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용에서 개인 공간으로… 시대따라 달라진 ‘방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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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의 방 | 민은경·정병설·이혜수 외 지음 | 문학동네

프랑스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에 따르면 17세기 말까지는 아무도 혼자 지내지 않았다고 한다. 침실과 침대조차도 공용이었다는 것이다. 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방의 출현은 18세기 근대적 경험과 사유의 결과물이다. 침실과 응접실, 서재, 부엌, 화장실 등 우리에게 친숙한 주거 공간이 자리를 잡는 데에도 근대 시민 계급의 출현, 계몽주의의 확산, 문학 장르로서 소설의 확고한 정립, 식민지 지배와 세계 무역 등 시대사적 변화가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한국18세기학회 소속 인문학자 27명이 쓴 ‘18세기의 방’은 18세기 방에 얽힌 이야기와 역사를 탐구한 ‘방의 문화사’다. 저자들은 여성의 방, 응접실·거실, 부엌과 화장실, 가구와 사물, 패브릭, 식물과 동물 및 정원, 책과 서재 등 7가지 범주로 나눠 이 시기 주거 공간의 변화와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변화 양상을 추적했다.

저자들이 가장 먼저 천착한 것은 ‘여성의 방’의 등장이다. 18세기 들어 대저택에 화장방(dressing-room) 또는 클로젯(closet)이라고 불리는 여성의 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곳은 아침에 눈을 떠 씻고 머리를 손질하고 옷을 갈아입고 용변을 보는 공간이자 편지를 쓰거나 책을 읽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곳에는 남성들이 사무용으로 쓰던 육중한 탁자 뷰로(bureau·훗날 ‘사무실’이라는 의미를 갖게 됨)와 달리 ‘비서(secretaire)’라는 이름의 책상이 놓였다. 상대적으로 작고 가벼운, 글 쓰는 탁자 및 책장을 겸한 책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자기만의 방’이 모든 여성에게 허용된 건 아니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제인 오스틴마저도 자기만의 서재나 책상도 없이, 응접실 창가의 탁자 위에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글쓰기 상자(writing box)’를 놓고 글을 썼다.

응접실·거실 등에서는 사회적 지위 등을 과시하는 소품들이 등장한다. 벽난로가 설치됐을 뿐 아니라 이국적이고 이질적인 온갖 물건이 자리를 차지했다. 중국풍 가구와 병풍, 인도산 면직물, 오스만 제국의 카펫이 놓였다. 거울과 피아노가 방 한쪽을 차지하는가 하면 각종 수집품을 전시하는 ‘인형집’ ‘호기심의 방’ 등도 등장했다. 많은 식물학적 지식과 온실을 지을 재력이 필요한 열대 식물은 특히 부와 고급 취향의 상징이었다.

애완동물 기르기가 유행했던 것도 이 시기였는데, 식민지 지배의 산물인 흑인 시동을 애완동물의 일종으로 여겼음을 보여주는 그림들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주인의 초상화나 가족 초상화에 절대 등장하지 않는 다른 하인들과 달리 흑인 시동은 애완견, 원숭이, 앵무새 등과 함께 그림에 나타난다. 흑인 시동은 한결같이 개 목걸이를 연상시키는 은목걸이를 하고 있다. 440쪽, 2만5000원.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