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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병종의 시화기행 게재 일자 : 2020년 06월 30일(火)
가혹했던 사랑 앞에 보석처럼 빛난 재능 끝내 시들어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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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종 여인, 50×72.7㎝, 혼합재료에 먹과 채색, 2013.


■ (37) 비운의 여인 ‘카미유 클로델’

15년간 로댕의 ‘뮤즈’였지만
자유분방한 로댕은 결국 외면
점점 감당 못할 상실·박탈감

조각가로 독립한 뒤에도 시련
결국 가족들이 정신병원 보내
재능만큼이나 잔인했던 운명


생루이섬의 센강변. 대각선으로 시테섬 쪽 노트르담 성당이 보이는 평화롭고 한적한 주택가. 4층짜리 아파트형 석조건물의 벽에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1864∼1943)의 옛집을 가리키는 동판이 붙어 있다. 하마터면 그대로 지나쳐버릴 뻔했다. 건너편 문 앞에는 유람선 바토무슈가 모형 배처럼 햇빛에 반짝인다. 그녀가 10여 년 동안을 이 집에서 살며 작업했다는 곳이다. 그러던 그녀는 바로 이곳에서 강제적으로 정신병원 차량에 태워져 입원하게 된다.

영화 이자벨 아자니가 열연한 ‘카미유 클로델’에서 그녀는 멀어지는 앰뷸런스 뒤창으로 이 길이 안 보일 때까지 안타깝게 바라본다. 그리고 그렇게 실려 간 그녀는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로댕 미술관에 갔을 때 조각으로 만난 그녀의 모습이 이자벨 아자니의 얼굴과 겹쳐지곤 했는데 지금 바로 저 건물에서도 카미유 클로델 아닌 이자벨 아자니, 아니, 이자벨 아자니 아닌 카미유 클로델이 걸어 나오는 것만 같다. 그만큼 나는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 성큼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그녀가 영화 속에서 석양의 센강을 바라보곤 했던 유리창을 올려다본다. 지금은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가끔은 걷거나 조깅하는 사람들만이 보이고 강 쪽의 나무들에서는 유난히 선명하게 새소리가 들려올 뿐, 지나치게 적막한 곳이다. 빛나는 재능을 타고났지만 운명적으로 한 남자를 향한 아프고 쓰라린 사랑 때문에 30년의 세월을 유폐된 채 지내야 했던 슬픈 사랑의 주인공 카미유 클로델. 오귀스트 로댕이라는 거대한 화염의 불길에 타버린 음지식물. 은둔과 비운의 카미유 클로델을 생각하다 보면 문득 지구의 반대편 또 한 사람의 여인이 생각난다. 바로 치명적인 사랑으로 심신이 만신창이가 됐던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다.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 두 사람은 다 같이 똑같은 길을 가는 운명의 동반자이자 사랑과 증오의 폭풍 속을 걸어갔던 존재들이었다. 재능을 타고났지만 사랑을 갈구하다가 시들어갔던 여인들이었다.

카미유 클로델은 그 미모와 재능이 백합처럼 눈부시던 20대 초반에 로댕의 제작 조수로 들어간다. 이미 로댕은 당대의 스타 중 스타였다. 디에고 리베라와 마찬가지로 문화예술의 아이콘이었고 정·관·재계에 걸쳐 인맥 또한 두터웠다. 영화는 로댕의 전성기 시절 허다한 작품이 사실은 카미유 클로델의 손을 거쳐 나온 것임을 시사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 많은 미술사가가 인정하는 바이기도 하다. 오히려 재능으로 말하면 그녀가 로댕보다 한 수 위였다는 평가도 있다. 어쨌거나 조수는 조수. 그녀는 15년의 세월 동안 그 재능을 로댕을 위해 바쳤다. 사랑의 갈망도 함께. 로댕 또한 그녀를 한때 열렬히 사랑했고 그 재능 또한 높이 샀지만 점점 이름이 높아지면서 그에게는 조수들이 늘어났고 그중에는 옛날의 카미유 클로델처럼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젊고, 어린 여인들도 있었다. 결혼도 연애도 안 한 채 오직 로댕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혼신을 다해 달려왔던 그녀에게는 차츰 감당할 수 없는 상실과 박탈감이 찾아왔고 잠재적 정신질환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파리의 내로라하는 보수적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그녀에게는 작가로 활동하는 남동생 폴이 있었고, 로댕과 결별한 후 그녀는 폴에게 편지로 황폐해가는 자신을 호소한다.

하지만 원래부터 여류 조각가의 길을 마땅찮게 생각했던 폴과 부친은 급기야 그녀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로 작정하는데 여기에 로댕이 일정 부분 작용을 했으리라는 것을 영화는 시사해준다. 파리 교외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상태는 많이 호전됐지만 누구도 그녀의 퇴원을 주선하지 않는다. 누나를 만나고 돌아가면서 영화 속에서 담당의와 동생 폴이 나눈 대화.

▲  김병종 화가·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서른 살이 되던 해 누나는 로댕이 자신과 결혼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이성을 잃고 말았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누나는 제정신으로 살고 있지 않아요.’ 이런 저주 같은 대사도 나온다. ‘예술가, 정말 최악의 직업이에요. 특히 천재에게는 불운하고 위험하고 너무도 가혹한 직업이에요.’ 은연중 그는 자신의 누나가 천재성을 타고났다는, 그래서 더 불운하고 가혹한 운명의 길을 걷게 된 것이라고 혼잣말처럼 말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또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지금 이곳에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누워 있습니다. 하지만 눈떠 보면 모든 것이 변해버립니다…. 로댕과의 이별 이후에도 한시도 그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녀, 사랑의 운명에 포박돼 퍼덕인 한 마리 나비였다. 첫사랑이었고 자신을 불태워 얻고 싶었던 사랑이었지만 로댕에게는 또 다른 뮤즈들, 예컨대 로즈 뵈레(Rose Beuret)나 그웬 존(Gwen John) 같은 미모와 재능의 소유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영감의 원천이었고 한때 뜨겁게 사랑했던 여인이었지만 분방했고 불같았던 로댕은 한 여인에게 묶이는 것을 한사코 싫어했다. 가장 큰 비극은 정작 그런 로댕 외의 어떤 남자도 카미유 클로델의 허전함을 채울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로댕 미술관에 가면 한때 연인이었고, 모델이었으며, 그의 손과 심장이었던 카미유 클로델의 모습들이 돌조각으로 나온다. 그중에는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로댕 쪽을 향해 갈망의 몸짓을 보내는 듯한 카미유 클로델의 모습도 보인다. ‘작별’ ‘챙이 없는 모자를 쓴 카미유 클로델’, 장차 다가올 두 사람의 슬픈 운명을 예감했을까. 조각으로 빚어진 두 남녀의 시선은 아슬아슬 비켜 가며 서로 다른 착지를 향하고 있었다. 대저 사랑이란 무엇일까. 왜 인간은 나무와 꽃처럼, 사랑의 햇빛, 사랑의 물이 닿지 않으면 시들고 마는 것일까.

화가·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 스무살에 로댕의 제자로…“재능은 로댕보다 한수 위” 평가받기도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은 스무 살 때 마흔네 살의 오귀스트 로댕을 처음 만나게 된다. 그녀는 지성미와 청순함, 우아함과 함께 뛰어난 조각가적 재능을 갖추고 있었다. 단 한 번의 만남에 로댕의 눈에 들었던 그녀는 곧 그의 작업실 조수로 들어가게 되는데 함께 작업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24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으며 둘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스승과 제자에서 연인 사이로 바뀌게 된다.

클로델은 혼신을 다해 로댕의 작업을 도우면서 다른 한편 아내의 자리를 기대했지만 분방한 성격의 로댕은 번번이 이런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게 된다. 당대 최고의 예술가로 부와 명성을 얻게 되면서 로댕의 주위에는 늘 많은 권력자와 여인이 있었고 특히 젊은 여성들과의 염문이 끊이지 않았다. 작업실에는 클로델 외에도 여러 명의 여성 모델과 조수가 드나들고 있었다.

그녀는 결국 로댕의 사랑을 갈망하다 지쳐 그와 떨어져 독자적인 조각가의 길을 걷게 되지만 당시만 해도 여성의 신분으로 조각가로 성공하기에는 사회 여건이 좋지 않아서 많은 시련과 좌절을 겪게 된다.

더구나 그녀의 아버지와 남동생도 로댕만을 바라보며 혼기를 놓친 채 추문의 주인공이 되곤 했던 딸과 누나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게 되면서 가족과도 거의 절연하게 된다.

결국 우울증과 피해망상에 시달리던 그녀를 가족들은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게 되는데 그렇게 반강제로 입원하게 된 그녀는 무려 30여 년의 세월을 그곳에서 지내다 생을 마감하게 된다. 반면 한때 그녀의 연인이었던 로댕은 그 명성이 하늘같이 높아졌고 클로델의 손을 빌려 나온 적지 않은 작품들도 로댕의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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