가 불도를 닦는 수도자인 척하면서 부처님 말씀을 전한다는 구실로 주위의 쥐들을 끌어모았다. 그러나 쥐의 왕 후칭토스트는 고양이 똥에 뼈와 털이 섞여 있는 것을 보고 고양이가 몰래 쥐들을 슬쩍슬쩍 잡아먹는다는 의심을 품고, 고양이를 찾아가 사부님께 장식을 해드린다고 설득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준다. 쥐의 왕은 방울 소리로 고양이가 쥐를 몰래 잡아먹는 현장을 확인한 뒤에, 쥐의 무리를 이끌고 가짜 수도자 고양이를 떠나버린다. 이 이야기에서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는 진정한 꾀, 강자의 사악한 계략을 폭로하기 위한 약자의 지혜다. 고양이는 그 꾀에 걸려들었고, 정체가 탄로 나는 바람에 손쉬운 먹잇감을 몽땅 잃어버리고 만다.

이 이야기는 약자가 꾀로 강자를 물리치는 전형적인 설화적 구도를 보여준다. 후칭토스트는 종족을 위기에서 구원한 진정한 영웅, 꾀의 영웅이다. 고양이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쥐들의 회의에서 방울 달기를 제안한 쥐도 아마 그런 꾀의 영웅이 되기를 꿈꿨을 것이다. 그러나 그 꾀는 되다만 반쪽짜리 꾀에 그쳤다. 약자가 강자를 꾀로 따돌리고 해방되는 설화적 사건은 이 우화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약자의 꿈일 뿐이다. 우화는 냉정하고 현실적이다. 추측에 지나지 않는 생각이지만, 몽골의 설화가 이 이야기의 원형적인 모습을 간직한 것이 아닐까 한다. 설화적 세계 속에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는 약한 주인공이 동원할 수 있는 꾀의 목록에 속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묘항현령이 전설적이고 영웅적인 세계에서나 통할 수 있는 순진한 꾀라는 후대의 현실주의적 인식, 약자가 꾀로 강자를 무너뜨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어떤 체념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우화를 낳은 것이 아닐까.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 용어설명

순오지
조선 후기 문신·학자 홍만종이 36세 되던 해인 1678년에 저술한 2권 1책의 잡록. 책이 보름 만에 완성됐기 때문에 ‘십오지(十五志)’라고도 한다. 책머리에 김득신(金得臣)의 서와 함께 저자의 자서가 실려 있는데, 저자는 병으로 누워지내던 중 적적함을 이겨내기 위해 평소 들은 여러 가지 말과 민가에 떠도는 속담 등을 기록했다고 밝히고 있다. 내용은 상권에 고사일문(古史逸聞)·시화·양생술, 하권에 유현·도가·불가·삼교합론(三敎合論)·문담·문집·별호·속언 등이 담겨 있다. 시화 20여 항목이 실려 있고, 조식의 ‘권선지로가’, 정철의 ‘관동별곡’ 등 우리말로 된 가사 14편도 간결한 평과 함께 소개되고 있다. 책의 끝부분에는 상당수의 속담을 한문으로 번역·게재해 조선 시대 속담의 실태도 엿볼 수 있게 했다.
[ 많이 본 기사 ]
▶ 대검 “추미애, 尹수사지휘권 박탈은 위법”
▶ 유명 야구인 아들 수억대 사기행각…피해자 목숨 끊어
▶ “팀닥터, 최숙현 자살하게 만들 수 있단 식으로 말했다”
▶ 손예진, 할리우드 진출한다…이선균 합류도 관심
▶ 양기대 “박지원, DJ 잘 봐달라며 정치부장에 무릎꿇어”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 : m.munhwa.com ]
“중학생 5명이 집단 폭행” 초등생 ..
‘콘돔 끼우기’ 시연하려던 남녀공학 교..
중국 네이멍구서 흑사병 환자 발생…..
“지금이라도 사는 게 맞나”… 빗발치..
‘검찰 장악’은 독재 완성의 길목
topnew_title
topnews_photo ‘검사장 회의’ 결론 총장 보고 “특임검사 등 중립수사 필요 총장 사퇴해야할 사안 아냐” 尹, 법무에 재지휘 요청할듯 법무부-檢 정면충..
ㄴ 대검 “검사장들은 특임검사 건의했다”…윤석열에 보고
ㄴ 尹 ‘위법지휘 수용불가’ 판단… 秋 ‘거부땐 尹징계절차’ 밟을듯
국내 코로나19, ‘전파력 6배’ GH그룹…“유럽-미국..
‘특임검사 필요’ 검사장 의견 공개한 윤석열…최종..
“팀닥터, 최숙현 자살하게 만들 수 있단 식으로 말..
line
special news 손예진, 할리우드 진출한다…이선균 합류도 관심
앤드루 니콜 신작 ‘크로스’ 세부 논의 중배우 손예진이 할리우드에 진출한다.소속사 엠에스팀엔터테인먼..

line
유명 야구인 아들 수억대 사기행각…피해자 목숨 ..
美송환 피한 손정우 1년2개월만에 석방…추가 처벌..
이해찬 “靑·政이 정책 결정뒤 요청하는 黨政협의 받..
photo_news
‘시네마천국’ ‘황야의 무법자’ 영화음악 거장 모..
photo_news
‘물리학자’에서 ‘헐크’로 변신한 디섐보, PGA ..
line
[전지적 문화 시점]
illust
‘블랙핑크 스타일’ 글로벌 名品이 되다
[자동차]
illust
잘 빠진 N라인 꿈꾼다… 현대車의 ‘고성능’ 승부수
topnew_title
number “중학생 5명이 집단 폭행” 초등생 신고…경..
‘콘돔 끼우기’ 시연하려던 남녀공학 교사 학..
중국 네이멍구서 흑사병 환자 발생…조기경..
“지금이라도 사는 게 맞나”… 빗발치는 문의
hot_photo
양키스 다나카, 스탠턴 강습 타구..
hot_photo
우혜림·신민철 웨딩마치…“예쁘게..
hot_photo
다저스 프라이스, 142억원 포기하..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사업안내 | 이용안내 | 구독안내 | 독자참여 | 회원서비스 | 고충처리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한형민) | Site Map
제호 : 문화일보 | 주소 :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22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697 | 등록일자 : 2011년 7월 15일 | 발행·편집인 : 이병규 | 발행연월일 : 1997년 1월 1일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 ☎ 02) 3701-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