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주평통 부의장 北 주장 복창, 의장인 文대통령 뜻인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헌법 제92조에 의해 설립된 헌법기관이다. 대통령이 의장을 맡지만 수석부의장이 업무를 대행한다. 정세현 수석부의장은 7일 “미국이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북한을 (싱가포르·하노이 회담에) 불러냈다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면서 “그 배신감 때문에 북한이 자기 수단을 강화하도록 만들었고 그 결과로 핵보유국이 된 것”이라고 했다. 북한 핵무기 개발이 미국 책임이라는 논리인데, 미국의 적대시 정책 때문에 핵무기를 만든다는 북한 주장의 복창이나 다름없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 체제의 실패 때문에 국가 파탄에 이르렀고, 그런 체제를 옹위하기 위해 핵무기 개발에 집착한다는 상식도 저버린 발언이다.

정 수석부의장은 “한·미 워킹그룹을 깨도 된다”면서 “주한미군은 절대 철수 못 한다”고도 했다. 마침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방한한 날 그랬다. 북한 김여정은 지난달 17일 담화에서 워킹그룹을 언급하면서 “모든 문제를 백악관에 섬겨 바쳐왔다”고 비판한 바 있는데, 그보다 더 나아간 발언을 한 셈이다. 워킹그룹은 북핵 제재와 남북 교류 사이의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한 장치다. 그런데도 여권 인사들은 ‘미국의 총독부’ 등 북한 하명을 받드는 듯한 주장을 쏟아낸다. 미군 철수 카드를 흔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입장을 제대로 아는지부터 궁금하다. 과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지향하는지 의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을 내놔야 한다. 정 수석부의장 견해에 동조하지 않으면 경질하고, 동조한다면 소신을 밝히고 책임져야 할 것이다.