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美의 노골적인 유엔 흔들기… 혼란·불안에 우방국들 ‘볼멘소리’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3일 영국 런던의 버킹엄 궁에서 열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 환영 행사에서 마르크 뤼터(왼쪽부터) 네덜란드 총리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관한 뒷담화를 하고 있다. AP 뉴시스

유네스코·유엔인권이사회 탈퇴
나토에도 美역할 의문제기 계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마이웨이’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5년간 국제사회 질서 유지에 기여한 유엔 체제를 흔들면서 미국 동맹들의 볼멘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이나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미국의 우방국들은 좋은 곳만 골라 취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체리 피킹’ 외교에 등을 돌리는 모양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동맹국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독주’를 ‘체리 피킹’ 외교로 명명한 뒤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미국이 유네스코, 유엔인권이사회(UNHRC) 등 유엔 산하 기구에서 잇따라 탈퇴한 것이 유엔 체제 자체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 연례총회에서 “미래는 세계화를 지향하는 자들이 아닌 애국자들에게 있다”며 유엔의 국제주의 노선에 반기를 들었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공화당 인사로서 유엔 체제에 반대했던 헨리 로지를 연상케 하며, 국제주의를 추구하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나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들과는 완전한 대척점에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 또 이코노미스트는 “올해로 창설 75주년을 맞는 유엔이 더는 미국 중심의 ‘단극’(unipolar) 체제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다극’(multipolar) 체제로 가는 길목에서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짚었다.

특히 다극 체제 지원에 피로감을 호소해오던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대한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면서 EU와 유럽 동맹국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미국의 기후변화협약 탈퇴, 세계무역기구(WTO) 산하 상소 기구 위원 임명 거부 등도 EU에 직접적 타격을 미치는 행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에는 EU를 아예 ‘적’으로 칭하면서 대서양 양안 동맹 자체에도 균열을 냈다. 주제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지난 19일 “트럼프 대통령의 EU에 대한 공격이 양측 간 관계를 실질적으로 훼손했다”고 언급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 진압을 위해 군을 투입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는 21초간 침묵을 지켰다. 캐나다 CBC 방송은 “오래된 동맹국이자 최대 무역 상대로서 미국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을 자제해 온 캐나다 수장의 난처함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아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5배 수준의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한국에선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시위가 잇따랐다. 전문가들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 호주 등 아·태 지역 내 다른 동맹국들이 미국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보니 글레이저는 “아시아의 여러 국가는 예측 가능성과 신뢰성이 떨어지는 미국과 연대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북한 문제나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 등 지정학적 이슈가 얽혀 있는 화약고인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독주’ 외교가 아·태 지역에서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장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