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전쟁속… 기록되지 못한 보통사람들의 이야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민간인 사망·실종자만 220만 명에 달한 6·25전쟁은 정부와 군 당국의 공식 기록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민초들의 고통과 상처를 남겼다. 1번 사진부터 전쟁 초기인 1950년 8월 한 시골에서 검게 그을린 어린아이가 혼자 길가에 앉아 울고 있는 모습, 전쟁 통에 부모를 잃은 대구 지역 고아들의 모습, 전북 전주에서 주민들이 학살돼 매장된 민간인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모습. 1·3번 사진 출처 ‘끝나지 않은 전쟁 6·25’, 2번 ‘1950 한국전쟁 70주년 사진집’.

책으로 본 ‘6·25 70주년’

대부분의 역사, 그중에서도 전쟁사는 승자와 군인의 기록이다. 민간인의 희생이 클수록 공식 전사(戰史)에 기록되지 않은 보통 사람의 이야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질문하게 하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을 반영하듯, 6·25전쟁 발발 70주년 즈음에 출간된 책들에선 그동안 잊히고 조명받지 못해 온 민간인들의 증언과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두드러진다. 생존자의 자술서와 이력서, 증언 등 미시사(微視史)의 소재들은 정부와 군 당국 기록에 의존한 거시사(巨視史)가 놓친 역사의 진실을 채워줌으로써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에 대한 지평을 넓힌다. 때때로 거시사의 기록과 충돌하면서 우리가 전쟁의 진실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전선과 전투의 기록만이 아닌 ‘사람의 기록’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묵직하다. 전쟁의 비인간성과 평화의 소중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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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이력서로서의 전쟁사 = ‘한국전쟁, 전장의 기억과 목소리’(신기철 지음, 역사만들기)는 인천 옹진군 주민 104명의 6·25전쟁 전후 10여 년의 기억을 되살렸다. 저자는 “지역민의 삶을 기록하지 않는 역사는 앙상한 골조만 있는 반쪽의 역사”라며 옹진을 찾았다. 옹진에 주목한 이유는 분단의 최전선이자 바다라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전선에 둘러싸인 곳이기 때문이다. 6·25전쟁 발발 전부터 크고 작은 전투가 있었고, 전쟁 중에는 국군과 인민군이 번갈아 점령하면서 수많은 민간인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스러져 갔다. 휴전 후에도 잦은 납북 사건 등으로 고통받았다.

구술인들의 생생한 증언은 6·25라는 이념 전쟁이 민간인들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 대청도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인민군 점령 초기 상투까지 튼 한 어르신이 인민군들에게 다가가 “빨갱이님, 저 좀 한 번 살려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빨갱이’가 사람 이름인 줄 착각한 것이었다. 한 청년 사공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패퇴하던 인민군에게 자신의 배가 동원되는 걸 저지하다 죽임을 당했다. 국군 점령 후에는 인민군에 협력한 것으로 의심되는 이들이 적법 절차도 없이 총살됐다. 이들의 협력이란 대개는 노무자로 동원돼 짐이나 음식을 나르는 일이었다. 저자의 인터뷰 때 많은 구술인이 70년 가까이 잊혀 있던 희생자의 이름을 바로 기억해 냈다는 사실은 전쟁의 기억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응어리로 남았는지 짐작하게 한다.

‘고백하는 사람들’(김재웅 지음, 푸른역사)은 6·25전쟁 때 미군이 노획한 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수장고에 보관돼 온 북한 주민 879명의 자서전과 이력서를 통해 해방 이후부터 전쟁 발발 전까지 북한의 사회상을 재구성했다. 김일성종합대학 등 주요 대학 교수진과 중학교 교사, 인민군 하사관과 병사, 조선중앙통신사 직원 등으로 채용되기 위해 제출한 자료들이다. 이력서의 특성상 ‘잘 보이기 위한’ 윤색이 가미될 여지가 있지만, 지나칠 수 없는 생생한 증언들이 담겨 있다. 일례로, 1945년 말 소련군이 황해도 송화군에 진주했을 때 공산청년동맹과 적위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주민에게 피신을 유도하고, 소련군으로부터 재산과 부녀자를 잘 지켜야 한다고 경고했다는 일화가 나온다.

해방 직후 북한에서 좌익 단체들조차 경계할 정도로 반소(反蘇) 감정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친일파 재산 몰수 과정에서는 ‘지역 건달꾼’들이 사리사욕을 채운 뒤 남쪽으로 도주하거나 수감되는 일도 벌어졌다. 1946년 토지개혁을 놓고는 이를 지지하는 아들과 반발하는 아버지의 갈등이 묘사되기도 했다.

◇상흔 보여주는 생생한 사진집들 = 전쟁의 이면과 참상, 그 험한 세월을 살아 낸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들도 눈길을 끈다. ‘끝나지 않은 전쟁 6·25’(눈빛아카이브 사진, 눈빛)는 NARA 외에 영국, 중국, 러시아, 북한 등에서 수집한 사진들을 수록했다. 특히 남북이 번갈아가며 ‘처형’을 하고 지나간 전주교도소의 집단 매장지, 우익에 대한 적개심을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로 왜곡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신천대학살 박물관, 서울 수복 이후의 부역자 처형, 전장 곳곳에서 학살된 민간인과 고아들 사진 등이 전쟁의 참상을 증언한다. 책을 엮은 이규상 눈빛 대표는 전후 한국에서 출간된 사진집들이 냉전적 시각에서 알게 모르게 전쟁을 고무해 왔다고 지적하고 “전화에 신음하는 한반도와 한민족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모으기 위해 분투해 왔다고 밝혔다.

‘1950 한국전쟁 70주년 사진집’(존 리치 사진·글, 서울셀렉션)은 미국 인터내셔널 뉴스 서비스(INS) 소속으로 6·25전쟁 발발 일주일도 되기 전 한국에 도착, 3년여에 걸쳐 취재를 이어간 존 리치의 컬러 사진을 모았다. 6·25전쟁 종군기자 가운데 가장 오랜 시간 한국에 머문 데서 알 수 있듯, 저자의 사진에는 한국과 한국민에 대한 애정이 짙게 배어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의 모습, 국군과 미군·유엔군의 활약상뿐 아니라 철모에 진달래를 꽂은 소년병, 부서진 전투기 위에 올라탄 까까머리 소년, 피란길에도 해맑은 미소를 보이는 어린이 등 참혹하게 파괴된 폐허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 이야기’를 담아냈다. 저자는 “이 사진들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그것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의 희생과 아픔, 그리고 강인한 소생의 의지를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