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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문10답 게재 일자 : 2020년 06월 30일(火)
‘이너서클’ 4인과 경쟁 → 강대국 표심에 당락… WTO 권위 재건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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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희, WTO 사무총장 출사표

164개국 지지 적은 후보탈락
韓, 두차례 도전했지만 고배

‘美·中밀접’ 중견국이 경쟁력
유럽 막판 출마 여부가 변수
당선땐 사상 첫여성사무총장

강대국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세계 무역질서 중재 역할해야

現 사무총장 중도 하차 사태
“美·中 갈등 트럼프 압박때문”
작년 韓도 개도국 지위 포기
향후 관세 혜택 못 누릴수도


유명희(53·사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24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직에 출사표를 던졌다. WTO는 지난 25년간 세계 무역의 규범자·조정자·중재자 역할을 해온 국제기구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국제 사회의 가장 큰 성과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유 본부장이 당선될 경우 한국인 최초이자, WTO 최초 여성 사무총장이 탄생하게 된다. 한국의 위상도 올라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강대국의 지지가 승패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나머지 4명의 강력한 후보군을 물리치고 유 본부장이 사무총장에 선출된다면, 향후 미·중 간 무역 갈등 격화로 창설 26년 만에 최대 위기에 봉착한 WTO를 재건해야 할 막중한 역할을 맡게 된다.


1. WTO는 무엇인가

경제 부문의 유엔으로 불리는 국제기구다. 국가 간 무역 장벽을 낮추고 자유로운 거래를 증진하기 위해 1995년 1월 1일 출범했다. 회원국들이 다자간 협상을 통해 마련한 협정문을 바탕으로 국가 간 무역 거래 규칙·규정을 관장하고 감독하는 한편, 회원국 간 경제 분쟁·마찰 발생 시 조정·중재·판결·강제이행 역할까지 담당한다. WTO 체제의 4가지 원칙은 설립목적과 의미를 잘 드러낸다. 4대 원칙은 △교역 상대국을 차별하지 않는 최혜국 대우·외국 상품의 국내 진입 후 국내 제품과 동등하게 취급하는 내국민 대우 등 무차별 주의 △상품·서비스 개방에 합의하는 양허(약속) 설정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공정한 경쟁 촉진을 위한 보호무역 허용 △개발도상국 주장을 수렴한 특혜 조치 허용 등이다.


2. WTO는 왜 탄생했나

2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은 자국 산업만을 위한 극단적인 보호주의 무역의 폐해를 깨닫고 자유무역을 시행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일환으로 1947년 미국 등 23개국이 모여 이룬 합의가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에 담겼다. 관세 철폐 등을 목적으로 하는 GATT 체제하의 대표적인 다자간 무역협상이 바로 1986년 시작돼 1993년 말 타결된 ‘우루과이 라운드’다. GATT는 법적 기구가 아니었기 때문에 참여국들의 불공정 행위를 효과적으로 규제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GATT 체제를 구현할 다자간 무역기구가 필요했고, 우루과이 라운드의 결과물로 채택된 ‘마라케시 의정서’에 따라 마침내 WTO가 출범했다.


3. WTO와 GATT는 어떻게 다른가

GATT는 법적 책임이 없는 무형의 협력 기구 성격을 지닌 반면, WTO는 법적 구속력을 가진 유형의 국제기구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아울러 GATT가 주로 상품 분야 무역에 초점을 맞췄다면 WTO는 서비스와 지적 재산권까지 다루는 범위를 넓혔다. 특히 WTO 체제의 가장 큰 의의는 분쟁해결기구(DSB·Dispute Settlement Body)를 설치해 회원국 간 통상 마찰의 해결 절차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GATT는 단순히 계약·협정 형태로 돼 있다. 회원국들이 GATT에 따른 의무를 효과적으로 이행하지 못했던 점을 고려해 새로 만들어진 WTO는 약속이행의 감시 등 회원국들의 의무이행을 강력히 뒷받침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4. 운영 방식은

WTO는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다. 영어·불어·스페인어 3개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2020년 현재 약 6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WTO는 2년에 1번 개최되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각료회의(전체 회원국 대표가 참여) 아래 일반이사회, 특별이사회(상품·서비스·지적 재산권), 상설위원회(무역개발위원회, 국제수지위원회, 예산·행정위원회, 무역·환경위원회)로 구성돼 있다. 의사결정은 합의제 방식으로 진행된다. 특정 안건 표결 시 회의 참가국의 명백한 반대가 없으면 만장일치로 채택한 것으로 간주한다. 합의제에 의한 결정이 불가능할 때에는 투표국의 표결로 결정한다.

운영은 회원국들의 분담금으로 이뤄진다. 올해 예산은 약 1억9700만 스위스프랑(CHF·약 2500억 원)이다. 이 중 우리나라 분담금은 567만 스위스프랑(CHF·72억 원)으로 총예산의 2.9%다.


5. 회원국은

한국을 비롯해 76개국이 가입했다. 이후 회원국이 늘어나며 현재 164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마지막에 가입한 나라는 아프가니스탄으로 2016년 7월에 들어왔다. 눈에 띄는 가입국은 중국과 러시아다. 중국은 2001년 12월, 러시아는 10년 뒤인 2011년 12월 각각 WTO에 가입했다. 중국은 WTO 체제의 최혜국 대우·개발도상국 지위 등을 활용해 ‘글로벌 무역 1위 국가’ ‘슈퍼차이나’로 부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54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한 러시아는 1993년 첫 가입 신청 후 18년의 협상 끝에 WTO 문턱을 넘었다. 러시아의 가입으로 WTO는 전 세계 무역의 99%를 관장하게 됐다.


6. 한국에 미친 영향은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갖고 있는 한국은 WTO 규범 아래에서 자유무역의 혜택을 누린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WTO가 지배하는 세계무역 체제에서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인 제조업 분야는 시장개척과 판로확대의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농업과 서비스 분야는 일부 국내 시장개방이라는 도전에 놓이기도 했다. 민감 품목이자 WTO 출범 전부터 시장 개방협상이 진행 중이던 쌀의 경우 다행히 시장 개방 예외 품목으로 관세화(쌀 시장 개방·수입 자유화)를 유예하는 조치를 받았다. WTO는 최근에도 다양한 방면에서 우리 경제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일본을 WTO에 제소했다. 지난해에는 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 기존에 받던 관세 유예 등의 조치 기간 종료 시 향후 이 같은 혜택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7. WTO가 위기에 빠진 이유

유 본부장이 출사표를 던진 것은 호베르투 아제베두 현 총장의 조기 사퇴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아제베두 총장의 중도하차는 미국의 압박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WTO에 대한 미국의 맹공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함께 가속화해 현재 WTO는 사실상 모든 기능이 마비된 상태라는 게 통상 전문가들의 평가다. 트럼프 정부는 WTO가 이미 경제적으로 부유한 중국에 개발도상국 혜택을 계속 주는 탓에 중국은 막대한 이익을 누린 반면, 미국은 그만큼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지난해 7월 WTO가 미·중 관세 분쟁에서 중국의 손을 들어준 뒤 미국의 ‘몽니’는 최고조에 달했다. 당시 미국이 태양광·철강 등 22개 품목에 반덤핑(낮은 가격에 물건을 투매할 경우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반보조금 관세를 부과한 것에 대해 중국이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서 생긴 분쟁이었다. 현재 미국은 WTO 분쟁 해결 절차의 마지막 단계로 ‘대법원’ 역할을 하는 WTO 상소기구의 위원 임명을 거부해 무역분쟁 심의가 중단된 상태다. 미국 공화당은 WTO 탈퇴 결의안까지 의회에 상정했다. 우리나라의 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도 미국의 압박 때문이었는데, 이는 애초 중국을 겨냥한 것이었다.


8. 사무총장의 역할과 한국의 도전사

WTO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과 함께 세계 3대 국제경제기구로 평가받는다. 무역 분쟁 조정, 반덤핑 규제, 다자간 통상조약 협상 등 막강한 권한이 있는 WTO를 대표하는 만큼 WTO 사무총장은 ‘세계 무역의 수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WTO 사무총장 선출은 164개 회원국의 합의를 거쳐 이뤄진다. 회원국 간 협의 과정에서 지지도가 가장 낮은 후보자를 탈락시키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한 다음 단일 후보자를 만장일치로 추대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두 번(1994년 김철수 전 상공부 장관과 2012년 박태호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에 걸쳐 WTO 사무총장직에 도전했지만 둘 다 고배를 마셨다.


9. 유명희 당선 가능성과 경쟁자는

유 본부장은 오랜 기간 통상 업무를 담당하며 굵직한 협상을 이끌어 왔다는 점이 강점으로 평가받는다. WTO 근무 이력이 없어 ‘이너서클(내부조직)’에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은 다른 후보들에 비해 약점으로 꼽힌다. 유 본부장 외에 이집트, 나이지리아, 멕시코, 몰도바 등 4개국에서 입후보가 이뤄졌다. 아프리카가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나이지리아 출신의 응고지 오콘조 이웰라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이사장과 이집트의 하미드 맘두 변호사가 지난달 9일 나란히 등록했다. 헤수스 세아데 쿠리 멕시코 외교부 북미 담당 차관과 투도르 울리아노브스키 전 몰도바 외교장관도 도전장을 냈다. 개인 능력 외에 강대국들의 지지 여부가 당선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정부는 한국이 미·중 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견국’이라는 점을 내세울 방침이다. WTO에서 가장 입김이 센 미국이 한국을 얼마나 밀어줄지, 유럽이 막판에 후보를 낼지, 중국은 어떤 태도를 취할지가 당락을 가를 전망이다.


10. 혼돈 속 사무총장직의 한계

유 본부장이 당선된다면 한국인 최초이자, WTO 첫 여성 사무총장이란 기록을 세우게 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김용 WB 총재, 임기택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 등에 이어 국제 통상 무역 분야 수장까지 맡게 된다면 한국의 위상도 격상될 전망이다. 다만, 당선되더라도 사실상 식물상태인 WTO를 이끌어야 하기에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입장차로 인해 WTO 체제에서 진행돼 온 다자간 무역협상인 ‘도하개발어젠다(DDA)’는 이미 2008년 이후 개점휴업 상태다. 여기에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서 WTO는 창설 이후 최대 위기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 본부장은 이미 바닥까지 추락한 WTO 권위를 끌어올리고, 미·중 등 강대국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세계 무역 질서를 규율해야 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이런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보호무역이 강화하는 추세라 WTO 사무총장의 역할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예측도 나온다.

박수진·박정민 기자
e-mail 박수진 기자 / 경제부  박수진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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