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매일 자식·손주 이름 하나하나 부르며 안녕을 기원했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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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월(1908∼2000)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20년 전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비몽사몽으로 시골에 내려갔을 땐 이미 할머니가 눈을 감으신 직후였습니다. 임종 전에 할머니와 눈 맞춤을 못 한 채 보내드린 것이 아직까지도 속상하고 서러워 목이 메어옵니다. 당시 절망감 속에서도 할머니를 위해 기도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방광염을 앓으셨습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할아버지를 정성스레 수발하셨고, 동네를 돌며 쓰레기 줍기를 할 정도로 늘 반듯하면서도 인자하셨습니다. 그런 한결같으셨던 모습이 새삼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저의 할머니는 특별한 분이셨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할머니가 찾으신다”고 곧잘 저를 부르셨습니다. 할머니는 늘 저를 애지중지 쓰다듬으면서 “우리 강아지 밥은 먹었냐?”고 애틋한 정을 주셨습니다. 분명 밥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할머니 말씀에 돌아서면 왠지 모르게 허기가 지는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긴 음식은 뭐든지 맛있었습니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할머니와 어머니가 전을 부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기름을 두른 팬에서 빗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 알게 됐습니다. ‘아, 그래서 비가 오면 전이 먹고 싶은 거구나.’ 요즘처럼 장마철이 되면 어머니가 부쳐주신 전을 할머니와 함께 먹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크고 작은 시련이 있을 때도 할머니는 안전지대가 돼주셨습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무작정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할머니는 자상하면서도 총명해서 무슨 말이든지 잘 들어 주셨습니다. 충청도 분이라 말이 느릿느릿하면서도, 말씀이 많은 편도 아니었습니다. 할머니는 제게 가타부타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홑청을 다 뜯어 어머니와 함께 새로 이불을 지어주셨습니다. 그 이불에서 자고 일어나면 머릿속이 말끔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살다가 힘들고 고단할 때 여리고 마른 풀 냄새가 나던 그 이불이 그립습니다.

젊은 시절의 할머니는 고운 분이셨습니다. 어렵사리 시집와서 4형제 자식을 건사하느라 제대로 허리 한 번 펴보지 못하고 사셨답니다. 늘 불편한 몸으로 투병하며 사랑으로 자식들을 키우셨습니다. 오랜 약 처방에도 나아질 기미가 없자 할머니는 “내가 너무 몸을 막 써서 그러는 갑다”라며 고통을 인내하셨습니다. 할머니를 견디게 했던 또 다른 힘은 신앙심이었습니다. 일상의 고단한 한숨 대신 주님을 찾았고 일과의 끝자락에는 어김없이 자식·손주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안녕을 기원했습니다. 절절한 신앙으로 우리 모두에게 사랑을 나눠주신 할머니가 정말 그립습니다.

평생을 두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돌아가고 싶은 고향을 갖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할머니의 보이지 않는 헌신과 사랑이 뒷받침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그분의 사랑을 담기엔 세상이 너무 작은 것 같다는 뒤늦은 헌사를 나의 할머니 최부월 여사께 바치고 싶습니다.

김기승(한국국토정보공사 경영지원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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