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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그립습니다 게재 일자 : 2020년 07월 02일(木)
돌아가시기 사흘전까지 성경 필사한 할머니… ‘내인생 첫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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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녀 신애린 씨와 할머니.
김형순(1931~2011)

“어머니, 죄송해요. 감사해요. 어머니… 어머니….” 지난 2011년 1월, 영구차 뒤를 따라가던 큰며느리가 섧게 운다. 뭐가 그리 죄송할까. 처음부터 끝까지 제일 살뜰했으면서. 나의 할머니, 김 여사에게는 항상 누군가를 고맙고 미안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김 여사는 1931년 9월, 섬마을 유지의 맏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해 교장 선생님이 공주사범학교 진학을 강권했으나 여자아이를 멀리 보낼 수 없다는 집안 어른들 반대로 꿈을 접어야 했다. 동네 노래자랑에 나갔다가 그 모습에 반해 청혼한 ‘훈남’과 방년 열아홉에 결혼해 슬하에 1녀 4남을 두었으며, 몸이 약해 두 번 유산하고 두 딸도 잃기도 했다. 호강시켜 주겠다던 남편이 재산에 선산까지 잃어 젊은 날을 고생하며 살았다. 그 때문에 1968년부터 1982년까지 14년간 온 가족이 바닷물처럼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했다.

1972년 8월, 공장에서 일하던 김 여사는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야근을 자청했다. 공장에서 간식으로 나온 팥빵을 아껴 밤공부하던 아들에게 먹였다는 이야기는 훗날 모두를 울렸다. 아들의 여자 친구가 처음 인사하러 온 1982년 9월, 김 여사는 혹여 매울까 양념을 훑어 낸 파김치를 정성스레 밥 위에 얹어 줬다. ‘곱게 자라’ 파도 먹을 줄 모르던 여염집 막내딸에게 파김치는 이후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이 됐고, 같은 해 그들은 고부의 연을 맺었다.

김 여사는 1983년 8월 손녀를 보고 2년 후 장손을 얻었다. 집안에 아들이 태어났는데도 첫 손주를 더 사랑해 한동안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고 나중에 고백했다. 매일 아침 손녀와 함께 유치원 버스를 기다려 주고, 아이가 넘어지면 무릎과 얼굴에 빨간약을 발라 주었다. 연분홍 원피스를 입고 나들이 간 날, 손녀가 넘어지며 제 할머니처럼 “아이고, 내 새끼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김 여사는 이미자와 가요무대를 사랑했다. ‘최애’ 음식은 호박죽과 팥시루떡, 그리고 슈퍼에서 파는 양갱과 제과점 캔디였다. 위가 좋지 않아 식후에는 당신도 모르게 앓으며 몇 번씩 가슴께를 두드리곤 했다. 지금은 풍랑 속에 고깃배를 타도 멀쩡하지만 어릴 때는 버스만 타도 멀미하던 손녀에게 늘 박하사탕을 줬다. 하나는 정 없다고 꼭 두 개씩. 맛은 없어도 이름처럼 반짝이던 그 비단 박하사탕을 가지고 싶어서 더 심하게 어지러운 척했던 기억이 난다.

2007년 8월, 김 여사는 당신이 일기에 ‘제일 친한 친구’라고 적은 큰손녀에게 한국야쿠르트 비닐봉투에 곱게 싼 물건을 쥐여주고는 줄 것이 이것뿐이라 미안하다고 했다. 당신은 아까워서 한번 해 보지도 못한 목걸이와 금가락지였다.

김 여사는 생의 마지막 4년을 병원에서 지냈다. 면회 때 들고 간 음식은 다음날이면 꼭 동났다.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하는데 맛있을 때 다 같이 먹어야지.” 무릎 수술 후유증으로 걷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 많은 걸 매번 이웃과 나눴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지막 책은 성경, 글은 욥기 필사였다. 육신이 고통받을 때도 영혼과 입술에 끝까지 감사로 가득했던 욥. 김 여사는 돌아가시기 사흘 전까지 욥기를 썼다. 배움은 짧았지만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읽고 썼던 그의 평생 습관은 자녀와 손주, 증손주들에게까지 좋은 교육, 값진 유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0년 7월, 김 여사의 흔적들을 가만히 쓸어 본다. 낡은 편지 한 통에 오래 눈이 머문다. 모나미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글씨, 달필은 아니다. 수신인은 김 여사의 큰며느리, 즉 나의 어머니였다. “함께 살던 너희가 이사 가고 얼마나 마음이 허전한지 모른다. 늘 화장품 남았는지 뚜껑 열어 보고 떨어지기 전에 몰래 사 놓던 너. 네가 내 며느리라 참 고마웠다.”

나를 이루는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모두 김 여사에게서 받은 것이다. 오늘은 퇴근길에 박하사탕 한 봉지 사야겠다. 내 인생의 첫 친구, 할머니가 많이 그립다.

손녀 신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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